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3.06.05 모닝 콜 (2)
  2. 2013.02.22 도서관에서 (2)
  3. 2013.02.05 무지기(無支祁)
  4. 2013.02.05 그림자 없는 아이
  5. 2013.02.05 130117, <그림자 없는 아이>
일기장/20132013.06.05 08:06

 

 

 

 

 

참고할 것이 있어 정미년인 1667년의 현종실록을 뒤지다가, 밤을 새는 바람에 뻑뻑해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기사가 있어 옮겨 적는다. 짧은 글이지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현종 14권, 8년, (1667 정미년/ 청나라 강희 6년)

 

8월 6일 무인戊寅

 

배천에서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 머리에 몸이 두 개였다.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는 족족 모으는 편이라 웬만한 기록을 보고서는 딱히 놀라거나 하

 

지는 않는데, 비슷한 이야기라도 개인 문집에서 보는 것과 조선왕조실록에서 보는 것은 확실히 임팩트의 차이가

 

있다. 실록에도 이런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오니 이 참에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하나씩 주워다 쟁여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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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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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표현력으로는 이 충격을 뭐라 해야할지....
    모닝콜이라고 해서 누구나의 상상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책 속의 문장을 모닝콜 삼았던 이가 최대호님 말고 또 있었나 싶네요.
    눈이 반쯤은 자민 나른한 여름날 오후, 저에게는 최대호님 글이 모닝콜이었습니다.

    2013.06.05 14: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과찬이십니다.

    2013.06.07 0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32013.02.22 01:26

 

 

 

 

재학 중인 연세대학교의 중앙 도서관은 구 도서관과 신 도서관의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주로 찾는 곳은 인문 도서가 있는 구 도서관 2층과 사회-예술 도서가 있는 구 도서관 3층이다.

 

 

 

 

2층과 3층은 내부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때문에 2층에 있다가 3층의 도서를 찾고 싶을 때, 굳이 2층의 출입

 

 다시 나가 3층의 출입구로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다. 내부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나는 대체로 대출할

 

도서의 위치를 미리 검색해둔 뒤, 2층의 출입구로 들어가 내부의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3층의 출입구로 빠져나오

 

는 동선을 짠다.

 

 

 

 

그런데 계절에 따라 여덟 시에서 열 시 정도까지 개방하는 2층 출입구와 달리, 3층 출입구는 언제나 저녁 나절이

 

봉쇄가 된다. 봉쇄가 되고 나면 3층에서 일이 다 끝났어도 내부의 계단을 통해 다시 2층으로 내려가 2층 출입

 

빠져나가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커다란 수고가 드는 일이 아니라 그저 시

 

키는 대로 따라왔다.

 

 

 

 

어제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2층에서 출발해 3층에서 볼일을 마친 나는 3층의 출입구로 빠져나가려 했는

 

데, 3층의 출입구가 닫혀 있었다. 책을 찾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내부의 계단을 통해

 

 층을 내려가 2층의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2층의 출입구도 닫혀 있었다. 깜짝 놀라, 2층이 닫힐 정도로 시간이 지났나, 혹 나만 갇혔나, 하고 두리번

 

두리번거려 보니,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좌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크게 깜빡깜빡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2층이 아니고 3층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아마도 큭큭거리며 열중해서 듣고 있던

 

팟캐스트 탓이 아닐까 싶어 이어폰을 빼고, 정신 팔고 다니지 말자 대호야,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내부의 계

 

단을 통해 2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2층의 출입구라고 생각한 곳은 또 잠겨 있었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3층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

 

했다. 이번에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한 차례 더 같은 일이 반복되면 상황이 내 판단력과 통제권을 벗어날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일단 우뚝 서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똑같은 방식을 다시

 

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부의 계단 옆에 서서 다른 학생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래지 않아 연인으로 보이는 어린 두 학생이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계단을 통해 내려갔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이번에는 2층으로 내려와, 열려있는 출입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옷

 

을 벗다 보니, 속에 입은 티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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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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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도 지하 매점에서 파는 호두과자 좋아했는데 요즘에도 파나요?:) 진짜 호두가 하나씩 들어있어서 공부하다가 가끔 사먹곤 했거든요.

    2013.02.23 08: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는 간식을 하지 않는 편이어서, 식사류를 팔지 않는 중도 매점에는 가 본지가 오래 되었네요. 호두가 들어있는 호두과자라니, 당연하면서도 무척이나 낯선 단어여서 재미가 있습니다.

    2013.02.27 05: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異談2013.02.05 02:30

 

 

 

 

 

 

무지기(無支祁)는 전설 속의 수신(水神)의 이름이다.

 

 

 

 

무지기가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상고 시대인 우임금 때이다. 평화로운 때를 가리키는 '요순시대'라는 말

 

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통치했던 시대를 말한다. 우임금은 범람하기 일쑤였던 황하의 치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

 

끈 공적을 인정받아, 바로 그 순임금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다. 기록에 의하면 우임금이 치수 작업을 한 기간

 

은 9년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옛 기록에서 9년은 단지 십 년에서 한 해 모자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

 

척 긴 시간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그 간에 여러가지 괴상하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무지기는 회수(淮水)와 와수(渦水)의 수신(水神)이다. 회수(淮水)와 와수(渦水)는 중원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으

 

로 흐른다. 지금의 양자강, 곧 장강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 강의 수신인 무지기가 우의 작업에 계속하여 훼방

 

을 놓았다. 기실 강의 범람은 인간에게나 피해이지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해마다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

 

니, 물의 신인 무지기가 치수 작업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임금은 여러 신하를 시켜 그를 제지하고자 하였으나 계속하여 실패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무지기의 키는 15m

 

에 달하며 목이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힘이 코끼리 아홉 마리보다 셌다고 한다. 이 묘사는 아마도 장강에 사는 큰

 

어류나 아니면 장강 그 자체가 갖는 파괴력에 대한 민중의 공포심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몇 차례의 시도 끝

 

에, 우임금은 마침내 쇠사슬로 무지기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무지기의 처분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하나는 강소성(江蘇省)의 균산(龜山), 혹은 군산(軍山) 아래에

 

가둬두었다는 이고, 하나는 쇠사슬로 꽁꽁 묶어 회수의 강바닥에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산 아래에 갇혔다는 첫 번째 결말은 무지기의 외모가 큰 원숭이와 흡사했다는 묘사와 결합하여 후에 <서유기>

 

영감을 었다는 설이 있다. 곧, 손오공이 오행산 아래 깔려 있다가 삼장법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게 되는 설

 

무지기의 이야기로부터 발원했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대표적 문학가인 루쉰이 대표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였

 

고, 근래 <서유기>의 신선한 재해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는 만화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

 

도 어느 정도 이 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보다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강바닥에 던져 버렸다는 두 번째 설이다. 앞서 말하였듯 무지기는 장

 

강 물줄기의 강한 힘을 비유하는 상징일 가능성이 높다. 이 물의 힘은 치수작업에 의해 제어되고 안으로 수그러

 

든 것 뿐이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지기를 묶어 다시 강 안으로 넣었다는 쪽이, '치수'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인식에 보다 효과적인 상징으로 작용해 더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무지기는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 8세기 당나라 때에 다시 등장한다.

 

 

 

 

회수 인근의 초주(楚州) 라는 지방에서, 한 어부가 낚시를 하다가 큰 것이 걸린 것을 느꼈다. 혼자서는 도저히 끌

 

어올릴 수가 없는 것을 알고, 이 어부는 물 속으로 들어가 무엇이 걸렸는지 살펴보았다. 낚시는 거대한 쇠사슬에

 

걸려 있었는데 쇠사슬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부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다음날 초주의 자

 

사(刺史) 에게 이런 일을 고했다. 자사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을 가리키는 관직명으로, 이

 

때의 자사의 이름은 기록에 따라 이탕(李湯)이기도 하고 이양대(李陽大)이기도 하다.

 

 

 

 

자사는 수십 명의 어부들에게 명하여 쇠사슬을 끌어올리게 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어, 50마리의 소를 매

 

달아 끌게 하자 그제야 쇠사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참 끌어내고 있는데 고요하던 강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사슬의 끝에 거대한 원숭이 모양의 괴물이 딸려 나왔다.

 

 

 

 

이 괴물의 몸은 푸른 털, 머리 부분은 흰 털로 덮여 있었으며 이빨은 눈처럼 희고 발톱은 쇠와 같았다. 눈을 감고

 

있다가 다 끌어내고 나자 번쩍하고 떴는데, 안광이 번개와 같았다. 괴물은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다가 쇠사

 

슬에 매인 소들을 끌고 다시 강으로 돌아갔다. 이때의 사람들은 이 괴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단지 일어난 일만

 

을 기록해 두었는데, 훗날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읽고는 무지기임을 알았다고 한다. 천 년쯤 후인 청나라 시대에도

 

이 쇠사슬이 발견되었다는 언급이 남아 있지만, 무지기에 관한 기록은 당나라의 것이 마지막이다.

 

 

 

 

무지기는 왜 다시 강으로 돌아갔을까. 쇠사슬에 묶여 있어 어차피 어디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보이

 

기는 하지만 의문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 홍한주는 <지수염필>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성신(聖神)인 우가 그 발을 쇠사슬로 묶어두고 감히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가

 

어한지 이미 수천 년이며, 그것은 신물(神物)이니, 어찌 숨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겠는가. 훗날 여러

 

의 힘으로 끌어당겨 꺼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지기(無支祁)는 애당초 스스로 쇠사슬을 벗고 이미 뛰어올

 

가버렸을 것이다. 어째서 사람의 힘을 빌어서야 비로소 물에서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일이 심히 의심스럽고

 

괴이하다.

 

 

 

 

홍한주는 주로 19세기에 저작활동을 한 인물로, 당대에 유행하던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고증

 

학이란 거칠게 말하자면 과학적 사고를 지향하는 인문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언급은 신화의 영역마

 

저도 논리적 정합성에 의거해 판단해 보고자 했던 그의 인식이 드러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보면야 애

 

당초 논할 수 없는 분야를 논한, 무리하다고도 할 수 있고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시도이지만, 나는 그 거대

 

한 간극을 한 필의 붓과 한 사람의 머리로 고찰해 보고자 했던 용기와 낭만이 부럽다. 무지기는 왜 다시 강으로

 

돌아갔을까. 나는 돌아가는 그 등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을 것만 같다. 그림의 원화는 테라다 카츠야의 <서유기

 

전대원왕(西遊奇傳大猿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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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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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談2013.02.05 02:14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늙은 사람의 아이, 귀신이 낳은 아이, 꿈 속에서 잉태하여 낳은 아이에게는 그림자가 없.”

 

 

라고 하나, 이는 시골 사람들의 어리석은 말로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하지만 옛 책에 증거가 있는 것은 의심할

 

수가 없다. 응소(應劭)풍속통(風俗通)》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류(陳留) 땅의 아흔 살 먹은 부유한 노인이, 소작인의 딸을 첩()으로 삼아 한 번 관계를 갖고 나서 죽었다.

 

후에 그 첩이 아들을 낳자, 본처의 아들이 첩에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서 성교를 할 수 없었을 것인데, 한 번 동침을 하였다고 어찌 아들이 생기겠소. 당신

 

이 밖에서 음란한 짓을 해 놓고 우리 집안을 더럽히려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는 서로 재산을 놓고 다툰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지역에서 해결을 하지 못했다. 중앙정부의 승상인 병

 

(邴吉)이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일찍이 듣자 하니 늙은 사람의 아들은 그림자가 없고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를 한 번 시험해 보

 

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여 그 말대로 시행해 보기로 했다. 때는 8월이었는데, 그 아이와 똑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를 데려다가 함

 

께 옷을 홀랑 벗겨 놓으니, 그 아이만 혼자서 춥다며 울었다. 또 두 아이를 함께 햇볕 아래 걷게 해 보니 이 아이

 

만 그림자가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탄복였다.

 

 

 

 

철학자 방이지(方以智)는 말하였다.

 

 

사람의 불알 아래쪽에 있는 힘줄을 영()이라 한다. 늙은 사람의 아들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러나 이것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이다. 원래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늙어서 불알 밑의 힘줄 영()이 없다는 것으

 

로, 정력(精力)이 매우 쇠퇴한 것을 가리킨다. 이 영()을 그림자 영(影)자로 해석하여 이런 잘못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노인 중에도 젊은 사람보다 정력이 강한 사람이 있고, 불알의 힘줄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

 

를 낳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은 그럴 듯하기는 하나 실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어떤 이는 노인이 낳은 아이는 한 살 때에는 그림자가 매우 흐릿하여 분명치 않다가도, 커서 혈기(血氣)가 왕성

 

해지면 보통 사람처럼 그림자가 짙어진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린 글을 현대에 맞게 의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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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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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2013.02.05 02:11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늙은 사람의 아이, 귀신이 낳은 아이, 꿈 속에서 잉태하여 낳은 아이에게는 그림자가 없.”

 

 

라고 하나, 이는 시골 사람들의 어리석은 말로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하지만 옛 책에 증거가 있는 것은 의심할

 

수가 없다. 응소(應劭)풍속통(風俗通)》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류(陳留) 땅의 아흔 살 먹은 부유한 노인이, 소작인의 딸을 첩()으로 삼아 한 번 관계를 갖고 나서 죽었다.

 

후에 그 첩이 아들을 낳자, 본처의 아들이 첩에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서 성교를 할 수 없었을 것인데, 한 번 동침을 하였다고 어찌 아들이 생기겠소. 당신

 

이 밖에서 음란한 짓을 해 놓고 우리 집안을 더럽히려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는 서로 재산을 놓고 다툰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지역에서 해결을 하지 못했다. 중앙정부의 승상인 병

 

(邴吉)이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일찍이 듣자 하니 늙은 사람의 아들은 그림자가 없고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를 한 번 시험해 보

 

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여 그 말대로 시행해 보기로 했다. 때는 8월이었는데, 그 아이와 똑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를 데려다가 함

 

께 옷을 홀랑 벗겨 놓으니, 그 아이만 혼자서 춥다며 울었다. 또 두 아이를 함께 햇볕 아래 걷게 해 보니 이 아이

 

만 그림자가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탄복였다.

 

 

 

 

철학자 방이지(方以智)는 말하였다.

 

 

사람의 불알 아래쪽에 있는 힘줄을 영()이라 한다. 늙은 사람의 아들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러나 이것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이다. 원래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늙어서 불알 밑의 힘줄 영()이 없다는 것으

 

로, 정력(精力)이 매우 쇠퇴한 것을 가리킨다. 이 영()을 그림자 영(影)자로 해석하여 이런 잘못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노인 중에도 젊은 사람보다 정력이 강한 사람이 있고, 불알의 힘줄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

 

를 낳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은 그럴 듯하기는 하나 실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어떤 이는 노인이 낳은 아이는 한 살 때에는 그림자가 매우 흐릿하여 분명치 않다가도, 커서 혈기(血氣)가 왕성

 

해지면 보통 사람처럼 그림자가 짙어진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린 글을 현대에 맞게 의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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