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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150802, <Lady Godiva>

 

 

 

새로 받은 그림 리퀘스트는 '레이디 고디바'였다. 레이디 고디바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니 짧게만 요약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11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인 레오프릭은 가혹한 정치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 아내인 고디바는 영지의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겨 특히 살인적인 세금제도를 개선해줄 것을 남편에게 건의하였다. 몇차례나 거절했는데도 아내의 건의가 계속되자 레오프릭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면 행동으로 보여라. 벌거벗은 채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진심임을 알고 세제를 손보겠다.

 

시대와 신분을 떠나서 여성이 실행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디바는 고심 끝에 옷을 벗고 말에 오르기로 결정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디바가 영지를 돌기로 한 날에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문과 창문을 걸어닫기로 결의한다. 고디바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결국 고디바는 무사히 영지를 한 바퀴 돌았고 레오프릭은 부인이 부탁했던 대로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끝나는 고디바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레퍼런스가 하나 더 붙어있다. 아무도 창 밖을 보지 않기로 결의했지만 양복 재단사 톰은 욕망과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커튼 틈을 통해 고디바의 나신을 훔쳐보다가 천벌을 받아 눈이 멀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엿보는 톰peeping tom'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됐다. 오늘날 peeping tom은 호색가나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 등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아무튼 이런 고디바 이야기의 레이디 고디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  

 

 

 

 

 

 

 

 

백마와 나신의 아름다운 여성, 그리고 수치심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섞여있어 레이디 고디바를 그린 그림은 무척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존 콜리에John Collier의 <Lady Godiva>이다. 안정적인 화면구성과 뛰어난 묘사력이 어우러진 명화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조금 더 노력을 해 다른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찾아낸 그림. 현대작가인 요슈아 브로노Joshua Bronaugh의 2011년 작 <Pale Rider>이다. - 위의 그림은 내가 그린 모작이니 원작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기 바란다 - 'Pale Rider'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 중 한 명으로 '죽음'을 비유하는 캐릭터로 유명한데, 이 그림에서는 큰 상관을 찾기 어렵고 그저 단어 뜻 그대로 제목에 쓰인 것이 아닐까 싶다.

 

고디바를 그린 그림 대부분이 존 콜리에의 그림처럼 측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그림은 후면에서 바라보는 장면으로 구성을 한 것이 신선했다. 게다가 요슈아 브로노는 여성의 나신의 묘사와 대상의 외곽선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의 표현에 능숙한 화가인데 <Pale Rider>에는 그 두가지 특징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질끈 감은 눈이나 꼭 다문 입술 등의 묘사보다, 드러난 알몸과 그 몸의 구석구석이 다 드러나보이게 하는 무참한 햇빛의 조화가 수치심의 더욱 세련된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따라그리는 내내 색다른 재미를 가질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붉은빛의 필터로 보정해 본 것 하나 덧붙여두고 오늘은 이만. 아, 즐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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