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의 전역
나이에 맞춰 군에 다녀왔더라면 그리 신기할 것이 없을 것이다. 스물 일곱이 다 되어서야 제대를 한 나는, 기왕부터 알던 것이 아니라 제대한 후에 만난, 나이 차가 꽤 나는 후배들이 칭얼칭얼 우는 소 리를 하며 입대를 했다가는 어느새 하나둘 전역을 했노라 어정쩡한 머리 길이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미안하고,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해서, 마음이 짠하다. 그런 동생들 중 하나인 우람이가 건 강하게 군생활을 끝냈다길래, 오랜만에 허리띠와 지갑 끈을 풀고 진탕 마셨다. 사진은 함께 마신 지 훈이, 현수, 우람이, 정현이, 세현이, 아름이, 지원이. 모두들 방학 잘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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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인데도 책을 잔뜩 사거나, 딴짓할 여유 없는 한 때인데도 그림을 몇 장 씩 그려대거나 하고 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당장의 숙제와 발표 준비만을 근근히 해 나간다. 생 각은 좀처럼 들지 않고, 부러 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난 보름동안, 말과 행동은 스스로가 보아도 좀 멍청이 같다. 유시민의 이름이 나오고, 이재오의 이름이 나오고, 박근혜의 이름이 나온다. 벌써, 다른 이름들을 말해도 좋은 때인가. 아니면 내가 멍청하게 아직도 그 이름을 붙잡고 있는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북한이 핵을 쏘고 연평도에서 오락가락한단다. 미국발 경제위기 얘기가 다시 신문 지상을 덮는다. 앗차, 뒈지거나 배고픈 건 싫지, 하는 소리가, 어디서 들린다. 귓전인지 귓등인지 귓속인지, 정말로 잘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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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내가 도대체 얼만큼 모르는지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조차 모르는 한 때에도, 단계가 있음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아직도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헤매고 있는 일 이 다반사이지만, 그런 헛발질들도 쌓이다 보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숙제도 아니고 논 문 주제도 아닌데 혼자 멋부린답시고 논문을 뽑는다 원문을 읽는다 수선을 떨었던 공부들이, 수업을 위한 공부를 하던 중 밤하늘의 비행기에서 보는 산골의 풍경처럼 이따금 깜빡, 깜빡, 명멸하는데, 얼 핏 무의미해 보이는 그 시간에 대해 가졌던 회의의 깊이만큼 높이 올라 나를 기쁘게 한다. 시간이 아주, 아주 많다면, 한 10년쯤 멈춰 버리거나, 아니면 요새 항상 생각하듯 1분 자면 1시간 잔 것과 똑 같다거나 한다면,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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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1주일만의 인천 집. 절대로 쉬면 안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쯤 제대로 쉬지 않았다가는 더 큰 댓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아 푹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얼마 못 자고 깨고 말았다. 박사 논문의 탈고를 앞둔 한 선배님께, 쉬고 있으면 항상 불안하고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이런 심사 는 대체 언제 끝납니까, 라고 우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배는 몰라, 박사 논문 끝날 때까진 계속 될 걸, 썅, 이라고 말했지만, 같은 질문에 경애하옵는 지도교수께서는 모르겠다, 퇴임하면 끝날지 어떨 지, 라고 말씀하셨다. 집 앞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백화점에 들러 반값에 팔고 있는 미하엘 엔데의 를 사고, 내일이 생일인 금매 누이를 위해 그림을 한 점 샀다. 내일 아침엔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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