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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생일 새벽 네 시 무렵까지 지인과 신촌의 커피숍에서 녹차를 마시고, 첫 차를 기다리느니 느긋하게 몇 자 라도 더 읽으려 새벽안개를 헤치고 휘적휘적 연구실로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는 와중 에, 아카시아의 향기가 두터운 밤공기를 누비고 코를 찔렀다. 대학에 갓 입학해 신촌의 밤은 온통 제 것인양 펄펄 날아다니던 때에, 내게서 백매화 향이 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스물 여덟 번째의 생일이다.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서른 여덟 번째에도, 마흔 여덟 번째에도, 어딘가에든 서서 눈을 감고 무엇인가의 향을 맡고 있길, 바란다. 더보기
The Dark Knight (실제로 끝까지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지만) 코믹스까지 합해서, 배트맨에 관련된 작품 중에서는 팀 버튼의 'The Batman' 1편과 2편이 가장 훌륭했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The Bat man begins'에 적잖이 실망한 바 있었다. 'Batman Forever'나 'Batman & Robin'등의 이전 영화작들에서 느꼈던 배신감에 가까운 실망까지 기계적으로 더해져 그 영화에 관해 물어오는 지인 들에게 신랄한 혹평을 날렸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덕분에 미국에서 평론가들과 관객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팔랑귀는 별로 움직이지 않 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보기
청첩장 강독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을 보니 아버지 앞으로 청첩장이 한 장 와 있었다. 구월에는 주말마다 결혼식이 하나씩 잡혀 있는 탓에, 공부하는 티 낸다는 소리 들을까 두려워 미용 실을 찾아 덥수룩해진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연예인들의 이혼 경향에 관한 원장님의 시덥잖은 수다를 한 귀로 흘리며, 지금 결혼하는 친구들이 또래 중에서는 약간 빠른 편이니 해마다 구월이 되면 이렇 게 머리를 또 잘라야 하는 것일까 등의 생각을 했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머리를 자르고 난 며칠 뒤, 승호의 결혼식 전에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만나 무슨 선물을 사 줄지, 웨 딩 카의 운전은 누가 할지 등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승호의 청첩장을 건네 받았다. 데면데면한 사이 인 지인들의 결혼식에는 수 차례 참석해 왔지만 가장 .. 더보기
안대회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 속해 있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은 몇몇 개의 타 대학원들과 학점 교류를 맺고 있다. 단 50%이상은 모교 에서 수학할 것, 이라는 대단히 관대한 조건만이 붙어있을 뿐 수강신청란에서 타대학을 선택하기만 하면 모든 수업을 일거에 볼 수 있다. 카이스트나 서울대, 심지어 고려대까지 리스트에 있기는 하지 만 대개 세 시간이 연강으로 있는 대학원 수업의 특성상 같은 날에 다른 학교에서 수업이 있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지는 대체로 신촌권의 대학인 서강대와 이화여대이다. 그러나 나는 서강대로 등교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지 못 했고, 이화여대로 등교하는 여자선배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 했다. 공간을 바꿔 공부를 해 보는 것이, 단순히 아침에 다른 학교로 가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공부&#0.. 더보기
잘 자 갑자기 만나 저녁때에 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거기에 더 불러낼 사람, 몇 년간의 이야 기, 자리가 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만날 수도 있는 사람, 그들에게 진심으 로 할 수 있는 말, 신촌에서 차가 끊어져도 돌아와 첫 차까지 쉴 수 있는 연구실, 을 가진 인생이면 행복하다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새벽 한시 반.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가 울려 퍼진다. 나의 사랑하는 세계. 잘 자. 더보기
안녕 겉멋이 잔뜩 든 요즘에는 다른 작가의 훌륭한 필치에 거침없이 탄성을 토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책을 낸 모든 이를 스승으로 여겼던 어린 날의 독서에는 이십 년이 넘게 가슴에 자리잡을 문장들이 한 달에도 몇 개씩 찾아지곤 했었다. 청소년기의 독서 뿐 아니라 그 이후의 글쓰기에까지 정말로 큰 빚을 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작가 솔제니친이 죽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부고를 듣자 어쩐지 '나'의 아 주 작은 일부분이 잘려 나간 것 같았다. 언젠가는 겪게 될, 부모님이나 친구와의 사별 등에는 비할 바 못 되겠지만 그래도 신문을 읽고 밥을 먹고 다시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 구석이 내내 처 연했다. 며칠 전 같은 고전문학 전공의 학우들과 이야기.. 더보기
8월 4일, 前半 애당초 늦게 일어난 하루였다. 흐릿한 하늘 사이로 드문드문 햇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서야 눈을 감은 것이니 오후 두 시가 넘어 일어났지만 죄의식은 들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이 남들보다 조금 더 더운 것 뿐이라고. 기실 자신을 설득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시작한 다산 정약용의 강의는 정말 끝내줬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 하는 강독회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새벽 두 시에 시작한 하루였는데도, 세 시간의 수업이 끝난 뒤 허둥지둥 점심을 먹고 바로 연구실로 들어와 복습을 시작할 정도로 즐거운 수업이었다. 쓰러질 때 까지 할 수 있는 공부였지만,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동기인 재만이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생각 이 나 오랜만에 전화해 본 주희가 근처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길래 주희의 랩까지.. 더보기
8월 4일, 後半 동교동에 이르러, 서울로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좆이 입에서 천 번쯤은 난 여대생들의 앞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날이 더운 탓인지 해가 쩅쨍한 다섯 시 무렵인데도 백양로에는 사람이 없었다. 야식으로 산 던킨 도너츠의 봉투를 휘휘 돌리며 걷고 있는데, 중앙 도서관을 지날 무렵에 삼거리 근 처에서 작은 옆가방을 든채로 주위를 둘러보는 여자분이 눈에 띄었다. 공격적인 기독교 신자 혹은 증산교 신자일 것이다라고 내 안의 왓슨은 다시 한 번 냉철한 추리를 펼 쳤다.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아무튼 정답은 대순진리교 신자였으니 그리 틀린 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처에 이르자 여자분은 자신은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고 말을 걸어 왔다. 어차피 긴 백양로를 걷느라 몸에서 .. 더보기
오랜만의 INK family 우리 중 가장 먼저 결혼하는 승호와 첫 제수씨인 미연씨를 만났던 날. 2008년 7월, 신촌. 더보기
8월 2일 토요일 오늘부터 중용中庸 강의를 듣는다. 소년기의 허영심으로 대중서를 뒤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놓고 읽는 정식 강독회에 참여하는 것은 스물여덟의 오늘이 처음이다. 학계의 최첨단 논문들을 읽는 답시고 팔랑거리면서도 항상 학식의 근본이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었는데, 이제야 몇 년이 걸릴 지 모를 공부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한편으로 안도하게 된다. 언젠가 만들게 될 다음번의 블로그에는 개인적인 근황을 적는 일기 외에 주제별로 몇 가지의 카테고 리를 더 만들어 두고 싶은데 와중에 전공, 즉 고전과 관련된 것은 그 리스트의 탑에 있다. 이 기회에 처음부터 공부해 나가며 드는 거친 질문들을 모두 정리해 두었다가 그 카테고리에 넣는 것도 좋은 시 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해는 져 가는데 길은 멀다. 다행히 앞사람의 발.. 더보기
새벽 새벽 네 시, 외솔관 연구실. 근래 종종 밤새 공부하던 일본인 친구가 세 시쯤 퇴근하는 덕에 두 달 여 만에 혼자 연구실을 쓰게 됐다. 과감하게 이어폰을 빼자 플레이어에 걸어놓은 노래들이 연구실에 산산하게 퍼진다. 큰 마음 먹고 올려 놓은 음악소리 사이로 창밖에서 들어온 폭우의 소리가 섞인다. 식상하기 짝이 없는 'Mo' better blues'조차 훌륭하다. 재즈폴더를 통째로 새로 걸어 놓았다. 정신 놓고 번역하다 보면 어느새 갑자기 흘러나오겠지. 아름다운 밤이다. 더보기
7월 23일 번역을 하던 중 이체자異體字가 하도 많아 짜증이 나는 통에 미뤄 두었던 디지털 카메라 아이쇼핑을 해 보았다. 노트북을 구입할 때에는 컴퓨터 및 게임기 관련기기의 선택에 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 내고 있는 윤도환 옹께서 내 필요와 형편에 맞는 두세 개의 모델을 추천해 줬던 덕에 금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데, 카메라는 주위의 누가 전문인인지 알 수가 없어 과정이 무척 고되었다. 여러 사용 기들을 읽어 보고 쿨픽스 S510과 뮤 840의 두 기종으로 선택지를 좁히긴 했지만 초등학생이 쓴 듯한 '그거 구려여'같은 한 줄 평에도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카메라가 해결되고 나면, 유리한 요금제 때 문에 KTF로 옮겼던 이동통신사를 다시 SKT로 옮기고자 하는데 또 어떤 휴대폰 모델을 골라야 할지,.. 더보기
'The Simpsons' 中 Bart Simpson : (가발을 머리 뒤에 붙이고 장발인 척 흉내를 내며) 봐라, 봐. 난 대학원생이야. 난 서른 살이야. 작년에 육십 만원 벌었다네. Marge Simpson : 오, 바트야. 그러면 안 돼. 그들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야. 단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지. 더보기
7월 11일 늦은 아침을 만족스럽게 먹고 신문을 뒤적이다가 잠자리에 든다. 참된 한국전력 가족은 에어컨이 있 어도 쓰지 않는다. 침대 위에 대나무자리를 깔고 누워도, 과다한 체중의 몸뚱이에서 나온 땀은 절로 흘러내린다. 여섯 시를 알리는 곰살맞은 휴대폰 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에서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학교 에 가기 위해 옷을 입는다. 엄마는 새벽에 먹으라고 김밥을 싸 놓았다. 동주부터 지금까지, 공부하는 족속들이란 언제나 죄많은 것들이다. 두어 시간은 있어야 비가 올 쯤이라면 날씨는 청명하지는 않아 도 대체로 시원하다. MP3에 새로 쟁여 넣은 노래들이 잔뜩이라 걷는지 춤을 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부평의 석양과 인천의 하늘에 새삼스레 감탄한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시간은 지난다. 저녁 무렵에 서울.. 더보기
奇談 텅 빈 새벽의 연구실에서 영화 '기담'을 보았다. 난장판인 여름 공포 영화 가운데라면 하나쯤 섞여 있 어도 괜찮은 작품인 듯 하지만, 그간 접해 왔던 이 영화에 관한 가열찬 호평들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 았다. '기대치가 있었으니까'라는 변명을 얹어 줘도 좋게 봐야 범작. 그러나 음향과 공포스러운 이 미지 몇 컷은 천하일품이었다. 며칠 전에 잠 깬답시고 '장화, 홍련'을 다시 보다가 비명을 지를 뻔 했는데, 스스로가 '기담'을 새벽에 혼자 볼 수 있는 위인이라 생각했던 것은 엄청난 과대평가였다. 더보기
숙제 회사원들에게는 가물가물하거나 아예 옛날의 단어이겠지만, 직업을 공부로 택한 내게는 이십 년째 숙제가 있다. 문학을 공부하며 숙제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일단 풍부한 독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이십 대의 중반까지도 이 길을 확연하게 선택했던 것이 아닌 인생으로서는 앎의 깊이가 항상 얕게 찰 랑찰랑할 뿐인 것이다. (이 또한 편견일 수 있겠지만) 다른 분야라면야 날 잡고 각오하면, 독창적인 비평을 갖게 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 하더라도 적어도 텍스트를 읽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한문 학에서는 한 꼭지 읽는 것만으로도 날을 지새우기 일쑤다. 시간에 맞추자면 당연히 1차 텍스트가 아니라 2차 텍스트에서 얻은 지식을 조합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얕은 공부에 짜증을 내고 직업으로 대학원을 택한 터라 질리는 마음.. 더보기
촛불 새벽 다섯시. 외솔관 창밖으로 해가 뜨려 하고 있다. 밤사이 석유값은 몇십 원쯤 더 올랐을테고 죄없는 소도 하루 더 나이를 먹었고 조선일보는 어김없이 집 앞으로 배달 되겠지만, 국민 여러분, 여기에 꺼지지 않는 서툰 촛불 하나 켜 놓을테니 일단 한 숨 푹 주무십시오. 더보기
6월 10일 -광화문 앞의 컨테이너에 네티즌들이 합성으로 여러 가지 글귀들을 적어 넣었다. 출처 프레시안. 어제 밤 한 시부터 어청수 경찰총장의 지시로 광화문에 컨테이너로 방어벽이 쌓였다고 한다. 오늘 새 벽-아침의 글들을 검색해 보면, 출근길에 큰 불편을 겪은 시민 논객들이 촛불집회의 참가자들이나 화물연대의 파업주도자들이 쌓은 것으로 오인하고 ‘취지는 동의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논조로 쓴 블로그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공간에 올리는 글인데 정확한 정보 를 갖고 올려야 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폭발적인 역동성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까지 모색되는 이러한 미증유의 선진적 정치 축제에, 설마 국가 공권력이 이 따위의 작태로 대응 하리라고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까. .. 더보기
새벽. 외솔관 연구실. 근황 열흘이나 일기를 안 쓰고도 살 수 있다니 놀랍다. 숙제와 공부를 핑계로 어지간히 게으른 한 때이다. 한지훈의 본가가 간석동으로 이사를 와 부평 사는 효중이와 함께 구월동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소주는 십년째 쓰지만, 사람이 섞이고 추억이 섞이면 그나마 마실만 하다. 아무튼 이젠 한지훈도 준 인천시민. 말하는 꼴로 봐서는 정식 시민 되기 백년 남았다. 일들이 계속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을 두 차례나 옮기고, 할머니가 쓰러진 뒤로 함께 살던 삼촌이 집을 얻어 나가고, 새로 얻은 그 집에 보일러가 고장나고, 새로 산 컴퓨터는 불량화소, 교환해 달라 고 했더니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핑퐁, 겨우 해결했더니 이번엔 유통업체와 택배업체가 핑퐁. 요샌 정겨운 대화보다 따박따박 따지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다.. 더보기
甚夜 조용하기도 하고, 집중도 잘 되는 듯 해서 요 근래에는 학교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를 하고 있다. 중 앙도서관이 문을 닫는 열 시쯤이면 교정은 대체로 한적하고, 새벽 한 시나 두 시쯤 되면 연구실의 사 람들도 짐을 챙긴다. 수천 권의 책에 둘러싸여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보면, 사고 싶은 레고를 손가 락만 빨며 쳐다볼 때의 이 길을 택한 아쉬움이 벌충될 만큼의 만족감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은 새벽 세 시. 옆에는 옛사람의 글들이 잔뜩 쌓여 있고 외솔관의 창문 밖에는 비가 나린다. 더보기
지연의 결혼식 일요일이었던 어제 서강대 성당에서 있었던 지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지연이와는 미랑님, 지영양과 함께 최강 6학년 3반 동창이기도 하지만 어릴적 성당에서 천영성체를 같이 받은 교우이기도 하다. 엄마의 장난감을 사 주겠다는 말에 속아 한 달 동안이나 억지로 교리공부 를 해야 했던 나는 세례식 이후로 성당에 발길을 끊었지만, 아무튼 성당과 집 사이를 여러 명이 함께 오가며 떠들고 장난치고 하던 것은 즐거운 기억이다. 십육 년 전의 일이다. 비록 함께 올린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닭띠들과 비교해 보면 승학초등 학교 2회 동창들은 대체로 유난히 동안인 편이다. 지연이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릴 때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친구라, 식장의 입구에 서 있는 결혼사진을 보고 있는데 .. 더보기
激動週末 이재용이 후계자로서 살아남은 것, 양정례가 국회의원 오찬에 참가한 것, 이 정도쯤 되어도, 개탄할 수는 있지만 20대 초반에 정몽준의 뒷통수 때리기와 탄핵을 겪었던 나로서는 대경실색할 일은 아니 다. 있을 법한 일이, 있을 법한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니까. 사실 이 문단에 이렇게 조용히 마침표를 찍고 넘어가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운하 정책이 이름만 바꾸고 물밑에서 계속 추진 중이었다는 뉴스만 해도, 큰 일기거리이다. 하지만 서울시장부터의 현 대통령의 노정을 봐 온 사람이라면, 강세를 주기 위해 '놀라운 일이다'라는 표현을 썼을지언정 실제로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 법한 놈이, 할 법한 짓 했으니까. (이 '놈'이라 는 표현이, 논거도 없는.. 더보기
근황 한동안 어디도 나다니지 못하다가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 요 일주일이었다. 있었던 일 위주로 짧게 적는다. 가끔 구독하는 한 잡지의 창간 8주년 행사에 응모해 시가 20만원 상당의 전자사전에 당첨되었다. 노 트북을 살 돈은 안 되고, 옥편을 항상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하여 난처해하던 차에 전해진 기쁜 소식이 었다. 이런 곳에 의외의 운이 있다. 좀처럼 응모하지 않지만, 했다 하면 당첨. 인도에서 만났던 은영씨와 종로에서 다시 만났다. 언니인 혜영씨는 지방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고 해서 차후를 기약했다. 인사동의 골목 술집에서 인도에서의 예전 일들을 이야기하고, 찍어 온 사진을 나누고, 잔비가 나리는 청계천과 종묘를 좀 걸었다. 취하기 바로 직전 정도까지 어정쩡하 게 술을 마셔 인천으로 내려오는 길이 .. 더보기
축전 주부 권나은(27)씨의 순산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첫 조카 얼굴도 아직 못 봤는데, 이런 길보라니. 삼신할머니 야근의 주범 권나은 씨. 행복하십시오. 더보기
잡상雜想 쇠고기 수입과, 그에 관련된 집회 문제로 연일 좌중이 시끄럽다. 도대체 이 일기에 ‘더 이상의 충격 은 없을 줄 알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써야 하는 것인가, 이 정국은. 와중에 박통의 딸은 아직도 복당 復黨이니 어쩌니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해대고. BBK도 잊혀지고, 삼성특검도 잊혀지고. 조중동이 인포information도 아니고 팩트fact를 가지고 장난질 해대는 짓거리야 복장이 터지면서도 수십 번 봐 온 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꺼내드는 색깔론 얘기에는 정말 눈에 불이 난다.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 중에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사나 집회의 운영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천 명이 넘는 집단이 도심 의 한복판에서 잘.. 더보기
환영해요 인도 여행기를 한참 동안이나 쉬는 바람에 일기에는 등장하지 못 하였지만, 홀로 돌아다녔던 길 중 가장 즐거운 동행이었던 두 자매님. 함께 있을 때에는 인도인들 뿐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까지 셋이 눈이 꼭 닮아 삼남매 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덕분에 갠지스에서 투명해졌던 내 영혼은 상처로 얼룩지고. 두 분 중 동생이신 은영씨에게서 한국에 비자를 갱신하러 잠시 돌아왔다는 메일을 받았다. 때늦게 일 기장에 초대하며 보고 즐거워 하시라고 환영삼아 올린다. 2006년 11월, 꼴까타 대학 교정. 평소에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뚱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나인데, 더운 날씨에, 볼 것 없는 도시에, 길까지 잃고 얼마나 짜증이 났었는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런 나를 나무라며 자매 분들은 사진은 무조건 가식적 으로 찍는 .. 더보기
?? 할머니는 눈을 떴다. 눈꺼풀을 연지는 몇 주가 지났지만, 눈동자를 움직이며 말하는 사람을 쳐다 보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가족들은 합의하에 할머니를 지금 있는 일반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요양 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모시기 전날 마지막 저녁 면회에는 시간이 되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혼자 갔는데, 누군가가 죽고 있었 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양원으로 옮기는 날에는 할머니를 싣고 가기 위해 구급차가 왔다. 할머니의 침대가 나간 뒤 간호사 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은 기저귀와 물티슈 등을 주섬주섬 싸고 있는데, 거즈아줌마의 주위에 사람들 이 와 있었다.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누워 있는 아주머니를 나는 거즈아줌마라고 불렀다. 양쪽 눈에 거즈를 붙이고 입에는 대부분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모양새가 .. 더보기
보이스피싱 하루에 보이스피싱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한 놈은 서울지검. 한 놈은 서울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서울지검 사내는 내 전화번호를 묻다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하는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내 말이 끝 나자마자 전화를 끊고, 사이버 수사대 김 경사는 직업이 대학원생이라는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전 화를 끊었다. 두 번째 전화를 끊고 나서 112로 신고전화를 하자, 경찰아저씨는 그런 놈들이 노리는 것 은 비교적 의심이 적은 주부와 노년층이라며 스스로를 20대의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한 것은 아주 현 명한 처사였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진짜 대학원생인데...라고 생각했다. 더보기
봄비 봄비가 온다. 이런 때에는 반드시 꺼내드는 여남은 개의 명반들을 플레이어에 걸어 놓는다. 옆에는 네스퀵 두 봉투의 성은에 힘입어 초코맛으로 변신한 서울우유 천 밀리리터. 천하무적이다. 더보기
4월 16일 수요일. 시청에서 재령과 수와. 지난 주 수요일의 일이다. 정명기 선생님은 갑자기 날이 좋으니 야외수업을 하자고 하셨다. 학생은 나까지 넷이라 자리는 중요 하지 않았다. 천천히 위당관에서 내려오며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상대 앞 풀밭에 앉았다. 시절은 그야말로 봄이었다. 해가 갈수록 절정의 봄보다는 꽃들이 꽃눈에서 피어날락 말락 하는 음란 한 초봄을 좋아하게 되지만, 어느 때의 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감탄하고야 말, 그런 봄이었다. 야외에서의 수업이라 드문드문 섞여드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그러나 출연하는 인물들은 모두 국문학계의 거장들) 을 들으며 눈을 좁게 뜨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멀찌감치의 벚꽃나무가 꽃잎을 비처럼 뿌리우는 것이 마치 동양화 같다가, 내 쪽으로 바람이 불자 점처럼 보이던 잎들이 점차 질량감을 가지며 3차원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