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에서 외솔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무척 고즈넉해서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장소인데,
요사이 벌이 둥지를 틀었다. 벌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는, 낚시꾼의 월척타령과 같이 과장되기 일쑤
인 화제의 일번 타자이지만, 이 벌님은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엄지 손가락보다 약간 더 크다. 학부
생들이 꺅꺅거리는 사이로 군자는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지 않나니, 따위의 귀절을 중얼거리며 무심
한 척 지나가지만 신경은 full alert 상태이다. 그나마도 대낮엔 보이기라도 하지, 주된 하교 시간인
새벽에는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올지 몰라 마구 뛰어가기도 한다. 멀리서 12배 줌을 이용해서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등산객 아저씨가 혀를 차더니 내 카메라를 가져가서는 줌 한 번 안 땡기고 이 근
접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무슨 오지랖이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