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읽고 있는 본격 서도 만화 <거침없이 한 획!> 5권에 등장한 글씨이다. 개별 작품으로서는 모두 비슷하게
생긴 등장 인물들이나 평범한 갈등 구조의 서툰 배치 등이 영 별로이지만, 한문의 초급 전공자에게는 한자의 서
체 별 설명과 같은 서도와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만화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금과 같은 자료이
다. 새로 산 금 펜의 색감도 좋았고 촬영도 바탕인 골판지의 질감이 잘 드러나게 되어서 꽤 흡족했다.
제목은 아마도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이 대유행하던 출판 당시의 한국 사정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라
추측만 해 오다가 이번에 원제를 검색해 보았다. 일본에서의 원제는 <토메하넷! 스즈리고교 서예부(とめはね
っ!-鈴里高校書道部)>. 곧 NHK에서 드라마화한다고도 하고 동방신기가 그 주제가를 불렀다고도 하여 원제의
번역을 해 놓은 블로그 하나쯤 찾는 것은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을 투자하고도 직접적
인 해설은 못 찾았다.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은 '토메/하네'가 각각 서도 용어라는 주장이었다. 찾아보니, '토
메'는 '止め'로 '(붓글씨를 쓰다가) 멈춤'의 뜻이, '하네'는 '撥ね'로 '글씨를 쓸 때 붓끝을 치키듯이 쓰는 운필.
또는 그렇게 쓴 부분. 치침.'이라는 뜻이 있었다. '치침'은 한글 사전에 검색 결과가 없었는데, 아마도 '삐침'이
오기된 것인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서도의 ABC에 해당하는 기법의 이름에 힘을 넣은 っ을 붙인 것인데, 생각해 보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힘내어 밟아 나가자는 내용이니 '거침없이 한 획'이라는 한국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정반대라고는 할 수 없더라
도 상당 부분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언어는 다른 문화를 담지하는 것이니 언제나 원제의 뉘앙스를 살릴
수는 없는 것이고, 상업 출판물인 이상 인지도가 높은 단어들을 사용해 더 많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치더라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신선한 느낌
을 기억하며 '파라노말 포제션'을 보았다가 크게 실망하고 원래 제목을 찾아 봤던 기억이 났다. 검색 결과는
<The Possession Of David O'Reilly>. 'David O'Reilly'는 등장인물 가운데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한 명의 이
름이다.
아무튼, 멋진 글씨를 보며 오랜만에 서예에의 의지가 타 올랐다. 언젠가는 글씨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쓰고 있
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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