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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여름아 부탁해





체질이 그리하여, 턱선이 나오도록 살이 빠져도 땀은 잘도 난다. 춘추 양복 걸쳐 입고 삼성역으로 결혼식 사회를 보러
 
다녀오니 겉옷이고 속옷이고 젖지 않은 곳이 없다. 작년부터 살고 있는 방에는 겨울에 해가 전혀 들지 않았다. 거북이

등껍질마냥 전기장판 두르고 누워서 그나마 여름엔 시원하겠거니 마음의 위안을 삼았는데, 웬걸. 하루 중 다니는 곳들

가운데 가장 덥다. 에어컨 달아달라면 방값을 올려받겠지. 피지배/피고용/피소유의 소셜 스탠스란 유사 이래 면면히

피곤한 법이다. 낮에 비싼 스테이크를 먹었기도 했고 물 떠다 놓으면 삽시간에 컵에 방울이 맺히도록 덥기도 해서 배

가 고파도 밥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 봄 이고지고 해서 인천에서 가지고 올라온 열무 김치를 열어보니

미간에 뱀이 열 마리는 지나가도록 쉬어있어 신 맛에 한 그릇 잘 먹었다. 꼼짝 않고 누워만 있어도 밥때는 잘만 오는

데, 유월 중순부터 이 모양인 올 여름에 뭘 먹고 지낼지 걱정이다. 유월이 가면 칠월이 올테니 빨리 가랄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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