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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오래된 아이>, 7월 10일 대학로 열린극장 작년 이맘때쯤 아주 즐겁게 관람했던 공포연극 의 극단인, 극단 '옆집누나'의 2011년 공포연극, . 이 극단은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공포연극을 상연하는 모양인데, 꽤 재미있게 보았던 의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도 연출을 맡고 있길래 기대하며 예매했다. 작은 입장권에 인쇄된 포스터만으로도 섬뜩했던 에 이어, 포스터 의 귀신이 아이유와 함께 지친 30대의 삶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카라의 한승연 양과 닮아 느낌이 좋았다. 먼저, 스토리.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매 해 열리는 축제 때마다 목사의 비밀스런 주재 아래 구성원들이 식인의 의례를 갖는 마을이 있다. 15년 전, 목사의 딸인 '인후'가 이 장면을 목격한 뒤로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그 뒤로 실의에 빠진 목사의 아내 앞에 돈이나 그 외의 이 익을 .. 더보기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데려왔수에다. 생애 첫 기타. 인디 IA - 20D. 일명 아이유 기타. 동방의 등불 아이유 님께서 연주하시는 핑크색 기타와 동일 모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어떤 특별한 날의 몰래 이벤트를 위하여 택배 배송 시간조차 아껴 연습을 하고자 낙원 상가를 찾아 직 접 이고지고 왔지마는, 생색 내길 좋아하는 입방정 때문에 몽땅 들통났다. 이제는 그저 취미생활. 보급형이라 이거 붙이고 저거 붙여도 십만 원 중반대를 넘지 않았다. 정분 난 이와 갈대밭 뒹굴듯 망가뜨릴 각오와 함 께 격정적으로 다뤄가며 배워보기로 하고, 여행용 기타는 여행을 떠나게 될 때에 가격과 상관없이 가장 갖고 싶은 것 을 사자고 마음먹었다. 변신 로봇의 발칸 포처럼 생긴 기타 가방을 메면 으쓱하기도 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한 마음 등이 복잡하게 들지 않을 까 .. 더보기
개와 오리의 시간 아버지의 친목회인 청수회(淸水會)에서는 1년에 몇 차례 개를 잡는다. 다른 때는 일정한 기약이 없지만 복이 가까워 오는 여름에는 매 해 반드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마련이라 올해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인천으로부터 하루 내려와서 맛있는 것 좀 먹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보름 여를 기다리고 달뜬 마음으로 오늘 오후에 내려가겠노라고 엄마에게 전 화를 하다가, 아직 개 잡을 때는 되지 않았고 날이 덥고 하니 가족끼리 오리전골을 먹기로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큰아들로서 이따금 있는 가족 행사를 기뻐해야 마땅한 것이고 오리 또한 인천에서 소문난 집의 별미를 시킬 것임은 알고 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침울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인천에 다녀오겠다. 더보기
기타를 찾아보자 벼락처럼 공돈이 생긴다면야 선릉 역까지 뛰어가 기타 바를 살 기세이지만, 일단은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봐야 하기도 하고 공부하기가 싫기도 하고 해서 다른 기타를 찾아보았다. 물론 보급형 통기타가 구입과 관리에 있어 가장 편하나 방에서 연습하기엔 소리가 다소 크지 않을까 걱정되고, 악기를 사고 연습하는 자체가 당장의 소일거리보다는 언젠가 떠날 긴 배낭여행의 동반자를 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행용 기타가 적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모자란 실력 을 포장하기엔 신기한 악기 모양으로 일단 듣는 이를 홀려두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는 꾀돌이 속셈도 있었다. 넘버 원 컨텐더인 마틴의 백패커. 기타 바는 안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 기타는 수 년 전에 실물을 보고 이미 마음을 준 바 있었다. 신품으로 구입하면 40만.. 더보기
기타를 사자 기타리스트 이병우 님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까지 하신다는 기타 바(guitar bar). 이름도 매끈하고 모양도 스트랩 하나 까지 마음에 쏙 들어 검색을 해 보았더니 오십오만 원. 우느님께서 잇속 챙기려고 만든 것이 아닐 것임은 마땅히 짐작 하겠지마는 액수 앞에서는 그저 한숨만 나온다. 세금 환급받은 것도 있고 해서 삼십만 원 근처쯤 하면 큰 마음 먹고 사 려고 했는데. 악세사리 모두 빼고 기타만 삼십만 원 근처라도 삼십은 삼십이라고 자신을 속일 각오도 되어 있었는데. 작년 겨울 인생의 첫 현악기인 우쿨렐레를 사던 때에, 이것저것 만지면서 기웃거리자 사장님은 조만간 비싼 우쿨렐레 를 하나 더 사게 될테고 결국엔 기타도 사게 될테니 처음엔 그저 초보용으로 시작하시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당시엔 누가 보태 달.. 더보기
모서리 귀신 대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만났던 여자친구는 지방 출신으로 이대 근처의 하숙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난 양가의 규수이자 소녀들로부터 순결서약을 받아내는 특정 종교의 독실한 신도였던 그녀는, 내가 인사불성으로 만취하였거나 뜻하지 않게 인천행 시외버스의 막차를 놓친 때 등이 아니면 좀처럼 방엘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중과 남고를 거치면서 여학생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던 나는 딱히 뭘 한다기보다 여자친구의 방에 들어가 놀 고 있는 그 자체가 무척 즐거웠기 때문에 거듭 출입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아무리 신입생의 즐거운 3월이라지 만 떡이 되도록 마셔댈 술자리가 매일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수 회사가 파업을 하여 시외 버스가 일찍 끊겼다는 핑 계도 열 번을 넘길 수는 .. 더보기
<두 여자>, 6월 24일 대학로 라이프 시어터. 내 인생 첫 소셜커머스 상품은 공포 연극 티켓. 사랑티켓보다 싸길래 기뻐 날뛰며 관람하고 돌아왔다. 이제 와 말씀드리지만 작가와 바람둥이라는 이중 인격을 감쪽같이 연기한 (2002),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윤회의 영겁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연출 데뷔작 (2003) 등 나는 공포 연극에 혼을 바쳤던 연극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춘기의 사촌 동생을 데리고 공포 연극을 보러 갔다가 그녀석이 기말고사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 버릇 개 못주고 이토 준지처럼 겅중겅중거리며 또 보러 다 녀왔다. 이번 작품은 포스터만으로는 역대 가장 기대되는 연극 중 하나였던 . 공포 연극은 본래 웃음(혹은 드라마)과 공포라는 '이완 - 긴장'의 반복 구조에 .. 더보기
오늘의 깨달음 며칠 심상치 않다 싶더니,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시원해질 도리는 없다 싶어 선인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려 어묵탕을 사다가 선물받았던 일본주를 데워 함께 먹어보았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데 머리통에서 쉴새 없이 땀이 나 머리카락을 흠뻑 적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공부가 풀리지 않을 때 이 따금 습자 연습을 하지만 실력이 형편 없어 올리지는 못하였는데, 오늘은 성질이 나 에랏 하고 올려본다. 획마다 에랏 이 묻어난다. 장마는 언제 오는 거야. 더보기
여름아 부탁해 체질이 그리하여, 턱선이 나오도록 살이 빠져도 땀은 잘도 난다. 춘추 양복 걸쳐 입고 삼성역으로 결혼식 사회를 보러 다녀오니 겉옷이고 속옷이고 젖지 않은 곳이 없다. 작년부터 살고 있는 방에는 겨울에 해가 전혀 들지 않았다. 거북이 등껍질마냥 전기장판 두르고 누워서 그나마 여름엔 시원하겠거니 마음의 위안을 삼았는데, 웬걸. 하루 중 다니는 곳들 가운데 가장 덥다. 에어컨 달아달라면 방값을 올려받겠지. 피지배/피고용/피소유의 소셜 스탠스란 유사 이래 면면히 피곤한 법이다. 낮에 비싼 스테이크를 먹었기도 했고 물 떠다 놓으면 삽시간에 컵에 방울이 맺히도록 덥기도 해서 배 가 고파도 밥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 봄 이고지고 해서 인천에서 가지고 올라온 열무 김치를 열어보니 미간에 뱀이 열 마리는 .. 더보기
선생님께 현경이 형이 맡은 한문 수업의 기말고사 시험 감독을 들어갔다가, 한 학생으로부터 형에게 전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 다. 내 제자도 아닌데 괜스리 뭉클. 며칠새 부쩍 더워진 날씨에 밥 먹기도 귀찮아하며 빈둥빈둥거리고 있었는데, 얼른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수업을 맡아야겠다는 굳은 마음 새삼 든다.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에게서 학생들이 사기에는 조금 비싼 커피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마음이 귀여워 아끼는 마음이 들어서 나름으로 애지중지하며 머리맡의 책장에 두고 이따금 쳐다보곤 하다가, 과음한 다음 날의 아침에 손잡히는대 로 무심코 마셔버렸다. 반쯤 들이켰을 때에야 그 커피인 것을 알아차렸고 정신이 깨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번 배출하기 시작한 소변은 끊기 어려운 이치와 같아 모두 마셔버릴 수.. 더보기
몰랐던 마실 기다리던 저녁 약속이 몇 시간을 앞두고 무산되어, 홧김에 마트로 장 보러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고 말았다. 타고 있던 버스의 차고지 한 정거장 앞에서 내린 것이라 다른 버스도 딱히 빨리 올 것 같지 않았고, 도로 위 표지판의 이름 들도 수색교니 DMC니 하는 낯익은 것들이어서 목적지까지 걸어 보기로 했다. 가다 보니 강북 살면서도 딱히 들어가 볼 일 없었던 난지 공원과 월드컵 공원이 눈에 띄어, 이곳을 통해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나이니, 이미 그쯤엔 목적지에 가거나 말거나 별 상관없는 심정이 되었던 것도 같다. 평일이라지만 얼추 퇴근 시간 근처였는데도 그 넓은 공원에서 마주친 사람이라곤 손 꼽을 정도였다. 일부 러 시계를 봐야 지.. 더보기
6월 11일, 홍대 노천 해지면 산들바람 불고, 휘적대고 다니며 놀기 딱 좋은 한 때다. 살이 빠진 뒤로 자주 짓고 있는 멍청한 표정이 불시에 찍힌 사진에 그대로 드러났다. 더보기
야밤에 애 아버지인 친구가 만취하여서는 전화를 걸어왔다. 삼성역 한복판이라는데, 삼성역 한복판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가 없을 것인데 하고 갸우뚱할 정도로 괴성을 질러댔다. 익명으로 처리할 해당 애 아범은 십여년 전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경포대에서 흰자가 칠 할 이상이 되도록 술을 처먹고 울부짖던 바 있는 이이다. 빗소리가 없었어도 반은 못 알아들었을 포효의 대강은, 넌 왜 미팅이나 헌팅 때마다 내가 마 음에 둔 여자만 매처럼 채 가느냐 뭐 그런 내용이었다. 진정성은 있으나 개그 타율은 부진한 그를 위해 열 번 웃길 것 도 여덟 번 웃기고, 욕망은 가득하나 표현에 머뭇대는 그를 위해 재색이 좀 부족한 분을 택하여 먼저 모시고 나가던 나 로서는 그리 듣기 편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여 말리고 말리다가 나도 술을 .. 더보기
유월이 가네 마츠 다카코 주연의 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시작의 3월'이라든지 '만개한 5월' 과 같이 이미 이미지가 선점되어 있는 달들을 일부러 피해 신선한 이름을 잘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단지 일본 의 개학이 4월이기 때문이었다. 5월에 결혼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오월의 신부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가, 일본인 에게는 유월의 신부가 가장 좋은 것인데 식장을 잡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오월에 하는 것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왜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아래인 나라가 더 늦게 개학하고 더 더울 때 결혼식을 하는 것일까. 마음은 아직도 보름이나 됐을까 싶던 봄을 마중하고 오는 길인데 날은 벌써 겨울 이불을 빨아 널어도 한 나절이면 마를 듯 하여 그 따위의 생각 이나 일삼는 새, 쓰레빠 직.. 더보기
참외 밥을 다 먹고 또 과일을 먹으면 설거지가 두 번이라, 나는 대체로 한 끼를 통째로 과일로 채워 먹는다. 덕분에 몇 번 안 사다 먹은 토마토가 지긋지긋해질 무렵 다행히도 물좋은 참외가 나와줬다. 깎아먹는 불편함은 있지만 맛은 토마토보 다 낫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찍은 사진인데 아르침볼도의 그림처럼 나왔다. 예전에 그의 그림들을 보았을 때에는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것들을 상상해 냈을까 감탄할 뿐이었지만 막상 내가 엇비슷한 모양을 사진으로 찍고 보니 뭐야, 어디서 봤구먼, 하고 멋대로 실망하게 된다. 더보기
5월 28일, 남산예술원, 경은 양의 결혼식. 요사이 야근이 많아서 고생이 심하다던 경은 양. 얼굴은 오랜만에 보는 것인데 정말로 살이 많이 빠져서 깜짝 놀랐다. 건강에는 별 탈이 없는지 걱정이 됐지만 아무튼 덕분에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인 생만사 새옹지마. 남산예술원. 차가 없었더라면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았지만, 하객들 고생시켜 가면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싶 은 곳이었다. 날이 맑은 한편으로 더웠는데 나무가 많아 쉽게 그늘을 찾을 수 있었다. 5월부터 9월 사이에 결혼을 하게 되는 이들에겐 추천해 줄 만한 곳인 것 같다. 본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들으면서도 마냥 시크한 경은 양. 그 매력에 하객들도 푹 빠졌다. 아무튼 이제는 강 건너의 사람. 안녕, 난 이 쪽에서 조금만 더 놀다 갈게요 하고 손 흔들어 .. 더보기
대호야 어쩌냐 노무현씨 T T 쓰고 있는 휴대폰에는 절대로 지우지 않는 문자가 30여 통 있다. 대부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문자들이지만, 2009년 5월 23일에 받은 한 통만은 지금도 이따금 울컥한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그 문자를 보았을 때에는, 검 찰로부터 소환조사를 받고 있던 참이라 불리한 결과가 나왔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노무현이 죽은지 2년이 지났다. 고작 두 번째이지만, 헤어진 애인의 생일처럼, 아침에 눈을 뜨며 그 날이구나, 하고 생 각이 난다. 그간 살아오며 해 온 노력과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비교해 보면, 불행하거나 불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각별히 누구의 덕을 보았다거나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 내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언가 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보기
춤추는 만돌린 얼마 전 가회동에 갔던 날, 약속보다 일찍 도착한 참에 오랜만에 낙원상가엘 들어가 보았다. 주인보다 익숙한 손놀림 으로 기타를 매만지는 말총머리 형들, 상기된 얼굴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젊은 밴드들을 보면서 생기가 느껴져 아 주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만돌린. 베니스의 곤돌라 등과 같이, 이탈리아에 대한 피상적 동경 탓도 있 었지만 우쿨렐레나 밴조보다 음색이 풍부하고 깊다고 여겨져 언젠가는 두어 곡쯤 마스터하고 싶은 악기였다. 보급형 이 25-35만원으로 각오하던 것보다는 괜찮은 값이라고 생각해 악기상 분께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는데, 현악기들 중 각별히 매력적인 음색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서는 악보를 구하기가 어려워 기타를 잘 치시는 분들이 스 스로 기타 악보를 변형하여 .. 더보기
5월 22일, 알렌관. 순희의 결혼식. 요새는 찍은 사진의 화질이 매우 좋지 않다. 카메라의 어딘가를 만진 모양인데 정확히 알 수가 없어 매번 후보정의 수 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튼, 오늘 낮 학교 알렌관에서 있었던 순희의 결혼식. 야외에서 치루어졌는데 날씨가 좋 아 다행이었다. 30대를 눈앞에 두고 남들 다 하는 결혼 우리는 언제 하나 밤 늦도록 함께 맥주를 기울이던 것이 어제 같은데. 청첩장을 받는다고 만났던 며칠 전 순희는 다 운명이니 때를 기다리라는 대륙적 위로인지 충고인지를 해 주었다. 축하하는 마음 칠 푼에 남겨진 쓸쓸함이 서 푼. 이전에는 신촌의 이웃 주민이었는데, 남편이 인천 분이라 (인천의) 논현동에 차린 신 방 덕분에 이제는 같은 인천 시민. 다음 번 약속은 구월동이다. 순희를 구월동에서 만날 줄이야. 더보기
먹고 산다 - 토마토 맛있는 철이 왔다. 햇볕이 좋은 아침이면 하나 당 여덟 조각씩 내어, 개도국 국민처럼 설탕 잔뜩 뿌려 먹는다. - 순희가 이번 주 일요일 결혼을 한다. 이태리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말을 들은 밤, 까맣게 잊고 있던 인도에서의 어떤 순간이 꿈에 나왔다. 일어난 뒤, 삶은 계란을 으깨어 조금 비싼 3분 카레에 섞고, 구운지 얼마 안 된 바게뜨를 사다가 같이 먹었다. 나름으로는 인도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먹었던 에그 커리와 난 세트를 의도하고 만들어 본 건데, 먹는 내내 사람들이 밥에다 비벼 먹는 것은 다 이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 내 노트북은 부팅이 아주 느리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고쳐볼 생각은 하지 않고 손 잡히는 곳에 우쿨렐레를 두고서는 켜지는 동안을 하루 중의 연습 시간으로 삼았다... 더보기
가회 갤러리, <강병인 캘러그래피 전> 가회 갤러리 앞에서. 강병인 씨의 캘러그래피 전시전에 갔었다. 강병인 씨는 얼마전 일기에 올렸던 '봄비'라는 글씨를 원래 쓴 서예가이다. 이달 말까지 하고 있고,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관람료는 무료이니 관심과 시간 있는 이는 가보자. 봄가을 옷을 걸쳐 입고 나가면서도 추워지면 어쩌지 걱정하던 것이 고작 몇 주 전이었는데, 이 날은 가방에 넣어간 얇 은 점퍼를 꺼낼 일이 없었다. 황사가 극성이었다지만 햇살 좋은 삼청동을 가로지르는 것이 오랜만이라 그냥 마음껏 숨 쉬고 놀기로 했다.  약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는 '봄'과 '꽃'으로 주제를 정한 모양이었다. 꼭 보고 싶었던 비'와 '웃자'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즐거웠다. 사진을 엉망으로 찍은 탓에, 두 주제가 모두 들어간 작품의.. 더보기
시집 간대 요새는 아는 사람들 전화번호가 뜨면 철렁철렁한다. 열에 하나는 결혼소식이니 원. 시집가는 이는 왼쪽의 공수도 소녀 지수 양 말고 이제는 옛 모습 찾을 수 없는 중간의 경은 양. 스타일리쉬하게 나온 요새 사진 올릴까 하다가 결혼식 전 무료해 하는 하객들에게 틀어주고 큰 호응 거두어 가시라고 굳이 옛 사진 찾아 올린다. 그 갈색 레고 머리 뽑으면 뽑힐 까 뽑아볼까 어쩔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것이 어제같은데, 어엿한 오월의 신부가 되다니. 기쁨과 회한의 눈물 함 께 흐른다. 행복하시라. 5월 28일 남산예술원. 더보기
Goodbye, Michael. 만년 과장 시마가 사장이 되었을 때 일본의 경제신문들은 일제히 기사를 실어 그의 승진을 축하하였다. 사립 탐정인 셜록 홈즈가 죽었을 때 런던의 젊은이들은 실크 햇에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녔다고도 한다. 그만큼 역사적인 사건은 못 되겠지만, 시트콤 의 마이클 스캇이 던더 미플린 스크랜튼 지부를 떠났다. 지금까지만으로도 고맙지만 오랜 기간의 큰 위안을 잃어버린 슬픈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함께 일해본 적은 없으나 내내 내 인생 최고 의 보스였던 그를, 긴 시간동안 연기해 준 스티브 카렐의 배우 인생에 이제까지보다 더 많은 광영이 비추길 바란다. 안녕, 마이클. 그렇게 어른스럽게 떠나다니. 반칙입니다. 더보기
4월 말 오전의 햇살이 너무 좋아서,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을 읽었 다. 마침 손잡히는 곳에 있어 집어들었을 뿐인데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읽고 나서, 학교에는 정작 일주일에 두어번 갈 뿐인데 굳이 연희동에 살 필요있나, 어디 널찍한 공터 많은 경기도 쪽으로 이사를 가 볼까, 하고 중얼거렸다. 얼마 전 부터 삼십대를 보낼 만한 터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응암이나 북가좌 쪽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대차게 돈 벌어 다가 땅콩집이라도 지어볼까 어쩔까. 더보기
구상 요새 들어, 블로그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좀 시작해 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기약없는 독서와 잡상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데,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정해 보면 어떨까, 하고. 당장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 가지인데, 1. '평론을 바탕으로 한 시사만화' 2. '20대의 가치관에 관한 인터뷰' 3. '아마추어 토론' 이다. 첫 번째 '시사만화' 건은, 항상 관심을 가져 오던 만화라는 매체에 대해 훈련을 해 보고 싶은 마음과, 그때 그때 정리해 서 쌓아두지 않으면 유기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시사 관련 이슈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합쳐진 것이다. 나는 특별히 기억할만한 시사 이슈들은 주간 별로 정리해서 문서화일로 보관하고 있는데, 그날그날의 뉴스를 모아놓는 것 보다는 .. 더보기
아. 등록금이 '그냥 비싸서 싫다', 연대 환경 미화원들의 파업이 '시끄러워서 싫다', '학교가 지저분해져서 싫다'고 말하는 스무 살에게,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좋을까? 스물두 살 때 '락은 부자들이 하는 거 아니예요?'라는 질 문을 내뱉었던 나이기에, 드는 감정은 혐오감이 아니라 연민이다. 그 머리 깨느라고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하겠니, 얘 야.  더보기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가 꿈에 나왔다. 여러 꿈을 꾸었는데 계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군대 고참들과 술을 마 시는 꿈은 아마도 며칠 전 참여했던 예비군 훈련에서 한 고참을 실제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동창들과 공을 차는 꿈은 어제 걸려온 옛 친구의 결혼 소식 전화 때문일 테고, 고향 한 복판에 전투기가 차례로 내려꽂힌 것은 방사능 낙진 뉴스를 읽고 잔 직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외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컴퓨터를 켜는 사 이 날아가 버린 더 많은 꿈들에, 고양이가 계속 나왔다.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꿈들은 모두 꿈이라는 것을 꿈 속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꿈 속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의 바기라처럼 .. 더보기
동남권 신공항 사업 백지화 경남 밀양, 혹은 부산 앞바다의 가덕도에 제 2 허브공항을 건설하겠다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결국 백지로 돌아갔다. 정부는 대안으로 제시되던 김해공항의 확장도 조사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국제선을 늘리거나 대구와 인천, 부산과 인천 간 KTX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는데, 벌려 놓았던 일에 비해서는 허탈해지기까지 하는 대책 이다. 이 정도 방안으로 해결 가능한 일에 정부가 애초 배치했던 예산은 20조이다. 사실 애당초 수요나 경제성 때문에 착수된 사업이 아니라 현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라는 이유로 추진되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일만 놓고 보자면 되어 야 할 결과가 된 것 뿐이지만 그 후폭풍이 작지 않다. 원인과 현상을 생각나는대로 나누어 적어두고자 한다. 하나. 가장 먼저 격렬한 반응을 .. 더보기
문틈 새 며칠 전 새벽 불을 끄고 누워 있다가 우연히 문 쪽을 보았는데, 문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빛이 딱 사람 키만큼 막혀 있었다. 일어나 문을 열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쳐다보니 빛은 모두 멀쩡하게 새어들어오고 있 었다. 누운 자세 때문에 사각효과가 있었을까 싶어 몸을 좌우로 굴려가며 쳐다보았지만 어디에서 보아도 다 이어져 있 었다. 괴상해 하며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한기를 느껴 잠시 깼는데, 눈을 다시 감으려다 문 쪽을 보니 또 사람 키만큼 의 빛이 막혀 있었다. 문소리도 발소리도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같은 층에는 네 명이 사는데, 나 외의 세 명은 모두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나간다. 더보기
일기쓰기 얼마 전부터 일기장과 독후감, 그림을 따로 나누어 첫 화면에 모두 배치하고 있다. 무조건 일기장의 새 글이 화면을 꽉 채우도록 했었던 이전에는 글 몇 줄만 적어둔 것으로도 -내 생각이지만- 충분히 봐줄 만 했었는데, 새 체제에서는 사 진이나 그림 화일을 함께 싣지 않으면 텅 빈 회색 화면이 상단에 떡하니 뜬다. 그 모양이 흉물스러워서, 이전이라면 별 일 아니다 싶더라도 일단 적어두었던 일상사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요즘이다. 창문을 열어 밤공기 쐬다가 문득 기분이 흥한 참에 이걸 사진을 찍어야 되나 분위기를 전할 영화 스틸컷을 구해야 되나 고민하다 보면 어느샌가 쓰고 싶은 마 음은 날아가 버렸다. 블로그가 화려해지면 글이 가벼워질 수 밖에 없는 걸까. 이건 앞으로도 온라인 글쓰기를 계속 해 야 하는 처지로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