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記/2015 교토2015.11.27 22:07

 

 

 

 

물론 도지에 역사적인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절인만큼 부적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다른 절과 신사보다는 큰 것이 있다.

 

위의 사진은 그 중 오미쿠지おみくじ를 찍은 것이다. 일본의 영화나 만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로, 포장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 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 오미쿠지는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 미쿠지.

 

 

 

 

 

 

 

 

두 번째는 단출하게 행운 오미쿠지.

 

 

 

 

 

 

 

 

세 번째는 리락쿠마 오미쿠지.

 

 

 

 

 

 

 

 

 

네 번째는 칠복신 오미쿠지. 칠복신이나 마네키네코 등의 전통적인 캐릭터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미쿠지와 같은 전통 문화에 리락쿠마를 접합시키는 세련된 손길에는 무척 놀랐다.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도라에몽 오미쿠지도 있고 건담 오미쿠지도 있고. 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한 번에 살 생각이라 여기에서는 뽑지 않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 잠시 비를 긋는다. 등 뒤로는 대일여래 등의 멋지고 거대한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지만 촬영 금지라서 찍지 못하고 비오는 경내만 잔뜩 찍었다. 도지의 특별 전시회와 여행 일정을 맞출 수 있는 분이라면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여기 오기 전까지 내가 본 최고의 불상은 대부분 교토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었는데 도지의 부동명왕과 천수관음 상은 정말 굉장했다. 게다가 박물관에 있는 것들은 넓은 빈 공간에 알맞게 배치된 것일 따름임에 비해 이곳의 불상들은 공간과의 조화까지 계산된 것이니 더욱 흥취가 있었다.

 

 

 

 

 

 

 

 

교토 날씨는 새침한 아가씨 날씨에 비유한다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변화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번에 절절하게 경험했다. 햇빛과 빗발이 이렇게 서로 상관없이 나리는 날씨는 처음 봤다. 

 

 

 

 

 

 

 

 

그리고 도지의 명물 오층탑. 54.8미터의 높이는 일본의 목조탑 중 가장 높은 것이라 한다. 도지의 경내에서는 둘째 치고 절에서 나와 한동안 걸어가더라도 돌아보면 계속해서 보인다. 유홍준 선생님은 책에서 '1층부터 5층까지 거의 같은 비례로 올라갔기 때문'에 '위압적이지 않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하며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 '대지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거기에 놓인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하였다.

 

나는 외롭다는 지적에는 거의 반대의 느낌을 받았다. 층마다 줄어듦이 없어서 대단히 육중한 인상이었다. 다만 누군가가 거기에 놓은 듯하다는 평에는 크게 공감하였다. 무척 높은 탑인데도 어쩐지 아주 작은 탑 모형을 그대로 확대해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어찌 보면 공중에 합성 이미지를 띄워놓은 것 같은 인공, 인위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압도적인 광경이라 보면서는 즐거웠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여지나 여유 등을 느끼기 어렵다. 올려다 보는 사람에게 일부러 압도감을 느끼게 하려고 만든 디자인처럼 느껴진다.

 

 

 

 

 

 

 

 

떠날 때 새로 빨았던 내 운동화. 나오시마에서 한 번, 여기에서 두 번 죽었다.

 

 

 

 

 

 

 

 

도지 앞의 버스정류장에 섰는데 기다리는 버스가 한참 있다 올 판이다. 정류장 표지의 바로 뒤에는 양갱과 사탕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색깔이 화려하여 눈이 즐거워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 중 '우지의 돌宇治の石'이라는 사탕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즐거웠던 지난 겨울의 교토 여행 중에서도 윤동주의 마지막 행적을 좇아 방문하였던 우지 행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작은 병도 예쁜 사탕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저 이름이 아니었다면 굳이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자마자 하나 입에 털어넣어보니 과연 우지의 명물인 말차 맛의 사탕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밤에 맥주와 함께 먹으려고 밤양갱도 하나 샀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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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우

    몸상태가 메롱이라 연차쓰고 집에서 쉬는동안 대호님의 여행기를 정주행 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교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네요...

    2016.05.24 2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遊記/2015 교토2015.11.27 19:02

 

 

 

 

도지東寺에 갔다. '동사東寺'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고수는 꾸미지 않는 법이다.

 

절이 지어진 것은 796년의 일으로 물경 천이백 년 전의 건축물이다. 당시에 헤이안쿄京라고 불리웠던 교토는 계획도시로서 바둑판 모양 모양으로 구획되었다. 지금도 교토의 거리에 산조三条, 시조四条, 고조五条 등의 숫자가 들어간 이름이 나란히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바둑판 모양의 정문, 즉 출입구가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며 수많은 괴담의 무대가 되는 라쇼몽門이고 라쇼몽 양쪽에 배치된 것이 사이지西寺와 도지東寺이다. '서사西寺'는 이후 몰락하여 지금은 폐사터만 남아있지만 도지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다시 찾은 교토에서 첫번째 방문지로 도지를 고른 것은 봄맞이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이름난 마쓰리 뿐 아니라 유적지 개방이나 유물 전시 등도 시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꽤 많다.

 

 

 

 

 

 

 

 

지나가면서 유명한 오층탑을 슬쩍. 맛난 것은 맨 나중에 먹는 습성대로 오층탑은 나가는 길에 가기로.

 

 

 

 

 

 

 

 

비는 이미 거세어졌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옆에서 휘몰아치는 기세였기 때문에 우산은 이미 기분 좋은 색의 악세사리였을 뿐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도지에 들어가서 곳곳에 눈에 띄는 표지판은 봄맞이 특별 전시회가 아니라 '납경소納經所'라는 안내문이었다. 납경소라면 경經을 드리는納 곳所인데, 무슨 경을 누구에게 드린단 말이가. 의문을 해소하려면 '구카이空海'라는 스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구카이空海는 일본 불교계의 수퍼 스타이다. 진언종宗을 창시한 개조로서 천태종의 최징과 함께 양대 거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호 또한 '불법을 널리 폈다'는 뜻에 '홍법대사師'이다.

 

 

 

774년 생으로 일찍부터 교토에서 불교 공부로 이름을 날렸으며 서른이 되던 해 당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었던 당나라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때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전수받고 돌아와 진언종을 창시하게 된다. 

 

불교의 교파에 대한 설명은 어렵다. 현교顯敎-밀교密敎의 명확한 구분부터가 쉽지 않은데 천태종, 진언종과 같이 종파의 이름까지 나오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간단히만 정리하면 이렇다.

 

진언종은 밀교다. 현교顯敎의 현은 드러나다 현, 이고 밀교의 밀은 은밀隱密하다, 할 때의 그 밀이다. 말 그대로 현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인간의 몸으로 드러나서 가르친 것을 따르며 밀교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불성佛性 그 자체를 추구한다.

 

외부인이 가장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차이는 교주와 경전이다. 현교에서는 석가모니, 즉 석가불을 신봉하고 밀교에서는 태양의 인격신인 대일여래來를 신봉한다. 현교의 경전은 석가모니불이 설법한 대승경전(大乘經典), 소승경전(小乘經典) 일체이고 밀교의 경전은 금강정경(金剛頂經), 대일경(大日經)이다.

 

밀교는 일종의 대중불교운동의 결과물이다. 어려운 불법을 외우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진언言을 외우고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수행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삼밀密, 즉 행동[身密], 말[口密], 생각[意密]이 부처와 같아지면 자기가 곧 부처가 된다는 사상이다. 이름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태반이었던 시대에 매력적인 사상이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넘어가자. 아무튼 수퍼스타 구카이는 진언종의 창시자. 진언종은 밀교. 이렇게만 정리해둔다.

 

이 구카이가 이미 진언종의 조종이 되어 쉰이 넘어갈 무렵인 823년 사가嵯峨 천황의 명으로 주지로 부임한 곳이 바로 이 도지이다. 도지는 헤이안쿄에 도읍한지 얼마 안 되어 세워지긴 했지만 구카이가 올 때까지는 몇몇 건물만이 있는 절이었다고 한다. 구카이는 이 절에서 자신이 구축해 온 불법의 세계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도지가 구카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곳곳에 있는 '납경소' 안내판과 이 지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풍운의 구카이는 42세 때 당시로서는 궁벽한 곳이었던 시코쿠四國를 찾아 직접 88개소의 절을 개창했다고 한다. 이 길의 이름이자 이 길을 따라가며 구카이의 뜻을 몸에 익히는 수행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 오헨로(お遍路)이다. 총 1200km의 대장정이다.

 

오헨로가 언제부터 있었고 또 행해졌는지의 기록은 확실치 않다. 다만 헤이안 말기에 이미 시코쿠의 해변길을 걸으며 수행하던 수행승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해진다. 중세인 무로마치 시대에는 '88개소를 순례한다'는 컨셉이 이미 정착이 되어 있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보편적인 경험이 되었다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교통 수단의 발달과 함께 자동차, 버스를 이용한 오헨로가 보급되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오히려 옛날과 같이 직접 도보를 통한 체험이 방송과 출판물을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불법을 익히고자 하는 불자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오헨로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이 힘든 인생에 지친 사람들이 찾는 일종의 관광 명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도 많지는 않지만 오헨로 서적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으며 블로그 등에서는 꽤 많은 체험담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오헨로는 시코쿠四國의 88개소를 도는 것으로 혼슈本州의 교토에 있는 도지는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오헨로 자체가 구카이 때문에 생겨난 길이고 해서, 예로부터 오헨로를 시작하는 사람은 구카이가 주지로 있었던 도지에서 출발 인사를 하고 구카이가 죽어서 묻힌 고야산高野山의 안쪽 사원에서 순례 종료 표시를 해왔다 한다.

 

이 순례의 과정에서 매 88개소마다 하나의 지점에 도착하면 일종의 인증 도장을 찍어준다. 이것이 납경納經이다. 순례자들은 납경을 받을 수 있는 납경장納經帳을 갖고 다닌다. 이런 납경장을 팔기도 하고 납경을 해 주는 곳이 바로 납경소이다. 내가 자주 본 것이 바로 이 안내판이었던 셈이다.

 

 

 

 

 

 

 

 

납경소에 들어가면 이렇게 오헨로 용 의복을 판다. 안에 받쳐입게 되어 있는 티셔츠에는 구카이의 초상과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는데 이는 항상 구카이와 함께 다닌다는 뜻이라 한다. 티셔츠가 이천 엔이고 다른 걸칠 것들도 그 정도였으니 과히 비싸지는 않은 것 같다. 옆에서는 아직 인증도장이 찍히지 않은 새 납경장을 파는데 별다른 장식 없는 천 엔 짜리부터 하드커버 재질의 만 엔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오헨로는 본디 수행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의상에도 어느 정도의 규정이 있었다. 특히 가장 엄격한 규정은 겉옷이 흰 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헨로가 험난하기도 했고 산짐승도 있으며 꾸준히 식사를 하기 어렵기도 해서 실제로 죽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입고 있던 겉옷을 바로 수의로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쓰고 있던 갓을 관 삼아 몸을 덮어주고 지팡이로 묘비를 삼았다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편의성에 맞추어 많이 간소화되어, 구카이를 상징하는 갓과 지팡이, 그리고 하얀 겉옷 정도만이 남았다. 그간은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지, 도지를 방문한 뒤로는 교토에서 이런 차림의 여행객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석에서는 지팡이도 팔고 있었다. 티셔츠나 지팡이 하나 정도는 사 올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팡이에는 별다른 규정이 없지만 단 하나, 구카이가 비 오는 날 다리 밑에서 비를 피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오헨로 도중 다리를 건너가면서는 지팡이로 다리를 짚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홍법대사님의 '이번 달의 말씀'. 자유롭게 가져가 주세요. 떠듬떠듬 읽었다. 몇 장 갖고 올 걸.

 

 

 

 

 

 

 

 

교토의 절이나 신사에서는 여러 종류의 부적을 파는데, 이곳저곳에서 다 팔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절과 신사의 특색을 살려 거기에서만 파는 상품들이 있어 재미가 있다. 도지에서는 당연히 홍법대사 구카이의 부적을 살 수 있다. 이 부적은,

 

 

 

 

 

 

 

 

 

'도중 안전' 부적이다. 운전하는 사람이나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효험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의 반응 신경을 믿지 않아 갖은 수를 다 써서 기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운전을 하게 될 자신을 위해서 샀다.

 

 

여기까지 '배워 봅시다' 코너를 잘 참아온 분을 위한 보너스. 한 번 더 배워봅시다. 오헨로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실 여러 설화가 있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구카이가 직접 하나하나 돌아다닌 길이라는 설이 있고, 구카이 사후 제자인 신제(眞濟)가 그의 유적을 돌아다니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고, 사가 천황의 자식으로 구카이의 제자였던 신뇨 친왕眞如親王의 행적이라는 설도 있다. 그 가운데 정작 오헨로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이야기이다.

 

 

에몬 사부로衛門三郞는 구카이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시코쿠 지방의 탐욕스러운 부자였다. 어느 날, 구카이가 더러운 승려의 모습으로 에몬 사부로의 문 앞에서 먹을 것을 청했다. 에몬 사부로는 막대기로 승려를 때리며 그를 내쫓았으나 승려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탁발을 왔다. 성난 에몬 사부로는 구카이의 밥그릇을 빼앗아 깨 버렸다. 사발은 여덟 조각으로 쪼개지고 구카이는 떠났다.

 

그 뒤 에몬 사부로의 여덟 아들이 차례차례 죽고 말았다. 그의 꿈 속에 구카이가 나타나 죄를 회개하도록 하였다. 에몬 사부로는 그간의 만행을 뉘우치고 가진 재산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아직 시코쿠 어딘가에서 수행 중일 구카이를 찾아 참회하기 위해 그의 뒤를 좇는 여행길에 떠난다. 

 

시코쿠를 스무 번 돌고 반대 방향으로 몇 번 더 돌다가 병을 얻어 쓰러진 에몬 사부로 앞에 구카이가 나타났다. 마지막 소원을 묻는 구카이에게 에몬 사부로는 그의 지인이자 영주의 일족인 고노河野 집안의 사내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숨을 거두기 전 대사는 그의 손에 작은 돌을 쥐어 주었는데, 일 년 후 고노 가문에서는 오른손을 꽉 쥔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상하게 여긴 고노 가문에서 점을 쳤더니 '깨끗한 물로 씻으면 주먹을 펼 것이다'라고 하여, 서둘러 강에서 씻기자 쥔 손 안에는 작은 돌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이 사건의 배경이 된 안요지安養寺는 이시테지石水寺로 이름을 바꾸었고 아이의 손을 씻었던 강은 이시테가와石水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돌은 현재 에히메 현 마츠야마의 51번 찰소 이시테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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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의 내용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권>, 전남대학교 일어일문과 석사 이은경 씨의 학위논문 <일본 '시코쿠헨로'의 유래와 변천과정 연구>, 오헨로 체험기를 만화로 펴낸 시마 타케히토의 <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1권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11.27 19: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오헨로는 체력이 좋은 사람이 스트레이트로 가면 4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시코쿠四國를 한 현씩 네 번으로 끊어 가는 코스도 있고 아예 자기 편할 만큼 이틀 삼일씩 가는 사람도 있다 하니, 자전거 국토 종주의 다음 도전으로 내년에 이 오헨로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아무튼 가게 되면 그 때 다시 추가내용을 적기로 하자.

    2015.11.27 1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遊記/2015 교토2015.11.27 15:57

 

 

 

 

여행 6일차이자 교토 여행의 1일차.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만 비 오고 만다면야 목 좋은 술집 차고 앉아 다른 여행객들과 노닥거리면 그만이지마는 1주일 동안 맑은 날이 하루 있을 것이라면 비 온다고 놀 수는 없지. 게다가 발이 젖는 것이라면 이미 나오시마에서 이골이 났다. 끙차 하고 일어난다.

 

 

 

 

 

 

 

 

꼼짝없이 일주일 동안 우산 쓰고 다닐 판이라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딱 쳐다 봤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색깔의 우산으로 골랐다. 샛노란 우산. 교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좋은 친구 되어 주었다. 덕분에 여행을 다녀온 지 반 년이 넘은 지금도 길을 걷다 샛노란 우산을 마주치면 문득 교토 생각이 나 즐겁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갈 때마다 독특한 색이나 모양의 가방이나 팔찌, 티셔츠 등을 일부러 사서 입고 쓰고 다니는 것도 기억을 남기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혼자서 휘적휘적, 낯선 골목길 사이사이를 걸어간다. 멈추고 싶은 만큼 멈추고 걷고 싶은 만큼 걷는다. 이것이 혼자 여행을 할 때의 가장 큰 낙이라 할 것이다.  

 

 

 

 

 

 

 

 

걷다가 배가 고파 늦은 아침을 먹었다. 돈까스 덮밥인 가츠동이다. 조금 짰지만 소금이 돌아야 힘이 나겠지 싶어 물을 들이켜가며 열심히 먹었다.

 

 

 

 

 

 

 

 

오후에도 내내 걸을 작정이고 또 비가 내려 쌀쌀한 탓에 뜨끈한 마실 것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어딜 가나 책이 꽂힌 서가는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일본의 서가에는 만화책과 잡지가 빠지지 않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그 중 이 날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위의 만화책. 여러 개의 작품이 일정한 분량으로 동시에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정기적으로 출간되는 잡지인 듯 하였다. 집어들고서는 후루룩 넘겨보니 놀랍게도 모든 만화가 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다. 고양이를 능숙하게 그릴 줄 알거나 혹은 고양이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만드는 만화가가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잡지가 출간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애완' 카테고리에서도 한 단계 아래인 '고양이 애완'과 같은 대단히 구체적인 소재를 소비할 만한 내수 시장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1억의 인구라는 것이 다만 우리의 두 배일 뿐만은 아니구나, 이렇게 작은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숫자이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왔다.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책은 안 샀다.

 

 

 

 

 

 

 

하늘은 여전히 우중충하지만 비는 조금 잦아든 사이. 다음 목적지인 도지東寺까지는 삼십 분 정도의 도보면 충분하다. 흥흥 노래하며 걸어가는데 동네 한 복판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보인다. 평범한 주택 사이로 몇백 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절이 슥 섞여 있는 것은 교토에서 흔한 모습이다. 제대로 보았나 하고 눈을 씻고 다시 본 것은 '인형공양'이라는 한자이다.

 

 

 

 

 

 

 

 

인형공양은 일본의 독특한 정신문화 중 하나이다. 무엇이 되었든 오래도록 사용하거나 곁에 둔 물건에는 혼이 실린다는 사상을 전제로 한 것이니 사람의 모양을 한 인형이라면 그러한 인식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인형 등의 명복을 빌며 공양을 바친다고 하는데 사실 가장 많이 바쳐지는 것은 히나마쓰리雛祭 때에 전시했던 여자아이 인형이다.

 

히나마쓰리는 매해 3월 3일이 되면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아이의 장수와 무병을 빌며 치루는 일종의 의식이다. 축제라는 뜻의 마쓰리祭 자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마쓰리와는 달리 집에서 인형을 전시해 놓고 감주나 복숭아 등을 놓아 공양하는, 가족 행사의 형태를 갖는다. 이 때 전시하는 인형이 히나雛 인형이다. 

 

 

 

 

 

 

 

일본어 히나雛에 쓰이는 한자 雛 자는 익숙한 자는 아니다. 본래는 새의 새끼를 형상화한 글자에서 출발해서 아이, 어리다 등의 뜻을 갖게 됐다. 글자는 낯설지만 인형의 모양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귀신 만화, 혹은 '인형의 머리가 자랐다!'와 같은 납량 영상 등에서 흔히 보던 그 인형이다. 이것은 본디 중세 시기 귀족 가문 소녀의 일반적인 행색을 본따 만들어졌다고 한다. 무엇이 됐든 비나리고 한적한 경내에서 혼자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입을 열고 말을 할 것만 같아 조금 섬뜩하다.

 

 

  

 

 

 

 

 

그래도 피부가 살색인 히나 인형은 참을만 했는데 새하얀 얼굴의 인형과 눈높이를 맞추고 쳐다보고 있자니 오금이 저린다. 내가 좋아하는 옛 괴담류 중에는 인형에 혼을 빼앗긴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얼른 도망을 가자.

 

 

 

 

 

 

 

 

한자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으면 일본 여행이 한층 재미있어진다. 멍 때리고 걷다가 문득 눈에 띈 '교토 두부 회관'. 반투명한 창 사이로 기웃거려 보았지만 전시관이나 두부 시식관 같은 것은 없고 진짜로 두부 관련 업체들의 연합회인 것 같았다. 초당 두부에 간장 한 바퀴 휘 둘러서 뜨끈하게 떠먹으면 좋겠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휘휘 걸어간다.

 

 

 

 

 

 

 

 

마을 어귀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재미난 포스터. '선거에 가자'. 교토 시의회와 부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인가 보다.

 

작년의 교토 여행에서는 교토의 버스와 지하철을 예쁜 소녀로 의인화한 캐릭터를 재미나게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캐릭터마다 이름과 설정까지 붙어 있어 역시 만화 강국 일본, 하면서 쳐다보았던 것인데.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일까 싶어 멈춰서서 읽어봤다. 

 

 

 

 

 

 

 

 

쿄우노京野 미쿠. 선거에 흥미를 가진 20세의 여자대생.

 

쿄우노京野의 쿄우京는 교토京都의 쿄우京렷다. 우리로 치면 인천의 캐릭터가 김인천 군인 셈이니 그것 참 재미나구나. (후에 검색해 보니 쿄우노京野는 일본에 많이 있는 실제 성씨였다.)

 

나는 대학 입시에서 재수를 하였는데, 두 번째 치룬 수능에서는 첫 번째 때에는 없었던 제2외국어 과목이 신설되는 일이 있었다. 고교 재학 시절에 중국어 수업 시간이 있긴 했지만 내신 비중도 낮았고 모두들 재수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니하오나 셰셰와 같이 온 국민이 아는 정도 말고는 정말 할 줄 아는 중국어가 한 마디도 없었다. 덕분에 선택 가능한 외국어 중 제일 쉽다는 일본어를 택해서 피눈물 흘리며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부터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배워 놓은 일본어로 이렇게 십수 년 지나 일본 어딘가를 걷다가 미쿠라는 이름도 척척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니. 뭐든지 배워 놓으면 언젠간 써먹게 된다는 평소의 신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선거에 흥미를 가진 여대생이라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고 나랏일 특유의 후진 센스 느껴지지만 예쁘고 귀여운 그림 그려서라도 포스터를 한 번 쳐다보게 만드는 시도는 좋은 것 같다. 선거장에 가면 혹시 미쿠 같은 여자애가 있을까 하고 한 명이라도 더 기어나오면 좋지 않겠나.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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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5 교토2015.11.12 02:02

 

 

 

 

4월 12일 일요일. 8일부터 20일까지 13일 간의 여행 중 5일차이다. 이 날은 나오시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교토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떠나 교토에서의 오후를 누려도 되지만 섬에 체류한 나흘 동안 가장 좋은 볕이 든 것이 분하여 점심 무렵까지 노닥거리기로 했다. 마침 나오시마의 골목은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리기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하다. 산책 길, 멋진 자연이나 안도 다다오의 작품보다 더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은 언젠가 꼭 키워 보고 싶은 샴 고양이의 실루엣. 반투명 창이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한층 애틋하였다.

 

 

 

 

 

 

 

 

이전의 경험에 비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태도라면, 즐길 수 있을 때에는 즐기자,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행을 할 때의 나는 잠자리나 먹을 것, 혹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 수 있는 경험 등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한 숙소라도 오래 자면 그만이고 조금 덜 맛있는 것을 먹더라도 돈을 아껴 기념품을 사는 것이 남는 장사다. 내 일상적인 욕망은 맨 뒷줄에 놓는다. 그건 해외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도 조금 주제넘은 경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돈과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한 일이겠지만 나는 대체로 혼자 여행을 해 왔던 터라 큰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그런 나와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하다.

 

이번에 여행의 태도를 바꾸어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이전에 비해 돈과 시간에 다소간의 여유를 확보하고 떠난 것도 없지 않지만, 갔던 곳에 또 갔기 때문이다. 새로 가 보고 싶은 곳보다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았는데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을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호텔에 묵고 방송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다닐 것은 아니지만, 천 엔 정도 더 주더라도 특색이 있는 숙소도 좀 찾아보고, 밥 때가 되어야 근처의 편의점이나 덮밥 체인점 찾아 우걱우걱 먹지 말고 나중에 와 보고 싶은 식당 있거들랑 눈에 좀 담아두고 다니자. 기념품도 남들 기념품보다는 내 기념품을 사도록 하자.

 

 

 

 

 

 

 

 

그래서 맛나게 먹었다. 교토도 아니고 나오시마까지 가서. 시저 샐러드와 마르게리따 피자. 나오시마의 특산물도 뭣도 아니었지만, 아주 맛있었고, 나는 즐거웠다.

 

 

 

 

 

 

 

 

케익과 아이스크림의 디저트까지.

 

 

 

 

 

 

 

 

 

다시 항구로. 배를 기다리며 야요이 호박과 뜨거운 안녕을 했다. 이런 놈들이 많은 듯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는 쳐다도 안 본다.

 

 

 

 

 

 

 

 

으아악.

 

 

 

 

 

 

 

 

 

예쁜이 열차 타고 땡땡 소리 내며 교토로 상경한다. 교토는 한자로 경도京都이니 이 때만큼 상경上京이란 말이 어울릴 곳이 없다.

 

 

 

 

 

 

 

 

열차를 오래 타고 또 여행 가방을 질질 끌고 댕겼더니 오랜만에 찾은 교토역에서 진한 라멘 한 그릇 먹고 나자 몸이 푹 퍼져 버렸다. 교토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될 숙소의 체크인 마감 시간도 가까워지고 해서 이 날은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를 찾지 못해 큰 고생을 했던 지난 여행의 첫날 밤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 교토에 몇 안 되는 못난이 랜드마크, 교토 타워 오랜만이다.

 

 

 

 

 

 

 

 

 

닷새 간 신세를 지게 될 숙소의 이름은 KOBAKO였다. 하룻 밤에 4,000엔. 1인실, 다다미 바닥, 그리고 헤이안 신궁에서 가깝다는 것이 메리트였다. 지난번 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헤매인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현관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위의 복도처럼 가로로만 길고 세로로는 무척 좁은, 옛날 일본 만화에서 본 것 같은 거실 풍경이 있었다. 커다란 괘종시계도 있고 계산대 역할을 하는 듯한 앉은뱅이 책상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고. 그 사이로 코타쓰 하나에 서너 명이 옹기종기 발을 밀어넣고 있었는데 내가 인기척을 내자 그 중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명이 사장인 듯 부스스 일어나며 손님맞이를 하였다. 며칠은 감지 않은 것 같은 헤어 스타일의 사장은 흰 반팔 티셔츠와 체크 무늬의 사각 팬티만을 입고 좁은 복도를 따라 나를 안내하였다.

 

 

 

 

 

 

 

 

이번 교토 여행에는 두 군데의 숙소에 머물렀다. 이동이 불편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숙소에 묵고 싶었지만 다소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었고 또 벚꽃 시즌과 맞물려 빈 곳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군데 모두 무척 재미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숙소였던 위 사진의 방은 일단 두툼한 이불과 널찍한 개인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이불을 개어놓지 않아도 옷가지와 컴퓨터 등을 마구 늘어놓을 공간이 충분하였다. 그날 그날 사 온 물건들을 쭉 펼쳐놓고 보기도 하고 큰 교토 지도를 활짝 펴서 보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점은 이런 것이다. 이 방은 위의 사진에서 소개한 복도와 붙어있는 방인데, 실질적으로는 벽이 없고 여러 장의 문짝이 벽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쪽 면은 옆 방과, 한 쪽 면은 복도와, 한 쪽 면은 내 방 바로 앞에 있는 휴게실과, 한 쪽 면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붙어 있다. 그나마도 벽 역할의 문짝들이 서로 아귀가 딱딱 맞게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어서 이런저런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은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의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잠귀가 밝은 터라 밤 중의 소음은 좀 불편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일본어나 영어도 듣고 지나가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하며 즐겁게 지냈다.

 

교토에서의 첫날 밤에는 남은 여행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일정을 다시 확정하고,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권과 4권, 교토의 문화재에 대한 내용을 숙독하고 잤다. 복도에서 빛이 새어들어와 잠이 금방 올지 모르겠네 생각하다가 금세 잤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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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5 교토2015.10.17 15:48

 

 

작년인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교토에 다녀왔다. 4월 8일부터 20일까지 13일의 일정이었다. 

 

지난번의 일정은 11월 말 쯤부터 12월 중순까지였다. 날이 춥고 건조하여 매일같이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와중에도 몹시 즐겁게 쏘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고 또 눈에 띌 때마다 교토와 일본에 관한 책들을 사 모으다 보니 다시 한 번 가서 더 보고 더 느끼고 싶은 것들이 충분히 쌓였다. 많지 않은 해외여행 경력에 두 번을 연이어 같은 장소에 가는 것이 꺼려질 법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교토가 좋아졌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운동화도 운동화 빨래방에 싹 맡기고, 이번엔 봄 여행이니 그 중에 제일 가벼운 것을 골라 신고 가기로 했다.

 

 

 

 

 

 

 

머리를 깎으러 가서는 옆머리를 짧게 쳐 올리고, 이십 대 때 한 번쯤 해보고 싶었으나 시도하지 못했던 스크래치도 넣어 보았다. 미용실의 선생님도 이렇게 스크래치를 넣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라며 무척 즐거워했다. 본래는 맨 위의 직선 한 줄만을 넣었으나 그 모양을 보고는 까닭없이 즐거워져 선생님과 킬킬대며 대각선 모양의 두 줄을 더 넣었다. 나는 이왕 재미있게 된 것 예닐곱 개 쯤의 직선을 더 넣자고 건의했으나 센스 없는 제안이라고 타박을 당했다.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철딱서니 없는 짓 했다는 것이었으나, 아무튼 여러 사람 즐거웠다.

 

 

 

 

 

 

 

 

두 번째만 되어도 확실히 눈에 익는다. 익숙하게 출국하고 익숙하게 입국해서, 오사카의 호텔에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됐다. 편의점 어묵에다 와인을 마시면서 창 밖 풍경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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