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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인공위성 예술가인 송호준 씨가 개인 자격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쏘아올리는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을 보았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시간이 안 나기도 했고 잠깐이라도 짬이 났을 때에는 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바쁘기도 했다. 와중 즐겨듣는 팟캐스트 프로그램 에, 이 영화의 감독이 쓴 제작일지가 소개되고 또 감독이 직접 출연해 촬영 중에 느꼈던 소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듣다 보니 마침 교토에 다녀오기 전후해서 고민하고 있던 문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혼자서라도 보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도 많은 상영관에 걸리지 않았고, 그나마도 개봉한지 시간이 좀 지난 지금까지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지 못해,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았다. 마침.. 더보기
귀신 꿈 대낮에 책상에 기대어 앉아 졸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무렵 학교 앞의 도로에 서 있었다. 앗차, 집에 가야지, 하고 나는 학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작해야 백 미터 안짝일 거리를 걷는 동안 해는 삽시간에 졌 다. 학교를 올려다 보니 불 켜진 교실이 많지 않았다. 꿈 속의 나는 교실이 3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1층부터 올라가는데, 선생님과 학생 들이 띄엄띄엄 내려오고 있었다. 복도의 불이 다 꺼져있어 몸의 윤곽만 보일 뿐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안녕, 안녕 히 가세요, 라고 인사해 보아도 그들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갈 길을 갔다. 팔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눈에 띄었다. 3층에 올라섰을 때 기분은 .. 더보기
꿈을 꾸었다. 음은 똑같고 박자만 다른 네 마디의 기타 멜로디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꿈 속의 세상에서는, 행 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멜로디를 평생동안 들어야 한다고 했다. 평생동안 듣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 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평생 들을지 아닐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멜로디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귀를 틀어막자 이번에는 머리 속까지 울려왔다. 지 겨울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자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잠시 후에는 길가의 소음이나 주변 사람 들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고 시끄러운 기타 소리만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 가, 하고 소름끼쳐 하다가 나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지.. 더보기
空想 2014년 발매 예정, LEGO Cuusoo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인 21104 'NASA Mars Science Laboratory Curositry Rover"이다. 우리에게는 흔히 '큐리오시티'로 알려진 화성 무인 탐사선을 레고 모델화한 제품이다. 지난 2012년 화성에 안착한 큐리오시티는 화성에서의 일식 장면을 촬영하거나 표면의 물을 발견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이루 어 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식물로 보이는 물체의 사진을 전송하여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밀스런 레고 매니아이자 한때의 천문학 지망생도로서는 이 콜라보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굳이 일기에 따로 쓰는 정성을 보이는 것은 이것이 Cuusoo 시리즈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Cuusoo는 공상空想의 일본어 발음인 쿠소우くう.. 더보기
근섭이 큰집의 마루에서, 작은 TV 앞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곁에는 할머니와 큰엄마, 엄마, 작은엄마가 제사 음식 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TV에서 하는 영화는 길지 않은 분량의 귀신 영화였다. 큰 한옥을 배경으로 노인과 아이들이 뒤섞여 굿판을 구경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명절을 맞아 시골에 놀러간 일곱 명의 아이가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귀신을 보게 되면서 차례차례 죽어 나가는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야 밝혀지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 는 큰 역할이 없고 항상 의기소침해 있던, 주인공의 동생인 '근섭이'가 첫 장면의 굿판에서 귀신과 눈이 마주쳤 고, 그때 귀신이 근섭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생각치 못했던 결말에 깜짝 놀란 .. 더보기
박창주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 장소는 을씨년스럽고 넓은 황야에 학교와 비슷한 건물이 여러 채 서 있는 곳이었다. 황야 밖으로 계속해서 달려 나가면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꿈 속에서는 오직 건물들만이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졌다. 한 건물에서 나가 다른 건물로 달리는 도중이라든지, 건물 내의 복도에서 꺾어질 때라든지 하는 순간마다 일행 중의 한 명씩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 한 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인지 모두 알 수 없 었지만, 아무튼 도망치지 않으면 나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주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될 것 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낮부터 시작해서 해가 다 지고 난 뒤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긴 시간 달렸지만 내내 공포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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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나는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주변은 비가 많이 온 날의 늦은 오후처럼 어슴프레하고 안개가 많았다. 계단은 세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날 만한 넓이에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발디딜 곳이 좁아 다음 발 놓을 곳을 보며 걸어야 했다. 시야의 위로는 온통 계단 이었고 뒤는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밑만 보는 눈길 옆으로 얼핏얼핏 숲이 비쳤다. 똑바로 쳐다보지 않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은 분명했다. 똑같은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척척 따라오더니 이내 나와 걸음을 맞추었다. 그 인지 그녀인지가 내 어깨를 툭툭 쳐 고개를 돌려 보니,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떼어 자신의 얼굴에 붙이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떼어 내.. 더보기
김수항이 죽기 전날 밤 귀신 꿈을 꾸다 문충공 김수항은 용모가 매우 수려하였다. 일찍이 한 마리 나귀를 타고서는 한 동네를 지나가는데, 역관 집안의 딸이 창문 틈으로 그를 보고서는 마음으로 흠모하게 되었다. 그를 지아비로 삼고자 생각하였지만 입 밖으로 내 기가 어려워, 마침내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 아비가 캐묻자 딸은 비로소 이유를 말하였다. 아비는 이야기를 다 듣고 김공을 찾아가 인사한 뒤 딸을 거두어 처로 삼아주기를 청하였다. 김공은 성격이 본래 강직하여, 그 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을 크게 질책하였다. 아비는 두려워 벌벌 떨면서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딸은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을 삼키며 죽고 말았다. 후에 김공은 대신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탄핵을 받아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유배 몇 년 후에.. 더보기
백일몽 팬티만 입고 새벽 바람을 맞아가며 책을 읽다가 여름 감기에 덜컥 걸려들어, 기력 회복을 위해 팔자좋게 대낮 에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대사막에서, 양 편으로 거대한 산맥이 끝도 없이 이어진 사이로 한가닥 구불구불 뻗은 길을, 카우보이가 말 타듯이 스쿠터를 타고 계속해서 달려가는 꿈이었다. 수십 년 전의 비디오 게임처럼 똑 같은 장면만이 이어지고 이따금 굴러오는 건초 더미를 피해서 천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인데도 무척이나 평온하 고 또 즐거웠다. 전혀 모르던 장소에 가고 싶다거나, 장애물 없이 시원하게 좀 달려보고 싶다는 것은 요새의 무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하여도 그리 틀린 말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달리면서 '인도 인도 인도사 이다 사이다 사이다 노땡큐' 노래를 흥얼거린 것은 무슨 .. 더보기
우리 집으로 오세요 침대에 엎드려서 어려운 책을 읽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꿈의 시작에, 나는 내 발걸음을 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 디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것은 2층짜리 목조 건물의 현관 계단이었다. 처음 보는 집인데 꿈답게 '내 집 인데 왜 못 알아 봤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집의 양쪽으로는 비슷한 모양의, 그러나 각자 소소한 특 색이 있는 다른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왼쪽 끝은 쭉 이어져 어디까지 간지 알 수 없고, 오른쪽 끝은 얼마 가지 않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쪽으로 꼬리를 틀었다. 뒤를 보던 시선을 돌려 고개를 앞으로 향하자 눈 앞에는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이차선 도로가 있었고, 그것을 타박타박 건너니 무릎과 허리 사이 정도 높 이의 나무 울타리들이 있었다. 울타리와 울타.. 더보기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가 꿈에 나왔다. 여러 꿈을 꾸었는데 계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군대 고참들과 술을 마 시는 꿈은 아마도 며칠 전 참여했던 예비군 훈련에서 한 고참을 실제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동창들과 공을 차는 꿈은 어제 걸려온 옛 친구의 결혼 소식 전화 때문일 테고, 고향 한 복판에 전투기가 차례로 내려꽂힌 것은 방사능 낙진 뉴스를 읽고 잔 직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외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컴퓨터를 켜는 사 이 날아가 버린 더 많은 꿈들에, 고양이가 계속 나왔다.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꿈들은 모두 꿈이라는 것을 꿈 속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꿈 속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의 바기라처럼 .. 더보기
꿈을 꾸었다 아침 해를 보고 잤다가 오후에야 일어나던 수면 습관이 삼십 분 한 시간씩 차츰 늦춰지다가 급기야 몇 개월만에 열한 시 취침, 여섯 시 기상의 새마을 인간이 되었다. 어딘가의 찌라시 과학상식에서 인간의 수면 주기는 실은 25시간이기 때문에 24시간에 맞춰 매일 반복되는 '규칙적' 취침 시간이란 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읽은 바 있는 나는 이러한 생활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루가 길어졌다든지, 야식을 먹지 않으니 소화불량이 없어졌다든지 하는 장점이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없지 않 은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꿈을 적게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낮에는 커튼으로 창을 가려도 사방이 환하기 때문에 가수면 상태가 길어져 꿈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