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곡동의 유명한 중국요리 맛집. 교실 두 개쯤의 크기에다 주방 쪽에는 수 명의 배달 아저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너무 추워 주방에서 요리도 하기 싫던 어떤 날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 직접 방문해서 먹으면 천 원을 깎아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갖출 것은 다 갖춘 요리인데 천 원이 싸다니, 게다가 먹으러 왔다갔다 하면 소화도 잘 되고. 그 뒤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에는 짬뽕을 먹으러 종종 들르게 됐는데.
설 연휴 중의 하루. 이어폰을 끼고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내 귓전에 우렁우렁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본 것은 다만 시끄러워서만이 아니라 내가 들은 소리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넓은 홀에 나처럼 혼자 짬뽕을 먹는 이가 둘 있었고 한가운데에 육십 줄로 보이는 네 분의 남성이 앉아 계셨는데, 그 분들이 일 잔을 하며 건배로 외친 소리였던 것이다. 잠시간 쳐다보고 있자 불콰해진 얼굴의 한 분이 다시 한 번 선창을 하였다. '우리가!', '남이가!'
그럴 수도 있다. 다소간 역사성이 있는 구호이긴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이 '오랜만!', '이제잉!'이라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고 충청도 사람들이 '대권은!', '여기서!'라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빠진채로 이어폰을 뺀 내 귀에 그 뒤로 들려온 대화의 내용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저렇게까지 근거 없이 저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었다. 나는 남은 짬뽕을 먹으면서 내내, 내가 전라도 사람이었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아니,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도 화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화를 내지 못한 것은 비겁한 일일까 등의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널었다. 빨래의 양이 빨랫대에 빈 칸이 없을 정도로 많으면 긴팔옷은 방에다 빨래줄을 걸고 널어 두기도 한다. 긴팔옷에 옷걸이를 끼워 허위허위 널어 놓고 쳐다 보고 있다가 문득 마음이 동해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색깔이 다르고 모양이 달라도 평화롭게 좀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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