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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9월 시국 관찰 - 1





안풍(安風)이 지나갔다.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고, 국립대의 교수인 공무원 신분

으로서
는 선거 지원에 나설 수 없으니 적어도 이번 선거와 관련해 안철수 씨가 택할 수 있는 행동은 모두 끝난

셈이다. 그러
나 그가 불어넣은, 혹은 그를 통해서 드러난 여론의 한 향배는 거대한 동력을 거의 잃지 않은 채로

잠류하기 시작했다.



박원순이라는 이름으로 일단의 매듭을 지을 때까지 요 몇 달 사이의 흐름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번에
읽기는 조금 긴 것 같아 두 편으로 나눈다. 이후 호칭은 생략한다.)



1. '안철수'라는 특급 키워드가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던 차기 대선의 핵심어는 '복지'였다는 것을

감안
할 때, 포문을 연 것은 박근혜였다. 현 정권이 실정, 혹은 의도된 악정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내내 차

기 대권 후
보 가운데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해 오던 그가 지난 연말 공개적으로 씽크탱크, 즉 장래의 선거대책

위원회를 조직하
고 '복지'를 천명한 것이 그 첫 수였다고 할 수 있다.


성장과 복지의 프레임에서 우리 나라의 보수는 항상 성장 위주, 혹은 '적하 현상'이라는 미명 하에 성장에서 연

계된 복
지를 주창해 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집권 보수 여당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서 있다고 평

가되는 대선 후
보가 공개적으로 복지만을 거론한 것이다. 박근혜의 정치적 행적으로 볼 때, 이는 그동안 감추어

졌던 그의 소신이 드
러난 것이라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집단에 의해 내용과 상관 없이 현 정권과 가장 효과적으

로 선을 그을 수 있는 키워
드가 하나 선택되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예를 들어 그 키워드가 '부부젤라'

였다면, 박근혜의 입에서는 부부
젤라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선언'은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넣는 분명한 결과를
가져왔다. 진보-개혁 진영에서조차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이 될 확률이

90%', '2012년은 박근혜에게 주고 2017년에
되찾아 오자'는 정치평론 등이 나왔다.



2. 거스를 이 없는 큰 흐름에 첫 번째로 파랑을 일으킨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었다. 당시 서울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을 상대
로 실시되고 있던 무상급식을 전 학년 대상으로 확대시키는 안에 대해 거부를 표시하고 서울시장

의 직권으로 찬반 주
민투표에 붙인 것이다.

사전선거운동이나 투표지의 선택지 변경, 헬스장과 같은 이례적인 투표장소 등 갖은 잡음을 냈던 이 투표의 키

워드는
개표 가능 정족 비율인 '33.3%'였다. 서울시민의 1/3 이상이 투표를 해야 투표함을 열 수 있다는 규정에

서 나온 숫자
였다. 결과는 강남 3구의 압도적인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25.7%. 투표함은 열리지 못했고 오세훈은

투표의 결과에 시
장직을 걸겠다는 약속대로 투표 며칠 후 사임했다.


'강남 대 비강남의 구도가 가시화된 투표', '부동 보수층의 외연을 파악할 수 있었던 투표' 등 의미있는 분석이

이어졌
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최대의 피해자는 박근혜'라는 사실이었다.


박근혜의 복지에는 내용이 없었다. 그건 현 정부의 '서민'이나 '공정'과 마찬가지로 검증의 준거를 아무것도 갖

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하나의 구호에 불과했다. 보수 유권자들은 다시 반복되는 선거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

을 알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고, 진보-개혁 유권자들은 그래도 복지를 언급은 해 주니까 MB처럼은 안 하겠

지, 하는 모호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모두가 행복했다. 그런에 여기에 오세훈이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선별

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관
등성명을 대라. 일단 나는 한나라당의 적통이다.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까지 공짜 밥을 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언술에서도 보듯 한나라당의 마지노선은 언제

나 선별
적 복지였다. 하위 50%든 100%든 어차피 퍼센트 차이에 지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사안 자체보
다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시선이다. 보편적 복지, 즉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에서 복지란 모든

이에게 보편부당하
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하나의 '권리'이다. 따라서 국민은 그 적용과 행사를 당연하게 여

길 수 있다. 이에 비해 선
별적 복지의 복지는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정하여 적용하는, 일종의 구

휼책에 가깝다. 이 때 '필요한 사
람'과 '필요한 정도'를 결정하는 주체가 국가라는 점에서 이 시선은 다분히 시

혜적이다. 즉,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이 복지를 적용받은 국민은 자신이 복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패배감'과

그 처지를 구원해 준 국가에 대한 '감사'의 마
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권리의 주체인가 구휼의 대상인가.

이 시선은 국정 전반과 정책의 실현마다 사사건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는 말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첫째로 소수의 보수는 결집시킬 수 있을지 모르되 유동적인

유권
자들이 이반할 것이 당연했고, 둘째로 끈질기게 복지 이론을 공부해 온 진보 진영에 의해 조목조목 반박당

할 것이 분
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모호한 채로 좋은 이미지만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같은 당적의 오

세훈이 그 정체성
을 물어온 것이다. 홍준표를 비롯한 대다수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지

지를 천명했고, 개표되
지 못한 투표에 대해 '사실상의 승리'라고 자평하는 촌극을 벌였지만 박근혜는 끝까지 입

을 열지 않았다. 이 침묵은
그의 가장 큰 자산 가운데 하나인 '보수의 기수' 캐릭터를 오세훈과 나눠 가짐으로써

일정 부분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또한 '보편 복지 - 선별 복지'가 그에게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프레임 가

운데 하나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
였다. 어느 쪽이든 대선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3. 8월 말에 실시된 주민투표.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 바로 사퇴를 하면10월 26일, 10월 이후에 사퇴를 하면 내

년 4월
의 총선에서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되는 상황에서 오세훈은 당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전격 사퇴

를 선언한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비관적인 상황에서 총선과

대선을 치뤄야 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라 홍준표 당 대표까지 나서서 공개

적으로 반대했지만 오세훈
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검찰이 등장했다. 오세훈 사퇴의 정치적 의미와 후폭풍을 계산해 보기

도 전
인 사퇴 하루 뒤, 무상급식을 놓고 서울시장과 대립했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즉 '승자'의 피의사실이 언

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현재 진행중인 사건이므로 밝혀진 사실만 적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끝난 몇 달 뒤, 곽노

현 교육
감으로부터 그와 단일화를 했던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이 전해진다. 곽노현 교육감은 선거 준비를

통해 경제적
으로 어려워진 박 교수에게 '선의'의 차원에서 지원을 한 것이라 해명했고, 검찰 수사의 처음이자

끝인 박 교수는 내내
검찰과 보수 언론을 통해서만 그 목소리가 전해지다가 며칠 전 오마이뉴스를 통해 '대가성

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는
데 검찰에서 끊임없이 왜곡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검찰은 끝내 구속영장 발부

를 청구했고 잠시 후인 14시부터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된다.


이 사건은 눈여겨 보야할 점이 많았다.


첫째. 오세훈이 불러일으킨 역풍으로 보수 진영이 뒤흔들릴 타이밍에 또다시 우연히도 검찰이 등장했다는 점.

시점은
오세훈 사퇴 바로 다음 날.


둘째. 노무현과 한명숙을 효과적으로 처리했던 황금의 콤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 보수언론의 중복 보도'가

여전히
연비 1등급임을 증명했다는 점.


셋째. 교육감 선거에서의 '진보 성향 후보간 단일화'를 폄하하고 그 폄하를 '야권 단일화'에까지 연결 짓고자 하

는 정
치 세력들.


넷째. '피의사실'에 '도덕적인 책임'을 물어 사퇴를 종용하는 '언론-학자' 세력들.



그러나 많은 의혹과 비난받을 만한 점에도 불구하고, 곽 교육감이 무죄로 판명나는지 아닌지에 관계 없이, 검찰

의 이
시도는 이미 특정 진영에게 유리한 결과를 분명히 가져왔다. 진보-개혁 진영 쪽으로 눈을 돌리던 유권자

의 감성은 그
자극의 동력원을 잃어버렸으며, 해외로 도망다니던 저축은행 로비스트의 입국과 조사 개시와 같

이 평시라면 큰 화제
에 올랐을 뉴스들이 조용히 묻혀 지나갔다. 오세훈과 한나라당 심판의 성격을 갖던 서울시

장 재보궐 선거는 똑같이 부
패한 보수와 진보-개혁 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구도로 재편되었다. '왜 하필 또 지

금'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기 연예인
인 강호동 씨와 김아중 씨의 수억 원 탈세 소식 등이 갑작스레 전해지는 북새

통, 뉴스 카테고리는 하나하나가 1면 급
인 기사들로 연일 메워져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어려울 때, 안풍이 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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