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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The King's Speech





박찬욱 감독의 다음 영화에 출연한다는 콜린 퍼스의 <King's Speech>를 보았다. 여러 작품에 출연한 세계적인 배우이

지만, 내 또래의 남성
들이라면 2000년대 초반의 영화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크 역할로 기억하시는 이가 많을 것

같다.
그 맘때쯤 남자들끼리 모여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 반의 반만이라도 닮으라고 여자친구에게 구박

을 받은 이야기
가 큰 호응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미웠던 콜린 퍼스도 이제는 팔자 주름에 옆머리가 희끗희

끗. 가슴 한 구석에서 용
서의 마음이 뭉클 솟아오른다. 마음 편하게 좋아하도록 이적 형이나 성시경도 빨리 늙어줬으

면 한
다.






콜린 퍼스는 이 영화에서, 개인적인 행복을 찾아 왕위를 버린 형의 뒤를 이어 히틀러가 전쟁을 선포한 시기에 나라를

이끌어 가야하게 된 조지 6세 역할을 맡았다. 영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서 영화가 얼마나 사실에 기초했

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스토리에 따르면 조지 6세는 비록 제1 왕위 계승자는 아니지만 왕자로서의 처신에 대해 크

게 주의를 받으며
자란 탓에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인간 조지 6세가 한 언어치료사를 만나 내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지, 그 과정의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의 대단원은 그 후로 전쟁이 어떻게 진전되었다든지, 조지 6세가 어떤 업적을 남겼다든지 하는 역사적 기

록이 아니라 그가 히틀러의 침공에 대
한 대국민 연설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개인적 차원

에 수렴된다. 영화도 보고 역사도 배워보겠다는 꿩먹고 알
먹고식 관람을 지향했던 분이라면 정중히 다른 영화를 권한

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면에 갈등을 지닌 중년 남성이 갈등,
혹은 위기 상황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간다는 느슨한 공통

점에
서 <쉘 위 댄스>를 연상하며 관람했다.

중후한 외모에 신경질적이며 나약한 내면을 동시에 표현해 낸 콜린 퍼스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상과 영국 아카데미

상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로 영국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헬레나 본햄 카터. 넓은 범위의 역할로 접할 수 있었지만, <파이트
 
클럽>의 밀라도 그랬고, <스위니 토드>의 러벳 부인도 그랬고, 남자로 하여금 말려들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직감하면

도 정신 차리면 이미 빠져있게 하는 매력이 특히 일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매력이 중후하게 잘

음되어, 자기 남자의 약점을 감싸안고 해결하게 하며 심지어 위트까지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국사를 전공한 이

만나면 이 영화와 관련하여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 가운데 가장 먼저 던질 것이 바로 왕비 역할이 오로지 그녀의 해

인지 역사에 근거한 바가 있는지이다.  
 






<킹스 스피치>는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연출상, 각본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의 4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는데, 영화평

론가 오동진 씨는 그의 블로그에서 남우주연상 외의 수상에 의문을 표한 바 있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인 트리트

먼트>를 파고든 후라 더욱 그랬는지, '왕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요받은 어린 시절에의 트라우마 - 왕위를 물

려받게 되었다는 갈등 상황 - 내면과의 직면, 그리고 화해' 라는 3단 구조는 지나치게 뻔했다. 뻔한 이야기와 심심한
 
연출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콜린 퍼스에게 상이 돌아간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래도, 영화가 잘 됐다고 굳

이 감독이나 연출상까지? 아무튼 <블랙 스완>에 상반기 관람 에너지를 다 쓴 뒤로는, 영화 보면서 크게 긴장하거나 몰

입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차에 내게는 편해서 좋은 관람이었다. 






이 장면은 벽지의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올렸다. 바로 위의 장면에서 보듯 상담과 발음 교정 훈련이 이루어지는 공간

은 무척 넓은 곳이었는데, 벽지의 선택과 소품의 적절한 배치 등이, 마치 안락한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힘을 가지고 

었다. 인테리어는 확실히 좀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문법을 아는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 관찰한 결과 이 영화에는 극단적인 클로즈 업과 부감샷, 혹은 풀샷이

많았다. (이 용어들이 맞는 것인지도 좀 가르쳐 주기 바란다.) 인물의 얼굴에 바싹 달라붙
은 장면들은 그 심리나 캐릭

터의 묘사에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느꼈는데, 이따금 나오는 부감샷이나 풀샷들은 의도
를 짐작
하기가 어

려웠다. 단순히 20세기
초중반 영국이라는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뿐일까? 아니면 클로
즈업 다음에는 부감, 다

시 클로즈업이라는 구성상의 원리가 따로 있는 것일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해 왔던 처칠 역 중에 가장 못생겼던 처칠. 찾아보니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웜테일'이란 배역

을 맡았던 배우라고 한다. 본지가 오래 되어서 기억은 안 나는데,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니 대악당 급은 아닌 것 같다.

해외의
기사 가운데 '가장 흡사한 처칠'이라는 표현을 읽고 나니 내 눈이 잘못됐나 하고 다시 갸우뚱거리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실제 세계에서는 그 후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말해주는 일

종의 나레이션이 나올 때가 있다. 이것도 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아는 분은 문자로라도 좀 알려 주시라. 위 장면이 그

나레이션 가운데 마지막 것인데, 이 앞에는 왕인 조지 6세가 그의 치료사인 라이오넬에게 어떤 대우를 해 주었는지, 그

들이 함께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나오고, 끝으로 (조지 6세의 애칭인) '버티'와 '라이오넬'이 사람 그 자체로서 어

떻게 지냈는지가 나온다. 이러한 '호칭'이나 '명칭'등의 변용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멋들어진 어감은 일본이나 미국의

언어 문화에 비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것 같다. 이 문제는 언젠가 좀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



총평하여, 그럭저럭 추천작. 사실은 평작이지만, 나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변주된 매력과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바르

바로사 선장 역을 맡았던 제프리 러쉬 할아버지의 점잖은 연기에 재미있어 하면서 잘 봤다. 뭔가 매력을 느낄 만한 점

을 발견한 분이라면 관람해도 큰 후회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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