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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6일차 - 3. 우지의 맛 물론 도지에 역사적인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절인만큼 부적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다른 절과 신사보다는 큰 것이 있다. 위의 사진은 그 중 오미쿠지おみくじ를 찍은 것이다. 일본의 영화나 만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로, 포장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 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 오미쿠지는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招き猫 미쿠지. 두 번째는 단출하게 행운 오미쿠지. 세 번째는 리락쿠마 오미쿠지. 네 번째는 칠복신 오미쿠지. 칠복신이나 마네키네코 등의 전통적인 캐릭터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미쿠지와 같은 전통 문화에 리락쿠마를 접합시키는 세련된 손길에는 무척 놀랐다.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도라에몽 오미쿠지도 있고 건담 오미쿠지도 있고. 나는 여행.. 더보기
6일차 - 2. 도지同寺, 구카이空海, 오헨로お遍路 도지東寺에 갔다. '동사東寺'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고수는 꾸미지 않는 법이다. 절이 지어진 것은 796년의 일으로 물경 천이백 년 전의 건축물이다. 당시에 헤이안쿄平安京라고 불리웠던 교토는 계획도시로서 바둑판 모양 모양으로 구획되었다. 지금도 교토의 거리에 산조三条, 시조四条, 고조五条 등의 숫자가 들어간 이름이 나란히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바둑판 모양의 정문, 즉 출입구가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며 수많은 괴담의 무대가 되는 라쇼몽羅城門이고 라쇼몽 양쪽에 배치된 것이 사이지西寺와 도지東寺이다. '서사西寺'는 이후 몰락하여 지금은 폐사터만 남아있지만 도지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다시 찾은 교토에서 첫번째 방문지로 도지를 고른 것은 봄맞이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기 때.. 더보기
6일차 - 1. 교토에 간 구보처럼 여행 6일차이자 교토 여행의 1일차.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만 비 오고 만다면야 목 좋은 술집 차고 앉아 다른 여행객들과 노닥거리면 그만이지마는 1주일 동안 맑은 날이 하루 있을 것이라면 비 온다고 놀 수는 없지. 게다가 발이 젖는 것이라면 이미 나오시마에서 이골이 났다. 끙차 하고 일어난다. 꼼짝없이 일주일 동안 우산 쓰고 다닐 판이라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딱 쳐다 봤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색깔의 우산으로 골랐다. 샛노란 우산. 교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좋은 친구 되어 주었다. 덕분에 여행을 다녀온 지 반 년이 넘은 지금도 길을 걷다 샛노란 우산을 마주치면 문득 교토 생각이 나 즐겁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갈 때마다 독특한 색이나 모양의 가방이나 팔찌, 티셔츠 등을 일부러 사서 입고 쓰고 .. 더보기
5일차 - 교토 상경 4월 12일 일요일. 8일부터 20일까지 13일 간의 여행 중 5일차이다. 이 날은 나오시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교토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떠나 교토에서의 오후를 누려도 되지만 섬에 체류한 나흘 동안 가장 좋은 볕이 든 것이 분하여 점심 무렵까지 노닥거리기로 했다. 마침 나오시마의 골목은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리기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하다. 산책 길, 멋진 자연이나 안도 다다오의 작품보다 더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은 언젠가 꼭 키워 보고 싶은 샴 고양이의 실루엣. 반투명 창이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한층 애틋하였다. 이전의 경험에 비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태도라면, 즐길 수 있을 때에는 즐기자,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행을 할 때의 나는 잠자리나 먹을 것, 혹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 더보기
1일차. 출국 작년인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교토에 다녀왔다. 4월 8일부터 20일까지 13일의 일정이었다. 지난번의 일정은 11월 말 쯤부터 12월 중순까지였다. 날이 춥고 건조하여 매일같이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와중에도 몹시 즐겁게 쏘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고 또 눈에 띌 때마다 교토와 일본에 관한 책들을 사 모으다 보니 다시 한 번 가서 더 보고 더 느끼고 싶은 것들이 충분히 쌓였다. 많지 않은 해외여행 경력에 두 번을 연이어 같은 장소에 가는 것이 꺼려질 법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교토가 좋아졌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운동화도 운동화 빨래방에 싹 맡기고, 이번엔 봄 여행이니 그 중에 제일 가벼운 것을 골라 신고 가기로 했다. 머리를 깎으러 가서는 옆머리를 짧게 쳐 올리고.. 더보기
17. 귀국 귀국일 아침. 다다미 방은 옆방의 소리가 훤히 들리는데 옆방 사람들이 알람을 맞춰놓고도 제때 끄지 않는 바람에 새벽같이 일어났다. 정원 구석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떠나려니 보인다. 닌자의 비밀통로처럼 여기저기 샛길이 있던 우론자. 12시부터 4시까지는 주인이 청소한다고 무조건 다 나가 있으라는 규정이 귀찮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멋진 곳이었다. 교토를 떠나기 전 의미없는 마지막 한 컷.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회상에 빠지기는 웬걸, 공항으로 가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고 차가 멈출 때에야 눈을 부비며 깨어보니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함께 탄 미국인들이 저 친구 코 너무 골아서 시끄럽다고 불퉁거리고 있었다. 제 탓이 아니라 알람을 맞춰놓고도 제때 끄지 .. 더보기
16-3. 마무리 마지막날이라 힘내서 돌아댕겼더니만 교토 밖의 두 군데나 들렀다 왔는데도 카모가와에는 해가 안 졌다. 카모가와 강가에서 꺅꺅 소리 지르며 놀고 있는 학생들. 여행 막판이 되면 돈 많이 가진 사람도 체력이 남은 사람도 눈에 안 차고 그저 시간 많은 사람들만 부럽다. 너희는 몇 달만 있으면 따뜻한 카모가와에서 밤에 맥주 마시며 놀 수 있겠구나. 정지용이 걸었고 윤동주가 걷던 카모가와 봄밤. 좋겠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 여기는 관광명소는 아닌데, 교토 여행을 가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라 소개해 본다. 편리당便利堂, 일본어로는 벤리도라고 읽는 가게이다. 가게 자체의 연혁을 밝히는 안내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주로 엽서를 파는 곳인데, 교토의 풍물이.. 더보기
16-2. 월계관月桂冠 교토 여행의 마지막 관광 코스로 잡은 곳은 후시미 지역의 유명한 주류 메이커 월계관月桂冠이다. 앞서 우지를 소개하면서 교토 인근은 물이 좋아 우지에서는 말차가 유명하고 후시미 지역에서는 술이 유명하다고 한 바 있었다. 1637년부터 운영을 해 왔다는 월계관은 이 일대에서도 가장 유명한 메이커이다. 이곳은 그 옛날의 주조방식을 재현해 놓은 오오쿠라 기념관이다. 입장료를 내면 이런 명함과 안내도를 주는데, 한국어본이 있어서 반가웠다. 월계관 댓병. 홍대에서 저 정도면 열 명이 밤새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무척이나 탐났던 옛날식 병모양. 지금도 저렇게 나오면 좋을텐데. 나는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일본 방문을 기념하며 만든 표지판이라고 한다. 한쪽 면에는 그동안의 상업 포스터들이 .. 더보기
16-1. 후시미伏見 이나리稲荷 신사 출국 전날인 16일차, 12월 13일의 첫 행선지는 후시미伏見 이나리稲荷 신사이다. 신사로 가기 전에 어떤 가면을 쓰고 나갈지 클럽 나가기 전에 옷 고를 때만큼 고민한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후시미 지역에 있는 이나리 신의 신사이다. 이나리稲荷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농경과 관련된 신인데, 여우가 쥐를 잘 잡아먹기 때문에 이 신의 모습으로 차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혹은 이나리 신의 전령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아무튼 지금은 이나리 신이라고 하면 여우 신을 가리킨다. 이 여우 신은 '팔백만 신'이라고 할 정도로 신적 존재가 많은 일본에서도 꽤나 끗발 있는 신이어서 전국적으로도 신사가 많고 인기가 있다 하는데 그러한 전국의 신사들의 총본산이 바로 이 후시미에 있는 이나리 신사이다. 이 가면 저 가면 써봤.. 더보기
15-2. 고다이지高台寺 15일차, 해가 지고 난 뒤에 찾은 곳은 고다이지高台寺. 이곳은 히데요시의 아내였던 네네ねね의 절이다. 네네는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군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남편으로 만난 히데요시가 하급 관리에서 출발해 천황 아닌 자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간파쿠關白에 오를 때까지 많은 역할이 요구되는 전국 시대의 아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여성이다. 히데요시의 사후 출가하여 고다이인高台院이라는 법명의 중이 되었다. 가 영웅들의 성공담이라면 은 인간들의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작은 실수나 잠깐의 잘못된 선택 만으로도 목이 날아가고 가문이 멸망하던 전국 시대에, 네네는 믿을 수 없는 성공담을 남편과 함께 만들어낸 현명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응원.. 더보기
15-1.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 15일차 아침. 다다음날 아침에는 바로 출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에 쇼핑을 좀 하기로 한다. 마침 우론자 근처에는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라는 쇼핑 거리가 있다. 건들건들 걸어가는데, 앗, 길거리 광고판에 사토 고이치佐藤 浩市가. 일본 드라마는 거의 본 것이 없고 영화도 많이 보았다고는 못하지만. 연극부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일본의 미타니 코키三谷 幸喜이다. 나 , 등은 국내에도 개봉해서 꽤 괜찮은 평을 받은 바 있다. 이 감독은 특히 연이어 출연하기 어려운 특 A급의 주연배우들을 제하고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을 계속해서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토 고이치는 그러한 '미타니 코키 사단'에서도 주연급의 배우이다. 에서는 실제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일본 배.. 더보기
14. 우론자 천 년 수도 교토에는 숙소 또한 각기의 매력을 가진 곳들이 많다 하여 여행 전에 계획을 짤 때 여러 군데에서 머물 수 있도록 예약을 했었다. 17일의 여행 기간 동안 14일차부터 16일 밤까지 머물게 될 '우론자'로 이동한다. 여행용 가방에다 여기저기서 사 모은 기념품과 선물 봉지들을 따로 들고 낑낑대며 버스를 타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버스를 타고 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교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보고 놀랐던 것은 일본인의 질서의식이다. 특히 버스 정류장에서 질서정연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타려는 버스가 멀찌감치서 오고 있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버스가 설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쯤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 더보기
11-13. <프로젝트 Y> 11일차. 이 날 아침 숙소를 '킹교야kingyoya'로 옮겼다. 킹교야는 다다미 방과 일본식 정원, 코타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숙소이다. 그런만큼 가격이 좀 세서, 삼일만 머물렀다. 위 사진은 여행객들이 모이는 거실에서 정원과 욕실, 화장실 쪽을 내다본 광경이다. 교토에 가면 예약을 하자 결심 그 두번째. 위의 사진은 방이 아니라 이불과 짐을 놓는 '옆방'이다. 하지만 문을 닫으면 본방과 분리되어 위의 책상에서 책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본방. 다다미가 여덟 장, 그러니까 팔첩방이다. 여행용 가방이나 이불의 크기와 비교하면 얼마나 넓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이 약 4000엔. 교토여행을 꿈꾸시는 분이라면 다시 한 번 조언드린다. 숙소부터 미리미리 예약하셔라. 팔첩방이니까 여기서 다다.. 더보기
10. 우지(宇治) 2일차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다시 한 번 복습. 기모노와 함께 제공되었던 게다 용 양말. 기모노는 여관 것이지만 양말은 가져가도 되겠지 싶어 그대로 신고 나왔다. 체크아웃을 한 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우지가와 강변을 따라 쭉 걷는다. 목적지가 따로 있었지만, 이 산책로만을 위해 우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름날 달밤에 호젓하게 혼자 걷는다면 꿈을 꾸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길이었다. 강이 깊지 않아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들은 몇 개의 팟캐스트에서는 예외 없이 서울에 대폭설이 내려 교통이 정체되고 곳곳에서 사고가 잇달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깝지만 다른 나라이긴 다른 나라이구나. 나이 먹어서 오한이 자주 들면 일본으로 은퇴하는 것도 고.. 더보기
9. 우지(宇治) 1일차 9일차의 행선지는 교토의 남쪽에 위치한 우지(宇治)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한다. 가는 길에 관월교觀月橋라는 역 이름이 예뻐 찍어보았다. 우지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큰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우지는 아주 작은 휴양관광도시라 지도를 몇차례 읽어두고 조금만 걸어보면 대강의 지리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표지판의 오른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관월교가, 왼쪽으로는 목적지 중 하나인 평등원平等院과 아마가세 댐이 표기되어 있다. 우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왕자 캐릭터.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주로 녹색이 칠해진 이유는 우지가 말차로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 인근은 예로부터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후시미 지역에서는 술이, 우지에서는 말차가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일본의 3대 차 중 하나로 꼽히는 '우지 말차'.. 더보기
8. 유메지夢二 전展 이날의 일정은 교토 여행 전에는 있지 않았던 것. 교토에 가서야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다케히사竹久 유메지夢二라는 화가의 전시회에 갔다. 모르던 화가이지만 그림의 첫인상에 홀딱 반하게 되었던 차에 근처에서 전시회까지 한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전시회는 교토의 외곽에서 열리고 있어 지하철을 탔다. 타러 가는 길에 재미있었던 포스터. 포스터의 구석에는 'KYOTO SUBWAY MOE MOE PROJECT'라고 써져 있다. '모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일본 서브컬쳐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귀여운 이미지의 여아女兒나 소녀가 등장하는 작품 혹은 그 작품의 분위기 등을 지칭하는 말인 것 같다. 주변의 서브컬쳐 매니아에게 문의해 본 바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들을 수 있.. 더보기
7-2. 청수사 삼십삼간당과 박물관을 돌고 나니 어느덧 해가 졌다. 교토의 골목길을 타고 다음 행선지로 간다. 다음 행선지는, 교토에서 시간에 쫓겨 한군데만을 골라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손에 꼽을, 청수사(淸水寺). 일본어로는 기요미즈데라, 라고 읽는다. 청수사에 처음 간 것은 밤의 일이었다. 가을맞이 단풍 야간개장 기간이어서 밤에도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낮에도 두어번 더 가보았는데, 낮의 청수사가 좋아요, 밤의 청수사가 좋아요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두 번 다 가보세요, 라고 말해줄 것이다. 청수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멀리로는 교토의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기요미즈데라의 오미쿠지. 위의 사진에서 여성이 들고있는 육각형의 상자 안에는 숫자가 새겨진 나무젓가락들이 잔뜩 들.. 더보기
7-1. 삼십삼간당, 교토국립박물관 7일차는 시작이 늦었다. 어영부영 점심을 먹고 나니 두세 시가 된 것이다. 놀기만 할 것이라면 하루가 많이 남았지만 명승지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교토의 절이나 신사 등은 대개 너댓 시가 되면 입장시간이 끝난다.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이차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교토국립박물관과 삼십삼간당에 가기로 했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도 해서 이 두 장소에 내가 찍은 사진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굳이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관광의 여러 요소 중에 '유물, 문화재를 보는 즐거움'에 한정해 말하자면 바로 이 두 장소의 관람이 시간과 노력 대비 최상급이었기 때문이다.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은 이름 그대로의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더보기
6. 자체 정비 6일차.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우비가 내린다. 전날 빨아서 밖에 널어놓은 빨래는 모두 잘 젖어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항상 신기했던 풍경. 교토에서 본 일본인들은 정말로 남과 녀, 노와 소를 막론하고 자전거를 엄청나게 잘 탄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은 노상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한 손에 우산 들고 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든지, 한 손에 아이팟을 들고 다른 손으로 맥주를 마신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자전거를 잘 탄다기보다는 생에 대한 애착이 적은 편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방으로 돌아가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봤다. '지구호'의 도미토리 룸은 17인실이다. 인도 여행을 할 때에도 이 정도 크기의 도미토리 룸은 본 적이 없다. .. 더보기
5-2. 도시샤의 두 시비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사이 해는 꼴딱 넘어가 버렸다. 숙소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5일차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들렀다. 캠퍼스 내인데도 무척 깜깜했고 인적도 드물어 잠시간 당황했다. 다행히도 그리 큰 학교가 아니어서 몇 바퀴 돌아보니 대강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교토에 있는 많은 대학 가운데 도시샤 대학을 정하여 찾아간 이유는 이곳에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샤에서 정지용은 1923년에서 29년까지 6년간, 그리고 윤동주는 1942년부터 43년까지 약 1년간 수학한 바 있다. 도시샤 대학의 정문으로 들어가 약 오 분에서 십 분 가량 걸으면 학교 채플 건물을 만나게 된다. 두 시인의 시비는 이 채플의 맞은편에 있다. 두 시비 모두 그리 크지 않고 또 한 데에 모.. 더보기
5-1. 금각사 라인 교토 여행기의 제목에서, 맨 앞에 붙이는 숫자는 일차이다. 그러니까 5라고 붙어 있으면 5일차인 셈이다. 그 날 하루의 일을 하나의 기사에 다 쓰기 곤란할 때에는 -를 붙여 구분하기로 한다. 5-1이면 5일차에 있었던 여러개의 일기거리 중 첫번째 묶음이다. 오사카 소풍의 둘째 날이었던 4일차에는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교토에 돌아와 쉬었다. 짧은 일정으로 모르는 도시에 가고 또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공연을 보고 해서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충전하고, 5일차에는 본격적 탐방 시작. 오전부터 저녁까지는 '교토는 정사각형'에서 오른쪽 윗변에 해당하는 금각사 라인을 돌아보기로 했다. 교토에는 수백 개의 절이 있다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좀 더 유명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천박한 비유이긴 하나, 버스로 약 .. 더보기
2. 교토대 학생회관 - 은각사 - 철학의 길 - 남선사 - 헤이안신궁 술기운에 푹 자다가 아침 외풍에 깼다. 어렸을 때 어디선가 '일본에서는 집에서도 옷을 겹쳐 입고 특별한 난방을 하지 않는다'는 글귀를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나라에 와서 팬티만 입고 잔 내 잘못이다. 술이 완전히 깬 것은 아니지만 여행에서의 시간은 귀하니까 눈을 뜬 김에 일어나기로 했다. 지구호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무라야의 모습.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가정집인양 시침 뚝 떼고 있다. 새벽 세 시에도 성업이니 언제 문을 여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저녁 여섯시에서 열시쯤에나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2층의 저 뻥 뚫린 방인데, 항시 열려있는 것이 일단 수상하고, 영업 시작하면 불을 켜는데 그것도 새빨간 불이거니와, 방 안에는 사람 하나 없이 기묘한 형태의 마네킹과.. 더보기
1. 출국과 도착 악천후로 몇차례 지연을 거듭하던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지겨우시겠지만 어쨌든 해외여행이니 하늘 사진 한 장만 넣겠다. 비행기 타는 것이 열 번쯤 넘어가면 이 광경도 심심해질까. 앞좌석에 달린 TV로는 노래도 들을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었는데, 영화 채널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이 나오고 있었다. 울만 하면 먹을 것 주고 울만 하면 기내방송 나오는 탓에 인천서 간사이 공항까지 한 시간 사십 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으니 천국에서도 상석 갔을거야, 로빈 형. 교토에는 공항이 없어서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 공항에서 내려 이동을 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는 수도 있고 사진에서처럼 리무진 버스를 타는 수도 있다. 모두, 사십 분에서 한 시간 가량 이.. 더보기
0-2. 출국 전에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가는 것인만큼 여러 책도 읽어보고, 교토의 지도를 그려 탐방할 곳을 체크해 두기도 하는 등 떠나기 전부터 수선을 떨었다. 예산이 얼마 들었다든지 일본 여행의 필수 준비물은 무엇이라든지 하는 등의 사항은 여행을 많이 하시는 다른 블로거들의 정보가 더욱 체계적이고 실용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교토 여행과 관련해 읽었던 책들을 좀 소개할까 한다.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들은 대체로 다섯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당연히 가이드북이다. 수십 종에 달하는 도쿄 여행 가이드북에 비해 교토 가이드북은 종수가 많지 않다. 재학 중인 대학의 도서관에도 절판된 것을 포함해 대여섯 권 밖에 없었다. 내가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괄호 안의 숫자는 출간일이다. (2014, 6.. 더보기
0-1. 교토京都로 2014년 11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17일 동안, 교토에 다녀왔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그 여행기이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기말고사 준비 기간에 들어가 3주 간의 쉬는 시간이 났다. 쌓인 책을 모두 읽고 독후감을 쓰기에는 좀 짧았고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4대강 자전거 길의 나머지 길들을 달리기엔 좀 남는 시간이었다. 생판 처음 가는 도시에 놀러가서 장기투숙 잡고 잠깐이나마 살아볼까 하고 시작한 검색이 경기도, 경상도, 제주도까지 갔다가 마침내 일본에 이르렀다. 수차례 일기에 쓴 바와 같이 나는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첫 해외여행을 떠났던 터라 바다를 건너가는 것에 대한 높은 심리적 장벽을 갖고 있다. 그래도 일본에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도시인 교토가 있으니까, 검색이나 해보지 뭐, 하고 .. 더보기
140911, <가오나시> 풀네임은 '일하기는 싫고 교토에나 놀러가고 싶은 마음에 그려본 가오나시'. 십수년 전 처음으로 을 보았을 때엔 왜 저런 캐릭터가 인기를 끌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특유의 낮은 신음소리 나 굼뜬 동작이 귀엽나봐,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 뒤로 수십 차례나 따라 그려볼 기회가 생기면서 캐릭터 디자인 상으로도 그만한 인기에 값할 만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