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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9월 시국 관찰 - 2




4.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안철수의 출마 소식이 전해졌다. 정치경력이 전무하다는 점, 그가 박경철 원장과 진

행하고
있는 '청춘콘서트'의 기획자 중 한 명이 군사정권에 복무했으며 이회창 정권을 창출하려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던 이라는 점 등
이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본인이 의사를 표명하기도 전 그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했다.

그 이전까지 한명숙에 대항하
여 집요하게 나경원과의 양강 구도를 형성해 나가던 보수 언론지들은 논조를 잃고

허둥거렸다. 안철수 본인은 예의 수
줍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비난과 지적에 대해 '대한민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한 경력'
을 들어 반박하고 아울러 정치인이 아닌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의

크기와 내용에 대해 정치권이 오히려 반성해야 한
다는 일갈까지 내었다.


그런데 안철수가 심사숙고하고 있던 며칠 사이, 오랫동안 시민운동의 주축으로 활약해 온 박원순 씨의 출마소

식이 함
께 전해졌다.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박원순이 안철수와

함께 출마한다
면 진보-개혁의 표는 나뉠 가능성이 컸다. 박원순과 안철수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비공개 만남을

갖기로 했다. 제삼자
의 자격으로 대담에 참가한 박경철 원장의 술회에 따르면, 박원순이 20여분 간 자신의 포부

와 의지를 설명했고, 이야
기를 듣고 난 안철수는 '제가 불출마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지식인인 박
경철 원장의 말이라지만 너무 영웅담 같아 거부감이 드는 한편으로, 정치와

관련하여서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멋진'
이야기라 감성이 자극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두 사람은 기자회

견을 갖고 합의한 사실에 대해 공표했는데, 이 자
리에서 밑창이 너덜너덜하게 닳은 박원순의 구두가 사진작가

조세현에 의해 촬영되어 또 한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재인의 중재에 의해, 박원순은 야권 통합 후보 경선에 참가하기로 합의했다. 야권 통합 후보는 한나라당을 제

한 야
당에서 각 당마다 당 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고 그 후보 간에 또다시 경선을 실시해 뽑게 된다. 제 1야당

인 민주당에
서는 벌써 백가쟁명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역시 박원순과 한명숙 간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
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은 곽노현의 단일화와 같은 야권의 단일화 쇼였음이 증명되었다는 논

평을 내놓았다.




안철수가 50%를 넘는 지지율을 얻었던 설문조사에서, 박원순의 지지율은 5%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시민 사

회에
끼쳐온 영향과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도 5%라는 숫자에 만족하거나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그

는 촛불집회,
용산사태, 반값등록금과 같은 민생문제에서 선두에서 활약한 '참여연대'의 창립멤버이며 '아름다

운가게'로 유명한 '아
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이고 정책연구소인 '희망제작소'의 소장이다. 사회개혁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성과를 끊임없
이 증명해 왔으며 저술과 토론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해 왔

다. 분명히, 그는 시장이 되고 싶어
서 시장 선거에 나가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런데 박원순의 행보와 관련없이, 안풍은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제 박근혜, 문재인과 함께 거론

되기 시
작했다. 심지어 단일화 직후인 지난 7일에는 지난 대선 이후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박근혜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 지지율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보수언론들은 '한국의 대선에서 대세

주자는 언젠가 한 번
역풍을 맞기 마련', '검증되지 않은 거품'등의 표현을 써가며 진화에 나섰지만 열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올 해 발굴하고자 했던 대선급 주자인 조국, 문재인과 비교를 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

다.


'강남좌파'라는 트렌드를 유행시키며 등장한 조국 교수의 최대 약점은 '학자-엘리트' 캐릭터와 '정치 근육'이었

다. 엘
리트 이미지와 명문대 교수의 신분은 서민층을 끌어안는데 치명적인 단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무엇보

다 실제 행정
, 정치 경력과 세력의 절대적인 부족은 1년 남짓의 선거 운동으로 보충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기보다는 새로운 얼굴을 찾고자 하는 진보-개혁 진영

의 소수의 트렌드 리더와
지식인에 의해 기획된 캐릭터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에 비해 안철수는 인기 TV 프

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에 섭외
된 사실과 호평 일색이었던 반응이 보여주듯 높은 지명도와 대중적인 인기를 가

지고 있으며, 전공이 아닌 분야에 뛰어
들어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만들었던 경력이 있다. 아울러 현재도 소

외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대의 젊은이들과
'청춘 콘서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남으로써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한편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광
범위한 지지 기반을 또한 확보하고 있다. 


문재인의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것은 결단력과 행동력이다. 한편에서는 대선 레이스에서 너무 일찍 나서는 것

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가 몇 차례에 걸쳐 적기를 놓쳐왔던 것은 분명한 사

실이다. 현재도
대선 주자로서의 중량감을 주기보다는 원로나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안주하고 있는 듯한 인

상을 준다. 필요한 때가
되면 분명히 행동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노무현을 회상하고 추모하는 정서 이상으로 호

소하는 지점이 없다. 그에 비해
안철수는 실제 지자체장 선거의 단일화에 참가했으며 (며칠 간의 경험을 대단하

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일화가 순식간에 끝난 것은 안철수 본인의 역할 때문이었

음을 기억하자. 아울러 그러한 단일화가 유권
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도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이다.), 당

선이 분명한 가시권에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자신의
지지율의 1/10에 불과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결단력

을 보였다. 시장은 시장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맡는 자리가
아니라 시장이 되어야 할 사람이 맡는 자리라는, 정치

권에서는 사장된지 오래인 근본적 가치를 복원시킨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본인이 생각할 때 대

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될 것 같다면 자신도 얼마든지 출마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아울러 '안철수 어록'이라는 형태로 돌아다니는 발언들을 보면, 정
치적인 소신이나 본인의 가치관을 분

명하게 밝히면서도 비유와 사례를 통해 쉽게 전달을 하고 있고, 정치 원론이나
철학 이론과 같은 명구를 통해

감성적인 호소력까지 성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정치인의 발화법, 그것도
거물이 될 가능성이 높

은 정치인의 발화법이다.




5. 마무리하는 잡감을 적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양자 간 단일화 후보는 박원순으로 되었고 안철수는 잠재적

대권주
자로 올라섰다. 그에게 줄을 대려는 목소리, 그를 깎아내리는 목소리, 그를 염려하는 목소리 등이 이어지

지만 그건 더
욱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 뒤 다시 한 번 정리하기로 하자. 내 목소리를 잠깐만 덧붙이자면, 노

무현이 혼자 싸우다
죽은 이후로는 영웅이 탄생할 때마다 저러다 또 한 명 보내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만

가득했는데 이번엔 기대되는
마음이 조금 더 크다. '진짜 되면 어쩌지. 그런데 되면 좋겠다', 하고.


- 조국 교수가 트위터로 이번 사태를 관찰하는 관찰기는 여러 언론을 통해 날라졌다. 본인이 만족하신다면, 그

역할에
서 대가가 되시는 것도 좋을 듯.


- 이회창 총재께서 '안철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촌평하셨는데, 각종 언론에서 전부 단신 처리됐다. 안철

수 지지
율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병 걸리셨어요?'라고 했던 박근혜의 답보다 훨씬 셌는데. 말년이 초라하셔

서 안쓰럽다.



- 와중에 불사조 이인제가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이 합당한 충청지역당 '자유선진당'에

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회창과 심대평이 다시 연합하는 소식도 소식이지만 이회창과 이인제가 한솥밥

을 먹는다
는 사실이 이렇게 조용히 지나간다니. 충청의 힘은 이회창과 이인제도 하나로 묶는다. 대단하다. 하나

만 부탁하자. 이
번 대선의 야권 단일화에 자유선진당은 제발 논평 내지 말아달라. 양심이 있다면.


- 안풍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 가운데 하나로 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보신

당과 민
주노동당의 합당이 끝내 결렬되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이들도 계속되는 내홍에 다소간 진력을 느

낄 즈음, 모든
정치용어들을 구태의연하게 보이게 만드는 안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합당과 단일화, 그리

고 민주당과의 투쟁
등 고난을 앞두고 있는 그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 진정성 또한 의심하진 않지만,

'정치'라는 말 자체가 싫어
진 대중들에게는 그들 또한 분명히 하나의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안철수보다는 한나

라당에 더 가까운 세력으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업보다. 감내하고 승
리하시기 바란다.


- 마지막. 말해봐야 바뀔 건 별로 없겠지만, 민주당, 미워하는 사람들 많은 거 좀 알아주길 바란다. 대안세력이

없는 판
에 제일 세가 세니까 방파제 역할로 막아놓는 것 뿐이지, 주장 확실하고 인물 참신한 제 3당 나오면 수십

년 역사 날아
가는 건 하루아침일 거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정신차리는 것보다 제3당 나오길 더 간절히 바라

고 있다는 것도 꼭
알아줬으면 한다. 선거 때마다 당신들에게 표 던졌던 유권자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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