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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4월 10일 열한 시에, 귀에 익지 않은 알람을 들으며 일어났다. 목욕탕에서 자기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깨기란 로또 급은 아니지만 예전 학교 앞 엿 뽑기의 잉어 급 정도이다. 어제 밤 새벽 세 시를 넘겨 연구실에 서 내려 오면서 할 일이 많은 다음 날이니 바로 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psp에 담아 두었던 추 격자를 보는 바람에 다섯 시가 넘어서야 눈을 감았던 터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아도, 좋은 영화였다. 정오의 햇빛을 받으며 국민 은행을 찾았다. 교통 카드로 쓰고 있던 체크 카드를 어제 분실해서 재발 급을 받으러 간 것인데, 혹 누가 그 사이 긁어 대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던 걱정일랑 헛되게시리 잔 액은 그대로 있었다. 신입인지, 앳된 얼굴에 잔뜩 화장을 한 여사원이 입구에서 엇박자로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 더보기
4월 5일 가장 가까운 스승 영연 양이 새로 산 쿨픽스로 찍어 준 오늘 오후의 사진. 아래를 쳐다보고 있으니 과연 선량도 급상승. 손수 자른 세미 뱅 헤어까지 조화로운 한 컷이라 최기숙 선생님 숙제에 매진하 고 있어야 할 일요일 밤임에도 크게 흡족해 하며 올린다. 더보기
학교 야경 안개 서린 새벽의 교정에서 운치 있는 음악을 들어가며 찍은 한 컷인데,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내 카메라의 뷰잉 스크린으로도 수작을 건졌음을 확신하고 역시 사진은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2년차 사진사인 자신의 일취월장에 만족했던 것이지만, 막상 컴퓨터로 뽑아놓고 보니 이렇듯 죽도 밥도 안 된 것이 나와 버렸다. 4월 초. 가로등에 비친 목련. 더보기
첫 번째 골목 대학약국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나오는 첫 번째 골목. 칠팔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연극을 올 리기 위해 스폰서를 떼러 다닐 때 얼굴만 들이밀면 오만 원씩 턱턱 내어 주던 단골집들이 있던 골 목이라 다른 골목에 비해 각별한 곳인데, 그간 못 보던 괴상한 장식이 근래 붙었다. 뭘 벤치마킹한 것인지, 낮에 지저분한 형광색이 처부덕처부덕한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밤에 조명을 받아도 영 분위기 안 사는 것을 보면 아무튼 전시 효과는 물론 광고 효과도 없는 것 같다. 곧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장면이라 여겨 새벽에 굳이 찍었다. 더보기
안경 불혹을 몇 미터 앞에 두고 계시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치장에의 헛된 시도를 일삼으시는 이상욱 옹 의 안경을 빌려쓰고 찍다. 중학교 때에, 시력이 거의 2.0에 달했음에도 눈이 덜 찢어져 보일까 하는 마음 반, 멋을 부리고 싶은 마음 반 해서 3년 동안 안경을 쓴 일이 있다. 멋들어진 안경을 쓰면야 모 양새가 더 빛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불편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 없는, 매우 사소하면서도 성가신 것이라 그 뒤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근래 갑자기 눈이 나빠져 다시 안경 착용을 고려해 봐야 하게 생겼다. 이십대 초반 아프로 파마나 깃털 귀걸이 등을 통해 아웃룩에 대한 욕구를 한껏 충족한 뒤로는 범박하고 깔끔한 것을 대체로 선호해 왔던 터이지만 저 대모갑 안경 만큼은 몹시 탐이 난.. 더보기
농구 우연히 다들 시간이 맞아 함께 간 학교 농구장. 제목은 슬램덩크지만 실제 게임 내용은 독거노인 복 지활동에 가까웠다. 제대하고 처음 농구공을 잡은 나는 실제 경기보다 타임을 부르고 교대를 요청하 기에 더 바빴다. 국문과 대학원의 대다수가 여학생인지라 남녀가 함께 시합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승부는 대등하거나 여성 팀이 우월하였다. 비웃는 당신이 있다면 북산 급의 이 팀을 경험해 보시라. 특히 센터부터 가드까지 전방위로 활약하며 와중 수준 급의 도발 및 유머까지 행하는 괴물 플레이어 문순희를 상대했다면, 논문 집필일랑은 한 학기 미루는 것이 좋겠다. 격심하게 체력을 소진한 나도 덕분에 경기 후 민추에서 앉은 채로 두시간 반 스트레이트 숙면을 경험 하였다. 촌음을 잘라서라도 놀 .. 더보기
3월 30일 추워 죽겠지만, 아무튼 날짜는 봄날, 잘도 간다. 이십 분만 있으면 어느덧 삼월의 마지막 날. 학교 안 에 있을 뿐이었는데도 정말 파란만장했던 하루, 내일은 조용했으면 좋겠다. 일주일만에, 집에 간다. 더보기
3월 29일 메모리 카드를 잃어 버렸다. 술먹고 귀걸이나 지갑을 잃어 버린 경험은 있어도 psp 저 안쪽에 박혀 있는 메모리 카드를 잃어 버린 데에는 그저 웃음밖에 안 난다. 그래도, 숙취로 머리가 꽝꽝 울려대는 와중에 psp 잃어 버린 것보다는 낫지 뭘, 하고 자연스레 생각하는 자신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사람이 많지 않은 일요일에 하루 종일 연구실에 앉아 있자니 근래 드물게 시간이 천천히 간다. 설렁 설렁 공부를 한 탓인지, 봄바람이 불어 마음이 유해진 탓인지. 당장 내일 아침에 해야 하는 발제를 손도 안 댔는데 한껏 느긋하다. 내일은 수업이 끝나고 민추 가기 전까지 꽃사진이라도 찍어 볼까. 목련이 만개하기 직전이다. 더보기
3월 26일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수는 없지만, 다만 십 분짜리라도 새로이 극본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목욕탕 에서 통학하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온전히 내 마음대로라 스스로와 대화할 시간이 대단히 많은데, 특히나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았던 오늘은 하루 종일 새 극본 구상에 무척 즐겁게 걸었다. 사정이 허락된다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대학원의 마음 맞는 동료들과 상연도 해 보고 싶다. 더보기
3월 25일 연구실에 앉아 있다 민추에 가고, 끝나면 다시 돌아와 잠시라도 연구실에 앉았다 새벽녘에 목욕탕 에 가 쪽잠을 청하는 날이 계속된다. 비장의 연구를 진행중인 것도 아니고, 동료들에 비해 월등한 성취를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저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것 뿐인데도 사정은 편하지 않다. 불규칙한 생 활 탓인지, 농 삼아 말하듯 나이가 든 탓인지, 며칠만에 한 번 인천에 잠시 들러 눕기라도 하면 군에 있을 때조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알람이 귓전에서 울리는데도 여남은 시간쯤 까무러쳐 있기 일쑤 다. 그러다 보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마치 내 일생의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인 양 여기게 된다. 남의 작은 말에 상처받고, 스스로의 작은 실수에 자책한다. 어제, 권 새색씨 사마께서 나와 친구들이 신혼.. 더보기
아사노 이니오, <빛의 거리> 얼마 전 알라딘에서 스테디셀러 1000종을 50%에 할인하길래 왕창 주문한 적이 있었다. 사고 싶었 던 것과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을 합치고 보니 총 할인금액만 해도 십만 원이 넘었다. 겸해서 스스로에 게 주는 알뜰주부 상으로 추가한 아사노 이니오, 의 표지이다. 작가의 전작 은, 내용은 심상했지만 와 닿는 데도 있었고 무엇보다 유명도를 전혀 모른채 헌책방에서 싸게 구입했던 것이라 만족도가 컸었다. 마침 선물하기 딱 좋은 사람이 있었던 것까지 셈하면 한참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이야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산 것은 사실인데, 이번엔 판형 이 큰탓인지 8000원 돈이었고 게다가 정가, 내용은 역시 심상이라 실망하는 것이 도리이건만 오로 지 표지 때문에 웃고 말았다. 색도 번쩍번쩍한.. 더보기
에잉 바쁘기도 했지만, 며칠간 홈페이지가 닫혀 있었던 탓에 격동의 한 주를 적지 못했다. 글이 모두 날아 가 버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는데 순식간에 해결해 주신 어윤선 사마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가벼운 일기나마 적으면서 차차 다시 쓰기 시작하려 했는데, 다섯 칸 중 한 칸 뜨는 외솔 관 네스팟은 사람 마음도 모르고 사진 한 장 올려주질 않는다. 덕분에 근래에 마음에 와 닿는 그림 이 있어 관련하여 한참 쓴 일기도 날려먹고, 아무튼 살고 있다는 기별 삼아 몇 자라도 남겨둔다. 더보기
3월 10일 민추로 가는 버스에서, 두 눈으로는 처음 오드 아이odd eye를 보았다. TV에서 본 것도 주로 고양 이들의 눈이었을 뿐이다. 열 살 가량의 남자아이로 한 쪽 눈동자가 호수처럼 새파랬다. 특히 나이 를 먹은 뒤로는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내가 처해 보지 못 한 그의 상황들을 생각하려 애쓰는 습 성이 생겼는데, 너무 의외의 광경에 접하면 그 정도의 각오로는 버텨낼 수 없는 모양이다. 아이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 하고 멍해져서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는 내 쪽으로 눈길을 돌 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잠시 눈길을 마주친 뒤 다시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쁜 생활에 잠을 흡족히 못 잔 탓인지 수업에 맞추려 꾸역꾸역 빨리 먹은 김밥 한 줄 탓인지 논어 수업을 듣다 앉은채로 잠들어버렸는데, .. 더보기
외솔관 공사중 연구실이 있고 동아리방이 있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외솔관이 최근 로비 공사 를 시작했다. (로비에 대응하는 우리말은 없나? 갑자기 생각해서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 막상 들으면 헛웃음이 나올만큼 간단한 대응말이 있는 것일까? 아무튼 '현관'은 영 아닌 것 같아 일단 로비로 적었 다.) 사회의 각종 일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계시는 국문과 이윤석 영감님의 구술에 따르면 단순한 돈 지랄이라고 하는데, 풍수 등을 대체로 믿는 편인 나로서는 1억 5천이라는 큰 공사 비용을 고려하여 도 좋은 방위로 문이 트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인문학의 대학원 연구실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건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방학 내 조용하다가 굳이 개강을 하루 앞두고.. 더보기
3월 6일 오늘은 민추에서 을 처음 배웠다. 아직은 글자를 손으로 짚어가며 따라가기 바쁘지만, 그래 도 시작은 했다 싶어 한편으로 마음이 놓인다.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신촌에 사는 선배와 항상 동행하는데, 심상한 이야기에 취해 있다가 갈아타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엉뚱한 곳까지 갔 었다. 북한산이 보여서인지 이전의 3월보다는 조금 더 추운 밤이었는데, 덕분에 더 오래,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백양로를 올라오는데 반 학생회 꼬마들에게서 개강파티에 오라는 문자가 왔다. 확실히, 잠깐 잘 키운 07,08이 20대를 함께 한 02보다 백배 낫다. 촌음을 잘라 유치하지만 건실한 일 기를 쓰고, 숙제를 조금씩이라도 더 하고, 청소년들을 만나러 간다. 기대하시라, 내일쯤엔 09학번, 곧 90년생과 빠른 91년생.. 더보기
3월 5일 민추에 다녀와 연구실에 앉은 열 시. 계산이 어렵긴 하지만, 돈 아낄 생각 하며 목욕탕을 전전하다 가는 몸이 축나고 말 일정. 주말쯤엔 동문의 고시원이라도 돌아볼까 생각하지만 당장 닥친 일을 꼽 아보면 연구실에서만 자도 시간이 모자라다. 대체로 아름다운 젊은 날이었지만, 하릴없이 밤을 새워 고스톱을 치던 때나, 연예인 이야기 등으로 채우던 술자리 등의 시간은 조금씩 덜어와 여기에 붙 였으면 한다. 혹은 미래로부터 소정의 돈을 빌려도 좋겠다. 그래도, 어제는 권나은 님의 첫째 아이가 생일을 맞았고, 오늘엔 백수 시절의 베프 박민아 양의 결 혼 소식이 날아들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눈을 좁히고 웃게 만드는, 반갑고 반가운 일이다. 더보기
기상이의 생일 나는 전학의 경험이 고작 한 번인, 대단히 행복한 학창시절을 누렸다. 그나마도, 아직까지 우리 가족 내에서 가족사에 있어 가장 큰 경제적 분기로 평가되는 관교동의 아파트 당첨 때문이었으니 하찮은 전학 따위가 아니라 영전 급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내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휴대폰이나 광대역 통신망은 커녕 SBS의 개국을 앞두고 다 같이 멀티미디어 시대의 개막에 두근거 리던 시절이니, 열 살 언저리의 아이들이 전학을 간 아이와 같이 공부하던 때처럼 연락하고 만날 도리는 없었다. 전학 이전의 친구들과는 그 후 스무 살 언저리에 붐을 이루었던 친구 찾기 싸이트 등을 통해 몇 차례 만났으나 결국 무분별한 혈기로 곤란한 추억만 남겼을 뿐이다. 한 번의 전학부터 지금까지, 신촌에서의 자취나 영종.. 더보기
김수환 추기경 별세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무엇에나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는 것은 크게 마음에 남았다. 딱히 관련하여 올릴 사진이 없어 얼마 전 전동성당에서 찍었던 것을 붙 인다. 전동성당은 진산사건의 윤지충이 붙잡혀 죽은 터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가시는 길 조금 이나마 닦아 드리는 마음이 되지 않을까 싶어 굳이 올린다. 평안하시라. 더보기
신입생을 만나다 공부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도 여러가지 일을 겪어야 하는 '직업'으로서의 대학원생에 툭툭 치이는 한 때이다. 하필 오랜만에 돌려 본 음악 폴더에 exit music이 있던 바람에 내내 다소 침울해 하다가, 반 회장을 맡고 있는 배정현 군에게서 갑작스 레 걸려온 전화에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의 신입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국문 1반에 십여년 간 있으 면서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동명이인을 만났는데, 09학번 대호는 91년생이란다. 기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술을 마시고 목욕탕에 누워서 새로운 대호와 차이지는 그 십년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한참 생각하다 잤다. 오랜만에, 좀 웃었다. 더보기
지난하구나 공부도, 수양도. 더보기
이십대 후반은 반성으로 가득하다. 각오가 부족해 또다른 후회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도가 지 나쳐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한숨 돌리고 생각해 보면 무엇 하나 가르침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본성이 아닌 고로 자신과 남이 모두 편안해 하는 지점을 찾지 못해 항상 위태위태하 지만, 그래도 기꺼워하는 바를 말하고 실천하더라도 여전히 만족할 수 있는 때가 되기까지는 돌아 가지 않겠다. 첩경은 없고, 있더라도 취하지 않는다. 적어도 서른까지는, 하고 다짐했던 시작. 이제 일 년 남았다. 사 년을 지켰으면 사십 년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더보기
2월 4일 장례식 절차를 다 마치고 일주일여 만에 돌아왔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고금의 학문을 통달할 수 있을 것처럼 위안감을 줬던 연구실 내 자리였는데, 다시 오래 앉아 있다보니 좋은 노래 나왔다고 멍하니 수십 번씩 듣는가 하면 이따금 드는 몹쓸 생각인 서울까지 와서 집도절도 없이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마음에 쓸쓸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간사한 물건이다. 내일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중간 점검차 전주에 내려간다. 날이 풀렸으니 좋은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 와야지. 더보기
2월 무언가를 쓰기는커녕, 논문이 아닌 보통의 책을 읽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눈은 TV자막을 읽 듯 몇 행을 넘기기 일쑤이고 자판에 익숙해진 손가락은 한 획조차 곱게 긋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그저 인도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몇 시간에 걸쳐 인도 꿈 을 꾸었다. 석사가 끝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다시 한 번 외국에 가고 싶다. 더보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눈 오는 구정날. 다른 것보다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엄마가 더 생생히 기억하게 될까봐 안타까웠다. 나이먹고 하게 되는 일은 어릴 때 하던 접시 나르는 일과는 달랐다. 삼일 밤낮을 일하고,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무거워 슬픈 마음도 안 든다. 와 주신 분들이 혹시 보실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굳이 일어나 일기를 쓴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보기
공부하기 싫어요 1 시험이 다가올수록 점점 삶에서 의미를 더해가는 괜한 딴 짓들. 두 번의 방학을 포함하여 1년 넘게 를 한 번 안 그리다가 요새는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려대고 있다. 오늘의 공부하기 싫어요 그림 첫 번째는 남미의 어떤 신. 남미의 고대 신 그림들은 어딘가 슬픈 듯한 눈매도 눈길을 잡아 채지만 마 치 만화처럼 내용이 몇 장동안 이어지는 구성도 흥미롭고, 선이 무척 매력적이기도 해서 언젠가 그려 봐야지 그려봐야지 하던 차에 마침 새로 산 이라는 책에 몇 장 있길래 그려 봤다. 애석하게도 본문에서는 정작 이 신이 어떤 신인지 알 수 있는 단서조차 없어 그저 어떤 신으로 쓰고 넘어간다. 언제나와 같이 의도적이지 않은,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대단히 공격적인 파괴와 재해석이 이루어진 탓에 원작은 감히 함께 올리지 않.. 더보기
공부하기 싫어요 2 SCEJ의 야심작 . 파타 파타 파타 퐁. 퐁 퐁 파타 퐁. 더보기
국화차 금매 찌에찌에가 준 국화차. 자리에서 자주 일어나기 싫어하는 습성 탓에 컵이 선식 사면 주는 사은 품 대용량 컵이라 사진은 밉게 나왔지만. 마른 국화 세 송이를 넣고 물을 부으니 들풀향이 화악하고 올라왔다. 유년시절 저녁 먹으러 집에 돌아가는 길의 석양이 기억나기도 하고, 군에 있을 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던 부대 근처의 영종도 갈대밭도 생각나고. 오늘은 일어나면서부터 코끝에 떠 오르던 한 냄새가 무엇인지 궁금해 궁금해 하다 하루가 다 갈 즈음에야 기어이 기억해 낸, 말하자면 냄새가 하루의 토픽이었던 날이라 감흥이 더했다. 더보기
호주 기념품 석사 수료를 고작 한 학기 남겨두신 빛나는 지성 성아사 선배님께서 얼마 전 다녀오신 호주 마실의 기념품으로 하사한 오리너구리. 잠깐씩 가지고 놀 수 있는 물건들이 잡다히 널려 있는 내 책상 위에 서 며칠째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군림해 계시다. 무척이나 졸립던 한 밤 무심코 가져다 얼굴에 비비 다가 그 부드러운 촉감에 그만 그대로 엎어져 자고 말았다. 선배님의 증언에 의하면 무척이나 비쌌 다고 한다. 그런 줄 아는 수밖에. 죽기 전에 호주 가 볼 수나 있을까 모르겠네. 더보기
대학원 동기들 친애하는 허 감독님과 진엽 양. 셋 다 마신 것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피곤해 해서 함께 찍은 사진은 없 다. 비록 다음날엔 다들 병났지만, 공부해야지 작심하고 들어온 직장에서 새벽까지 쾌하게 술을 마 실 수 있는 사람들을 동기로 만난 것은 과외의 소득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큰 복이다. 체력 회복하는 대로 개학 전에 제대로 다시 마셔야지. 힘들 냅시다. 더보기
1월 17일 토요일 주말의 연구실은 고즈넉해서 좋다. 저녁이 되면 일요일이라도 신촌에 거주하는 석박사들이 스물스물 찾아들지만 오전이라면 나체로 공부하고 있어도 볼 사람이 없다. 문과대생이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외솔관은 영 잘못 지어진 건물.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는 며칠 전 왔던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옛 글을 읽다가 눈을 들어 보면 푸른 소나무에 눈이 쌓여있고, 와 같이 낭만을 즐기면 좋겠지만 애석 하게도 연세대는 주말에 난방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앙난방시스템이라 항의를 할 수도 없다. 괜한 녹차만 축내는 가운데 고작 오십여 번 남은 이십 대의 한 주말이 잘도 지나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