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클림트의 <레다>나 <다나에>를 따라 끄적거린 적은 있어도, 살아 있는 사람의 누드를 그린 것은 처음
이다. 팽팽한 곡선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할만 한데, 그 선들이 모여 더욱 아름다운 형체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정
말이지 미적 조형성에 대한 철통같은 의지를 가진 조물주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버릴 수 없
다.
요새 그리고 있는 인물 그림들은 모두 당연히 원화가 있다. 나는 잘 표현되지 않는 부분은 확대해서 그 모양새
를 살펴보기 위해, 원화를 따로 출력하지 않고 노트북의 화면에 띄워놓은 채 그림을 그리는데, 덕분에 이 그림
을 그리는 동안은 연구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정숙이 필수인 연구실에서, 들킨 자리에서 이것
은 실은 예술 행위이노라 소리 높여 강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고한 미의 최고봉인 여체를 그리는 내 순수
한 예술혼에 스스로 의심 한 점 없노라 뻔뻔한 얼굴로 선을 긋고 있기에는 마음 속 넘치는 리비도가 부끄러운
탓에, 아무튼 될 수 있는대로 서둘러 밑그림을 완성하였다. 덕분에 미진한 부분이 생겨 스스로는 자못 안타깝게
여겨져 앞으로는 연구실 구석 자리의 변태 같은 별명이 생기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정성
스레 그리기로 다짐했다.
주인공 인물의 이름으로 대충 때우는 것 말고, 뭔가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제목을 지어 그림을 더욱 빛내는 것
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꽤 긴 시간을 제목 짓기에 투자하였는데, 결국은 일단 <미제>로 남겨 두고 말았다.
단전 밑의 수컷은 <어서 오세요 여보>를 양보하지 않고, 머리 속의 지성인은 <누드 1>따위의 개도국적 제목을
내어놓고는 얌전빼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 통에 타협은 계속 결렬을 거듭하고 있다. 혹 좋은 제목 생각나시면,
'실명으로' 리플 달아 주시라. 실명 리플은 이명박 각하와 유인촌 장관님께서도 예찬하는 시대의 대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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