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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두 여자>, 6월 24일 대학로 라이프 시어터.






내 인생 첫 소셜커머스 상품은 공포 연극 티켓. 사랑티켓보다 싸길래 기뻐 날뛰며 관람하고 돌아왔다.


이제 와 말씀드리지만 작가와 바람둥이라는 이중 인격을 감쪽같이 연기한 <겁탈>(2002),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윤회의

영겁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연출 데뷔작 <크라바트>(2003) 등 나는 공포 연극에 혼을 바쳤던 연극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춘기의 사촌 동생을 데리고 공포 연극을 보러 갔다가 그녀석이 기말고사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 버릇 개 못주고 이토 준지처럼 겅중겅중거리며 또 보러 다

녀왔다. 이번 작품은 포스터만으로는 역대 가장 기대되는 연극 중 하나였던 <두 여자>.


공포 연극은 본래 웃음(혹은 드라마)과 공포라는 '이완 - 긴장'의 반복 구조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눈부신 서사적 성

취를 이루기가 어렵다. (그걸 원하고 가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충격을 주느냐, 그

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공포를 얼마나 다시 효과적으로 이완시켜 또 놀랄 준비를 시켜 놓느냐이기 때문에, 별로 볼게

없거나, 볼만하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가 오히려 장르의 근원적 요구에 더 성실히 복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충격을 주는 데에는 주로 조명, 음향, 무대장치, 배우의 움직임등이 이용된다.

그런데 오늘 본 <두 여자>가 상연되고 있는 라이프 시어터는 작년에 아주 즐겁게 관람하였던 <다락>의 공연장에 비해

공간이 매우 협소하고 조명과 음향 장치가 열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활용할 수 있는 장치가 제한되어, 다른 공

포 연극들을 관람한 경험이 있는 관객에게는 순간적인 놀람과 즐거움 정도를 주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예를 들면,

조금만 관찰하면 좁은 무대에서 귀신 역의 배우가 비정상적으로 출몰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소파의 뒤와 무대 천장 뿐

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라든지, 암전이 된 사이에 관객석의 뒤쪽에서부터 놀래키려고 다가오는 배우들의 발소리와 숨

소리가 들린다든지, 중요한 시기의 깜짝 효과음이 그리 크지 않았다든지 하는 등의 문제가 그렇다. 덕분에, 이번 여름

엔 공포 연극들을 연달아서 보고자 하는데, 시놉시스나 출연진보다는 공연장 정보를 좀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

다.


배우들은 연기력을 떠나 자세와 발성 등 기본적인 부분에서의 경험이 다소 부족한 것으로 보였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

이 아주 보기 좋았다. 특히 극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부인 역의 여배우는 - 분명한 연출의 미스로 보이는데 - 한 시간 반
 
가량의 러닝 타임 내내 텐션이 들어간 연기를 해야 했는데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호연을 펼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공포 연극 자체가 놀이공원 귀신의 집이나 좀 괜찮은 한국 호러 영화 정도를 기대하고 가면 훨씬

크게 놀라고 결국 즐거워하며 나올 수 있는 장르이다. - 이제 공연이 닷새 후면 끝나니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 한 인

물이 다른 인물을 죽이는 장면에서 갑작스레 암전되며 관객들의 얼굴에 더운 물방울이 끼얹어지는 '4D' 효과나, 시작

전 공연장 내부에 있는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있을 때 바닥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손이 발목을 붙잡아 비명을 지르게

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아이디어는 별 거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실 줄에서 가장 먼저
 
발목을 잡힌 것은 나였는데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바람에 귀신 손은 다음 사람의 발목을 거칠게 잡아 채고

나서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제 값 주고 보면야 아깝지만, 조금만 인터넷 발품을 팔면 반 값 이하의 구매

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 같다. 올 여름 추천 문화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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