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 2016년 1월 15일의 일이다.
선생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68년에 수감되어 1988년에 출소하였다. 이십 대 후반에 수감되어 긴 세월을 보내면서 좌절과 분노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동양철학에의 사유를 깊게 이룬 한편 재소자를 상대로 이루어지는 서예 교육에 열성을 보여 한글 글씨체의 일가를 이루기도 했다. 본디는 경제학과 출신이나 생애의 말기에는 몸담고 있는 성공회대의 수업에서는 물론 여러 사회 강연을 통해 생명과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강의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수감되던 68년에는 둘째치고 선생이 출소하던 88년에도 나는 여즉 천둥벌거숭이라 선생의 이름도 몰랐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도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아는 정도에 그쳤다. 선생의 말씀을 직접 읽게 된 것은 대학원에 가고 나서의 일이다. 호구를 위해 글쓰기 수업의 첨삭 조교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해당 수업의 강사가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써 낼 책 중 하나로 지정해 놓은 것이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였다.
당시에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의 무식을 탓하며 긴 분량의 논문들을 탐식하던 시기라 선생 특유의 소품 같은 짧은 글들이 심상하게 느껴졌고, 생명이나 역사 의식과 같은 주제 의식들은 너무 범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책에서 가르침과 위로를 읽어내고 이따금 마음이 지칠 때 손에 잡게 된 것은 내 삶에도 신산한 일들이 닥치고 나서의 일이다.
전공의 일부이긴 했지만 동양 고전을 더 애정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든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따금 붓을 꺼내어 좋은 글귀들을 써 본다든지 하는 등으로 선생은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선생이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고, 또 출판사의 전략이었겠지만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에 마음이 움직여 선생의 신간 <담론>을 구입했다. 몇 년이고 끈덕지게 기다리면 갖고 싶은 책은 중고서점에서 다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신간서적을 구입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담론>을 배송받은 어제, 선생의 유고를 접하게 됐다.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스승으로 여겼다. 앞으로도 책을 고쳐 읽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르침에 감사하고 이별에 서운하다. 이제 평온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