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월요일
석양을 보면서 학교로 나오는 길에 함께 가는 할머니와 손자를 보았다. 꼬마는 킥보드를 타고 있었는 데,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땅바닥을 힘껏 차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고, 할머니는 그 뒤에서 아이구, 잘 한다, 아이구, 잘한다를 연신 외쳐주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킥보드를 운전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고, 엄청나게 위대한 성취이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좋겠다, 나는, 내 친구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도 아무도 칭찬 안 해 주는데. 개강을 앞두고 팽개쳐 놓았던 일거리들을 붙잡으면서 수천 곡의 mp3를 플레이어에 걸어 놓았다. 연구실에 아무도 없었던 덕에 외국 노래가 나올 때에는 가사를 보며 연습하기도 하고, 왕년의 댄스 음악이 나올 때에는 2002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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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선물,
유소년기에 유난히도 많이 만났던 졸부들, 재산의 증식 폭과 반비례했던 그들의 인격, 그래서 함께 싫어하게 된 졸부네 집의 특성, 번쩍번쩍한 옻칠 가구, 뻔한 내용의 표구, 일관성 없는 컨셉의 장식 장,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단 두가지 부러웠던 것, 대각선으로 선 양철제 미니카, 그리고 꼭두각시 인형 군대처럼 키 높이로 줄서 있던, 양주 미니어처. 이십대의 중반이 넘어서야 마침내 한 번 다녀온 해외 여행, 알게 된 유용한 정보, 기념품으로는 양주 미니어처가 좋다, 싸니까, 입국 때에 간편하게 사면 다른 기념품들처럼 여행 내내 들고 다니지 않아 도 되니까, 술 싫어하는 한국 사람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알게 되어도, 주위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된 나이가 되어서, 큰 장식장의 한 칸 을 반쯤 채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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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신촌. 후배들과
석호 아저씨, 신각이, 세로, 현수, 규용이, 원영이, 헌성이, 그리고 안방마님 박지원 선생과 일군의 09들과 함께 신촌에서 마셨다. 작으려면 아예 작든가, 크려면 스무 명 넘어가는 술자리가 즐겁다. 중간에 왕림해 주신 30대의 석호 아저씨는 주름이 하나도 안 늘었다며 과찬을 해 주셨지만, 그럴리 가. 동생도 이제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연극부의 누나들이 분장을 해 주며 사내애가 모공 하나 없다 고 욕설을 퍼붓던 것은 어느덧 십여년 전의 일이다. 1차와 2차 술집의 조명이 어두웠던 탓도 있고, 같이 있었던 후배들이 대부분 과히 노숙한 외양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석호 아저 씨의 고운 웃음 주름살이 부럽다. 자칭 백수 중인 신각이는, 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후배와 상담을 해 주며 못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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