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3.09.05 08:06

 

 

 

 

 

 

1.

 

서른이 넘은 뒤로는 인천의 본가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계획에 없이 갑자기 자게 되는 일

 

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리를 펴게 되는 것은 명절날의 전날이라든지, 혹은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약속이나

 

행정적인 업무가 심야나 오전에 있을 경우 등으로 한정되었다.

 

 

 

볼 일이 있기 전까지는 꼼짝 않고 자리라 생각하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밖이 아직

 

어슴푸레할 무렵, 잊고 있던, 그러나 십수 년 간 들었던 터라 삽시간에 귀에 달라붙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에 잠

 

을 깬다. 때는 아침 여섯 시. 아버지가 <조선일보> 가지러 나가는 소리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신문만이 있는데 <조선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심심해지면 보는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인 줄로만 아는 유년기를 보냈다든지, <한겨레일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것이

 

스무 살 넘어서의 일이라든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기준으로 본다면야 무식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

 

이지마는, 나 스스로는 눈 딱 감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거침 없이 말할 때마다 오래된 선배들의 얼굴 한 귀퉁이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

 

채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동아는...'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십대 중반의 일, 그 말의 뜻

 

을 알게 된 것은 서른 근처의 일이었다. 바로 그 간극을 가르는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라는 이름, 약칭 '동아

 

위'를 오랫동안 지켜온 초기 멤버이자 현재는 해당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철 씨의 신작, <폭력의

 

유>이다.

 

 

 

 

 

2.

 

이 책의 부제는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이다. 제목의 맥락대로, 이 책은, 시기로는

 

일제강점기부터 MB정부까지를 다루고, 주제로는 주로 신문과 방송을 위주로 한 언론의 역사를 엮었으며, 독자

 

의 대상으로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요하는 전문가들보다는 통사적 차원에서 개괄과 일람을 원

 

하는 '젊은이'들을 상정하고 있다. 내용과 기획의도가 잘 반영된, 좋은 부제라고 생각한다.

 

 

 

650여 쪽에 달하는 책은 '부록'을 포함해 총 10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다. 본문 격인 1 - 9부을 나누는 기준은 정

 

에 따른 것이다. 집권 자체가 길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관한 3부나 가장 최근의 것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관한 9부가 상대적으로 긴 10개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나머지 부는 대체로 30쪽 정도에 걸쳐 3-5

 

개 정도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의 소챕터들 또한 그 안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첫 번째 소챕터를 통해 해당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양상, 혹은 해당 정권의 언론관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준 뒤 다음 소챕터들에서 개별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모범적이다.

 

 

 

내용은 부제에서 적시한 그대로 한국의 현대언론사이다. 손꼽히는 언론사들의 기원과 성쇠, 우리 사회에서 언론

 

이 보여주었던 명암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해직기자'임을 굳이 밝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논조

 

의 방점은 사주보다는 기자에, 보수보다는 진보에, '산업화'보다는 '민주화'에 놓여져 있다. 인과관계를 잘 얽어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실들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따금 섞여들어가 있는 저자 본인의 경험도 훌륭한 양념

 

역할을 한다. 신익희의 사망 날 신문을 읽고 침통해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의아해 했다든지, 백골단에게 맞아가며

 

쫓겨나고 동아투위를 건설했다든지, 감옥에서 동지들과 언젠가 만들 <한겨레일보>를 구상했다든지 하는 경험을

 

모두 직접 말해줄 수 있는 언론인이 이제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경외감을 가졌던 부은, 당시 인물들의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재구성했다든지 하

 

는 식으로 약간의 드라마타이즈는 있지만, 본인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 주었을 사건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대체로 담담하다는 것이었다. 회상과 슬픔에 사무쳐 왈칵, 하고 감정을 쏟아내었더라면, 그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마는, 그러나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격차에 당

 

황하거나 혹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본인이나 동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는 집필 의도

 

를 잘 살린, 프로페셔널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은 담백한 문체이다. 수십 년 간 기자로 단련해 온 저자이니 이것

 

은 예상 외의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600쪽이 넘도록 이렇게 강건하고 담백한 문장을 읽고 나니

 

마치 정갈한 집밥을 담뿍 먹고 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꼭 적어두고 싶다.

 

 

 

 

 

3.

 

그 귀한 집밥을 먹고도 간사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앙탈

 

부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달고 이야기해 보자면.

 

 

 

첫째는, 근현대 정치사를 잘 모르는 독자라면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두꺼운 분량 내에서 해당 시

 

기의 정치적 상황 또한 설명해 줄 수 있만큼 설명해 주었고, 아울러 이 책의 방점은 언론사에 찍혀 있는 만큼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역사적 맥락과 사건들을 기왕에 알고 있지 못하다면, 인과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근현대사는 쥐꼬리만큼 포함되어 있고 그나

 

마도 선택 과목제와 집중 이수제로 국사 과목을 이수한 '젊은이'에게 건네는 책이 아닌가.

 

 

 

둘째. 아무래도 분량 상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선택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거론되는 사건들이 역사적인 중량감이 있었던 것들인만큼 남겨진 사진들도 무

 

척 드라마틱한 것이었을텐데. 기자 출신이며 현재도 언론인이라는 저자의 특성 상 밝혀지지 못했던 사진이라든

 

지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사진 등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호기심 없이 600쪽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일 것이다.

 

 

 

셋째. '언론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음에도 방송사와 신문사, 그 중에서도 특히 '5대 신문'이라고 하는 전국 단위

 

활자 일간지에 거의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명박 정부 시대를 다루는 9부에서 <리셋

 

KBS>나 <뉴스타파> 등이 단편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YTN, MBC, KBS의 파업과 관련된 연장선 상

 

에서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올드 미디어 내에서도 지방지, 주간지, 월간지 등 다른 카테고리의 언론에 대해 다

 

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신문, 팟캐스트, 1인 블로그 등의 뉴 미디어에 관

 

한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위에 적은 세가지는 개인적인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이 책이 꼭 갖고자 하는 본질적 미덕

 

만을 갖추는데도 600쪽 이상의 분량이 들어갔다. 그 이상의 시도는 분명히 상업적인 무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지금부터 적는 두 가지의 불만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교적 사소한 불만인 첫번째는 '부록'의 성격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책은 9부의 본문과 '부록'의 합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록에서는 머독,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줄리언 어산지가 소개된다. 앞의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만행과 그 악영향을 다루고 있으며 어산지에 관해서는 그가 설립한 위키리크스의 성공 이

 

력과 의의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실 사례를 제시했다고 하면

 

이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해직 기자의 입장에서 썼다고는 하나 되도록 공정한 통사를 구성

 

하려고 했던 본문의 의도와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물론 본문 중에서도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구분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언되지 않으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뒤 독자에게 선택하도록 하거나, 혹은 선택

 

할지 말지조차도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독자는 그 안에서 '좋은 언론'의 부침과 명암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부록에서 선택된 사례들은 선연한 의도를 띈다. '공공의 적 머독과 베를루스코니',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라는 소챕터 제목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질문들이 얼

 

마든지 덧붙을 수 있다.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이 권력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인데, 권력이 언론을 억압하였던 대부분의 본문 내

 

용과는 무슨 상관일까?', '사주 한 명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일까?', '폭스 뉴스가 나쁜 언론인 것처럼 종편

 

언론도 나쁘다는 것일까?', '위키리크스가 가진 절차적 부당함도 있는데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등

 

등.

 

만약 '나가는 말' 정도로 해서 세 개의 사례를 간단히 언급한 뒤,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매끄럽게 이어주는 짧은

 

글을 썼더라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조차도 여운의 형태로 잘 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록은 약

 

55쪽으로, 본문 중의 웬만한 부보다도 길다. 무시할 수 없는 중량을 갖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본문과 달라, 불

 

편한 채로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다. 

 

 

 

두번째는, 전체의 구성이 '권력 - 언론 간의 투쟁'의 틀로 짜여지다 보니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본 - 언론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왜 의료민영화에

 

소리를 높였나, 와 같은 질문은 정치상황의 정보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자본과 언론 간의 혼맥, 유착 관계와

 

같은 전통적 이슈 뿐 아니라 근래에 불거지고 있는 통신사 설립 운동, 네이버로 상징되는 포털과의 불화 등도 자

 

본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언론사'를 재구할 때에는 빠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코드를

 

씨실로 삼는 후속작이 나온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개론서가 될 것이다.

 

 

 

 

 

4.

 

아쉬움과 불만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많았지만 그만한 애정의 반증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바랄 만한

 

책이니까 바람이 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쓰는 것인데다 제공받은 책으로 정해진 기간까지 써야 하는 독후감

 

라 부담을 갖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글이고 뭐고 나중 일은 난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500쪽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끝나간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흥미로운 주제에 탄탄한 구성, 담백한 문

 

체를 갖춘 삼박자 모범생. 지금 당장 부담스럽더라도 일단 사 놓고 현대사 공부와 병행해 가며 읽으면 언젠가는

 

책값의 몇 배를 되돌려 줄 우량주. 언론이나 사회, 역사를 읽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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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mplepeople

    이제 사회에 나가는 젊은이로써, 어쩌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한국 언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을 읽으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듯한 느낌입니다. 정말 좋은글 읽고 갑니다.

    2013.11.22 17: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한동안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시겠네요.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3.11.26 22:18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2.10.18 03:19

 

 

 

 

 

<무서운 그림> 시리즈를 집필한 나카노 교코의 최신작. 저자와 책을 직접 접해본 적이 없더라도, 온라인이나 오

 

프라인의 서점을 기웃거린 분이라면 다음의 그림이 들어간 표지를 기억하실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인데, 작가의 위상이나 그림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보다는 왼쪽 남성이 우리나라의 한 고위 공직자와 무척 닮아서 화제가 된 바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은 전작들인 <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연장선 상에 있다. 계속해서 작가의 작품들을 접해 온 사람들

 

은 소재가 되는 그림과 해설이 겹치는 것을 몇 차례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시원하게 바뀐 새 편

 

집 방식에 맞춰 읽어나가는 재미도 색다르고,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림 읽는 공부라는 것이 반복하면

 

반복할 수록 조금씩 더 보이는 것이 있기도 하고 하니 다시 읽어도 딱히 후회될 것은 없겠다.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은, 사실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들이다. 물론 보자마자 다소간의 이질감이나 선

 

득함을 느끼게 되는 그림들도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운 외양이나 정돈된 구도 등에

 

가려져 있는 섬뜩한, 혹은 비극적인 뒷이야기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것은 단지 귀여운 아이의 초상화일 뿐이다. 머리 길이 탓에 사내아이인

 

지 여자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는 상관 없는 일이고, 피부가 다소 창백해 보이지만 백인이니까 그렇

 

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굳이 눈여겨 볼 일이 없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것

 

은 아마 크리넥스 티슈곽에서나 새로 산 액자에 끼워져 있을 때 정도일 것이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면,

 

아이의 핏기가 적은 얼굴 한 편에 우울한 빛이 숨어 있고, 또 키나 머리 크기로 짐작되는 나이에 비해 묘하게 늙

 

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나카네 교코는 바로 이런 지점을 파고 든다. 미술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저 '옛날 그림' 정도로 여겨지

 

는 작품을, 독자에게 '읽어' 주는 것이다.

 

 

 

위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펠리페 프로스페로 왕자>이다. 당연히 주인공인 저 아이가 스페인의 펠리페 왕

 

자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아이는 4살 때 죽었다. 죽을 아이여서 그랬나보다, 하고 생각하면 어쩐지 쓸쓸

 

하고 감상적으로 그림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초상화가 생전에 그려진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림 읽기 연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아이의 요절에 대해 나카네 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프로스페로 왕자가 속해 있던 스페인 왕

 

가는 고귀한 혈통끼리의 혼인을 중요시했다. 다른 왕국에 적합한 배우자가 있다 하더라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

 

트 간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었기에 선택지는 더욱 줄어들어, 현실적으로 스페인 왕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오스

 

트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의 제후 정도 뿐이었다. 그나마도 한정된 국가 간에 수 세기에 걸쳐 혼사가 이루

 

어지다보니, 다른 국가에서 배우자를 맞아온다 하더라도 실제로 따져보면 근친인 경우가 많았다. 프로스페로 왕

 

자의 탄생은 5대 간에 걸친 근친혼의 결과물이었다.

 

 

 

나카네 교코의 자세한 설명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왕자의 고조 할아버지는 사촌누나와 결혼했다. 그 아

 

들인 증조 할아버지는 조카딸과 결혼을 했다.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 중 한 쪽이 나와 형제나 사촌 관계일 경우

 

조카라고 하지만, 이 조카딸의 아버지는 사촌형, 어머니는 친여동생이었다. 이중의 근친이었던 셈이다. 그 사이

 

에서 나온 왕자의 할아버지는 사촌형의 딸, 즉 조카딸과 결혼했고 왕자의 아버지 또한 조카딸과 결혼하여 프로

 

스페로 왕자를 낳았다. 선조가 어느 정도 근친교배를 하였는지 측정한 수치를 근친계수라고 하는데, 부모가 완

 

전한 타인일 경우 0, 부모가 자웅동체여서 혼자 한몸 교배를 하였을 경우 1이다. 우리 대부분은 0이거나 0에 가

 

까운 근친 계수를 갖고 있다. 현대 스페인 연구자들에 따르면, 프로스페로 왕자의 근친계수는 무려 0.254였다고

 

한다. 근친간의 결혼이 자식 세대에 희귀한 질병을 유발하거나 면역력을 낮추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카네 교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스페로 왕자가 죽은 뒤 태어난 남동생, 즉 카를로스 2세는 어떠했는지

 

그 초상화를 소개한다.

 

 

 

 

 

 

 

 

악의적으로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게 병약한 인상이지만, 이 그림을 그린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는 궁정화가로

 

그러한 객기를 부릴 수 없는 처지였다. 직접 다른 초상화들을 검색해 보니, 그나마 이 그림은 와중 가장 정상적

 

인 인상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카를로스 2세는 정신 쇠약의 증세를 보였으며 생식 능력이 없었고

 

29세에 요절한다.

 

 

 

 

 

다시 프로스페로 왕자의 초상화로 돌아가 보면, 근친혼과 같은 역사를 잘 알아두지 않아도 그림에는 불길한 징

 

조들이 몇 가지 드러나 있다.

 

 

 

 

 

 

 

 

왕자가 입고 있는 것은 여자아이의 옷이다. 작가가 지적하고 있듯 신분이 높은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의 옷을

 

입어 사신이나 마귀의 눈을 피하는 풍습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까운 일본에도 그러한 풍습이 있다. 그런

 

데 왕자의 이 아동복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당시 스페인에는 따로이 아동복이라는 것이 없었고 그때그때 몸 크

 

기에 맞추어 어른들의 옷을 줄여입힐 뿐이었는데, 그 모양새를 맞추기 위해 아이에게도 코르셋을 입혔다고 한

 

다. 왕자는 저 옷 아래 꽉 끼는 코르셋을 입고 있는 셈이다. 코르셋은 성인 여성에게조차 심폐 기능이나 소화 기

 

능에 지장을 초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약한 출신이었던 왕자가 그러한 코르셋을 입는 것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리 없다. 왕자는 몇 차례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작가는 이 코르셋에도 다소간의 혐의가 있

 

는 것은 아닌지 타진해 본다.

 

아울러 옷에는 방울과 약초를 넣은 꾸러미 등이 달려 있는데, 악마나 천사의 존재를 사실로 믿고 있던 시대에 이

 

러한 장치들을 달아놓았다는 것은 단지 건강하기를 바라는 기원이나 예방 뿐만이 아니라 이미 이 아이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던 조치였을 것이다.

 

 

 

 

 

책에는 이와 같은 그림과 이야기들이 총 8개의 장으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다. 한 장은 다음과 같이 기획된다. 일

 

단 제목이나 화가도 적혀 있지 않은 그림을 첫 페이지에 소개한다. 그 뒤로는 그림에 대한 정보, 얽힌 이야기들

 

이 제시된다. 필요하다면 정보나 이야기와 관련된 다른 그림들도 소개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설명이 되고 나면,

 

본래의 그림을 다시 보여준다. 이번에는 그림 바깥의 여백에 그동안 설명했던 주요한 포인트들을 다시 적어주어

 

그림을 한층 자세히 읽게 한다. 그리고는 해당 그림, 혹은 그림의 주제, 피사체, 화가로 범위를 넓혀 한 차례 새

 

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뒤 한 장이 끝난다. 그야말로,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배치해 놓은 구성이다. 한 장의

 

그림을 소개하고는 몇 장이고 설명을 늘어놓아, 계속해서 그림이 나왔던 앞 장으로 돌아가 보며 읽어야 하는 평

 

이한 구성의 여타 그림책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 지점이다.

 

 

 

 

 

큼직큼직한 도판과 명확하게 기획된 효율적 구성, 그리고 같은 주제에 오랜 기간 천착해 온 작가의 해박하면서

 

도 쉬운 설명.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가지려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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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2012.10.16 19:16

 

 

 

 

 

 

말은 내용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

 

겠다'라고 말씀하시면 금언이 되지만, 수 조 원 대의 탈세를 저지른 기업 총수가 그렇게 말하면 블랙 코미디가

 

다. 말에는 말하는 태도가 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이 '사죄'가 아니라 '위로'를 말하면 그것은 두 번째

 

폭력이 된다. 말에는 말의 맥락이 있다. 비리가 몇십 가지나 드러난 이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하면 그

 

은 아무런 중량도 가질 수 없다. 곧, 말하는 사람이나 태도, 말의 맥락이 어긋난 말은 말로서 존재하기가 매우

 

렵다.

 

 

 

나는 기왕에 작가로서나 일반인으로서의 공지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의 소재인 쌍용자동차 사건에 접

 

근해 가는 태도와 서술의 기법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슬퍼서 잠시 쉬었다가 읽는 독서를

 

했다. 내용의 힘일 것이다. '의자놀이'의 말을 듣고 느껴지는 슬픔과 화의 무게는 묵직하다.

 

 

 

책 덕분에 덩달아 유명해진 '르포르타주'란 장르 명이 말해주듯, 이 책의 내용은 '공지영이 바라본 쌍용자동차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완벽하게 장악한 필자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고,

 

자연인, 혹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공지영'이라는 구체적 개인이 이 사건에 접근하고 공감해 가는 과정을 그

 

리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야 함부로 독서를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

 

람에게그 이유가 바로 당신도 의자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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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문장, 그 문장의 무게가 슬프도록 무겁게 느껴지네요.

    - 현선 드림

    2012.10.18 20: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렇게 감상을 적어 주시니 선정 소식을 전해주실 때와는 또다른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권>에 관한 선생님의 서평을 읽고 간명한 정리와 인상적인 결구에 감탄했습니다. 종종 찾아 많이 배우겠습니다.

    2012.10.18 22: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 책을 버스에서 읽다가, 눈물이 계속 나와서 손수건을 내내 쥐고 있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2012.11.05 01: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몸이 편하고 마음이 고요할 때 읽어도 쉽지 않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2012.11.06 22: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08.24 15:56

 

 

 

 

오랜만의 독서일기이다. 시간이 되는 한 독서는 늘 하고 있는 일이니 책을 읽지 않아 쓸 것이 없었다는 변명은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왜 쓰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카테고리의 독자를 명확히 타케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읽어보고 책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이에게 건네는 글이라면 명확한 목차 정리

 

와 체계적인 요약이면 된다. 이전부터 내 블로그를 읽어와서 나 개인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이에게라면 내 기준

 

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재편집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쓰면 된다.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만 정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요약만 하는 글은 내가 쓰나 남이 쓰나 똑같지, 그렇다고 나한테 의미있

 

는 부분만 떼어내서 마음대로 써 버리면 책 내용은 전혀 안 나올수도 있는데, 하고 이런저런 불평들을 붙여왔던

 

것이다.

 

 

답해야 할 질문을 찾아내었을 뿐 답은 찾지 못한채로 이러구러 지내는 와중에 다시 독후감을 쓰게 만든 책, 'C급

 

경제학자'로 자처하는 우석훈 씨(이하 우석훈)의 <1인분 인생>이다.

 

 

 

 

 

같이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꼽사리다'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선대인 씨(이

 

하 선대인)의 책들이 철저하게 경제 현안에 주목하여 수치와 도표로 논리를 쌓고 구체적 정책 등의 대안을 제시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석훈의 책들은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 현상들에 착안한 뒤 그 근저의 사회문화

 

적 동인을 탐색하여, 부당한 권리를 누리는 이들에게는 일갈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

 

서 선대인의 책은 명쾌하고, 우석훈의 책은 따뜻하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우석훈은 어떤 문제에 눈길을 돌리나, 어떤 과정으로 그 원인을 찾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우석훈의 인문학적 시선에 관한 일종의 에세이이다. 5-10페이지 가량에 걸쳐 하나의 주제

 

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고 있는데, 직업이 경제학자이니만큼 경제 문제들이 간간히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소재 수준을 넘어가지 않고, 대부분은 그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에 관한 내용들이다.

 

 

나는 사실 에세이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접해 본 에세이집 가운데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성찰

 

하고 고백하거나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신념, 메시지 등을 담고 있기보다는, 제3자가 보아도 편

 

집된 것이 분명한 편린적 추억들을 나열하여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상은, 대개 재미가 없다.

 

 

그런데 <1인분 인생>에는 - 내가 보기에 - 글 전편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테마가 두 가지 있었다. 자신에 관해

 

다룰 때 드러나는 '마흔넘이', 그리고 타인에 대해 다룰 때 드러나는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

 

다.  

 

 

오래 전부터 마흔이 되면 은퇴하려 했다는 언술에서 보이듯, 우석훈 개인에게 마흔은 상징적인 나이였던 것 같

 

다. 이전의 삶에서 포기했던 정신적 가치들을 되찾고, 그 댓가로 물질적인 성공을 반납하였을 뿐인데 그의 삶에

 

서는 단지 수입이 줄어들은 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석훈은 이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차근

 

차근 적어두었다. 읽다보면, 아, 마흔에도 이렇게 고민하고 변화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한편으로,

 

이런 형하고 같이 일을 하면 무척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자면, '인간 우석훈', 혹은 '우석훈이라는

 

이름의 한 40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자세해진다는 것이다. 우석훈을 공부하는 데에도, 인간을 공부하는 데에

 

도 모자람이 없을 교재이다. 이 부분은 마흔의 성장통을 겪고 있거나 혹은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았을 뿐 마흔

 

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과 사회에 보내는 우석훈의 시선을 살피다 보면, 그가 왜 매력적인 문필과 맥동하는 가슴을 가졌음에도 문

 

학이나 사학이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을 선택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이 대체로 개인의 재능이나 무능함, 성실과 나태함 등 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연장선 상에서 아마도 <88만원 세대>나 <문화로 먹고 살기>등이 태어났을 것이다.

 

알바해서 등록금 대 가며 대학교 다니느라 연애도 못했는데, 그렇게 겨우 졸업을 했더니만 이번엔 취업이 안 되

 

어 혼자 소주 먹는 한 청년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와 다른 이들에게 꿈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

 

었는데 유수의 학교를 졸업하고도 밥을 굶다가 죽어버린 한 시나리오 작가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

 

는 너희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도록 견고하게 설계된 '제도'이다. 그러니 울지 말고, 죽지 말아라.

 

여기에 우석훈의 연구의 '따뜻함'이 있다. 개별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여타의 저서들에 비해 에

 

세이 형태인 이 책에서는 이 '따뜻한 시선'을 좀 더 자주, 그리고 직접적인 형태로 접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테마 모두 개인적으로 큰 감흥을 받아, 답도 없고 정리도 잘 안 되는 독후감이나마 오랜만에

 

끄적거리게 됐다.

 

첫 번째 테마인 '마흔넘이'에서는 글쓰는 이로서 자극을 받았다. '1981년생을 위한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욕망이었다. 생의 어떤 때에는 위로가 주제이고 어떤 때에는 성찰이, 그리고 마지막 권 쯤에서는 회고

 

가 주제가 될, 장르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시리즈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 그 한 현실적 이상향을

 

발견하고 자극을 받았다.

 

두 번째 테마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한 30대 초반으로서 공감하였다. 90년부터 2010년까지 초혼 연령은 4-5세

 

정도가 올라갔는데, 우리가 형들에 비해 연애에 더 탐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 인사들이

 

늦게 결혼하니까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 문제는 집값이다.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둘째 치고, 양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평범한 집안끼리 만났다면 서울에 전세 한 채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결혼 직전까지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 잠시나마 나와 살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

 

가는 '연어족'등의 신조어는 왜곡된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엄청난 결

 

혼 준비 비용에 서로나 서로의 집안의 경제적 무능함을 탓하다가 헤어져 버린 커플, 늦어진 결혼만큼 늦어진 출

 

산에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니면 셋쯤 낳으려던 계획에서 둘이나 하나로 줄여버린 아이 엄마,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과 아침저녁 얼굴을 맞대다가 감정적인 싸움을 벌이고 짜증을 내거나 후회를 하고 있는 청년. 이

 

들의 '개인적' 문제는 과연 개인적인가?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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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인분 인생>이라고 제목을 달았더니 메인 페이지에 올라가질 않아서 <일인분 인생>이라고 고쳤다. 의도적 오기임을 밝힌다.

    2012.08.24 17: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제목은 출판사의 작품인 듯. '누군가의 나'로 살지 말고 '나의 나'로 살자는 의도인 것 같은데 내용과 엄청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일본어의 '이치닌마에'가 연상되어서 그리 참신하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표지그림도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잘 표현됐다고는... 차라리 내용 중의 키워드 중 하나인 '고양이'와 연계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그래도, 일개 독자의 의견보다는 매일같이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어떤 게 더 돈이 되는지 더 잘 아시긴 하겠지마는.

    2012.08.24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06.27 17:45

 

 

 

 

 

 

몇 년 만에 다시 읽었다. 감상이 어땠네 깨달음이 어땠네 이러쿵저러쿵 말로 해 봐야, 조르바는 코웃음치고 말

 

것이다. 참고할 것도 없어 개발괴발 혼자서 그려본 그림이나마 어지간한 글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 덧붙인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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