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는 순간에 꼭 그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2008년 <The Dark Knight>의
조커이다. 당시에는 확실히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것인지, 1년여가 지나 다시 본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그때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낼름
낼름. 덕분에 혼자 있을 때에는 언제나 낼름낼름.
윈도우즈 그림판은, 간단한 만큼 편리하기는 하지만 세밀한 맛은 없다. 그 이상의 도구를 쓸 줄 모르는 탓에 울
며 겨자먹기로 쓰는 것 뿐이다. 편안하지 않은 자세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로 이리저리 채색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의 끝 방향이라든지, 눈꼬리라든지, 입매의 마무리라든지 하는 부분에서 종종 본디의 밑그림에 비해
투박한 느낌이 나는 결과가 나오곤 한다. 그래서 요 근래에는 이전의 밑그림에 모나미의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직접 채색을 해 보고 있는데, 몇 장 괜찮은 느낌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신이 났다가 이 그림을 그리며 칠하고 칠
해도 끝이 없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만화가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그린 <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박중훈도 그렇고, 이 <조커>도 그렇고, 다음에 그려 보려고 하는 그림
은 <올드보이>의 최민식인데, 냅다 음영 잔뜩 드리운 아저씨들 얼굴만 그려대는 것이, 사실 요새 좀 되는 일이
없다. 본래의 직업에서도 들이는 공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질 않고, 이외로 시도해 보는 일들도 대체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크게 낙담하면 차라리 바닥을 치고 올라갈 터인데, 조금씩 조금씩 침잠하다 보면 어느
샌가 그 속도에 익숙해지게 된다. 예전의 밝은 일기를 읽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오랜만의 통화를 하게 되면
갑자기 그 빠져든 깊이의 차를 깨닫고 새삼 놀란다.
고민하는 바를 털어놓고 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충분히 뻔뻔하지 못한 것인지 다들
힘든데 뭘 잘났다고 나 혼자 그런 걸 얘길하나 싶어 그저 입을 닫고 만다. 신중함과 과묵함은, 나 개인에게는 아
무리 있어도 지나치지 않을 덕목이라 반가울 따름이지만, 아무튼 근래의 나는 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Why so serious?'는 아마도 근래에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기실은 애정과 배려가 담긴 물음임을
알면서도, 나는 사실 그때마다 '진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라고 되물어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래도, 물어봐야 답이 없는 질문이라 다시 입을 닫는다. 재미없는 사람이어도 괜찮은 직업인 것은 그나마 다행
이다.
토요일에는 논문 자격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 통과하고 나면, 석사 논문 완성을 향한 짧지 않은 마라톤이 시작
된다. 해방 후 수만 명이 완주한 길이지만, 나는 장거리에 유난히 약하다. 잘 끝내고 나면, 약했던 걸 잘한만큼
자신감은 붙겠지, 하고 일단은 생각해 본다.
조커이다. 당시에는 확실히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것인지, 1년여가 지나 다시 본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그때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낼름
낼름. 덕분에 혼자 있을 때에는 언제나 낼름낼름.
윈도우즈 그림판은, 간단한 만큼 편리하기는 하지만 세밀한 맛은 없다. 그 이상의 도구를 쓸 줄 모르는 탓에 울
며 겨자먹기로 쓰는 것 뿐이다. 편안하지 않은 자세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로 이리저리 채색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의 끝 방향이라든지, 눈꼬리라든지, 입매의 마무리라든지 하는 부분에서 종종 본디의 밑그림에 비해
투박한 느낌이 나는 결과가 나오곤 한다. 그래서 요 근래에는 이전의 밑그림에 모나미의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직접 채색을 해 보고 있는데, 몇 장 괜찮은 느낌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신이 났다가 이 그림을 그리며 칠하고 칠
해도 끝이 없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만화가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그린 <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박중훈도 그렇고, 이 <조커>도 그렇고, 다음에 그려 보려고 하는 그림
은 <올드보이>의 최민식인데, 냅다 음영 잔뜩 드리운 아저씨들 얼굴만 그려대는 것이, 사실 요새 좀 되는 일이
없다. 본래의 직업에서도 들이는 공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질 않고, 이외로 시도해 보는 일들도 대체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크게 낙담하면 차라리 바닥을 치고 올라갈 터인데, 조금씩 조금씩 침잠하다 보면 어느
샌가 그 속도에 익숙해지게 된다. 예전의 밝은 일기를 읽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오랜만의 통화를 하게 되면
갑자기 그 빠져든 깊이의 차를 깨닫고 새삼 놀란다.
고민하는 바를 털어놓고 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충분히 뻔뻔하지 못한 것인지 다들
힘든데 뭘 잘났다고 나 혼자 그런 걸 얘길하나 싶어 그저 입을 닫고 만다. 신중함과 과묵함은, 나 개인에게는 아
무리 있어도 지나치지 않을 덕목이라 반가울 따름이지만, 아무튼 근래의 나는 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Why so serious?'는 아마도 근래에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기실은 애정과 배려가 담긴 물음임을
알면서도, 나는 사실 그때마다 '진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라고 되물어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래도, 물어봐야 답이 없는 질문이라 다시 입을 닫는다. 재미없는 사람이어도 괜찮은 직업인 것은 그나마 다행
이다.
토요일에는 논문 자격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 통과하고 나면, 석사 논문 완성을 향한 짧지 않은 마라톤이 시작
된다. 해방 후 수만 명이 완주한 길이지만, 나는 장거리에 유난히 약하다. 잘 끝내고 나면, 약했던 걸 잘한만큼
자신감은 붙겠지, 하고 일단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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