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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090702, <조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는 순간에 꼭 그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2008년 <The Dark Knight>의
 
조커이다. 당시에는 확실히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것인지, 1년여가 지나 다시 본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그때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그려보고 싶은 마음
이 들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낼름

낼름. 덕분에 혼자 있을 때에는 언제나 낼름낼름.



윈도우즈 그림판은, 간단한 만큼 편리하기는 하지만 세밀한 맛은 없다. 그 이상의 도구를 쓸 줄 모르는 탓에 울

며 겨자먹기로 쓰는 것 뿐이다. 편안하지 않은 자세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로 이리
저리 채색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의 끝 방향이라든지, 눈꼬리라든지, 입매의 마무리라든지 하는 부분
에서 종종 본디의 밑그림에 비해

투박한 느낌이 나는 결과가 나오곤 한다. 그래서 요 근래에는 이전
의 밑그림에 모나미의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직접 채색을 해 보고 있는데, 몇 장 괜찮은 느낌이 나오
는 것을 보고는 신이 났다가 이 그림을 그리며 칠하고 칠

해도 끝이 없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고는 포
기하고 말았다. 만화가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그린 <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박중훈도 그렇고, 이 <조커>도 그렇고, 다음에 그려 보려고 하는 그림

은 <올드보이>의 최민식인데, 냅다 음영 잔뜩 드리운 아저씨들 얼굴만 그려대는 것이,
사실 요새 좀 되는 일이

없다. 본래의 직업에서도 들이는 공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질 않고, 이외로
시도해 보는 일들도 대체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크게 낙담하면 차라리 바닥을 치고 올
라갈 터인데, 조금씩 조금씩 침잠하다 보면 어느

샌가 그 속도에 익숙해지게 된다. 예전의 밝은 일기를
읽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오랜만의 통화를 하게 되면

갑자기 그 빠져든 깊이의 차를 깨닫고 새삼
놀란다.


고민하는 바를 털어놓고 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충분히 뻔뻔하지 못한 것인지 다들

힘든데 뭘 잘났다고 나 혼자 그런 걸 얘길하나 싶어 그저 입을 닫고 만다. 신중함과 과
묵함은, 나 개인에게는 아

무리 있어도 지나치지 않을 덕목이라 반가울 따름이지만, 아무튼 근래의 나
는 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Why so serious?'는 아마도 근래에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기실은 애정과 배려가 담
긴 물음임을

알면서도, 나는 사실 그때마다 '진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라고 되물어보고 싶은 심
정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래도, 물어봐야 답이 없는 질문이라 다시 입을 닫는다. 재미없는 사람이
어도 괜찮은 직업인 것은 그나마 다행

이다.



토요일에는 논문 자격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 통과하고 나면, 석사 논문 완성을 향한 짧지 않은 마라톤이 시작

된다. 해방 후 수만 명이 완주한 길이지만, 나는 장거리에 유난히 약하다. 잘 끝내고 나
면, 약했던 걸 잘한만큼

자신감은 붙겠지, 하고 일단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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