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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3

벚꽃 단상

 

 

 

 

 

등교길,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익숙한 골목의 초입에 들어서는데 코가 따가울 정도의 벚꽃

 

향이 찌르고 들어왔다. 꽃나무 옆을 지나는 중인가 하고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보니 담벼락 뿐이었다. 주위를 휘

 

휘 둘러보자 저만치 꽃나무가 보였다. 설마, 이 거리에서 싶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향은 아주 진해졌다.

 

 

 

 

 

 

 

 

 

나는 항상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돈부리 집 앞을 지나면서 끼니마다 마음 놓고 고기덮밥 먹는 이들을 부러워 했

 

는데, 가게 바로 앞에서 오늘처럼 강한 꽃향이 난다면 토핑을 배로 얹어준대도 사절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참치 큰 캔 하나를 통째로 넣고 김치찌개를 흡족하게 끓여먹은 직후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향은 몇 년동안 기억될만한 것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꽃 향기를 맡으면 이 골목이 생각나겠구나, 하

 

면서 그 아래에 서서 노래 한 곡을 다 듣고 갔다.

 

 

 

향을 마시며 노래를 들으며 서 있다가 문득 든 생각, 요런 기계 어떤가!

 

 

 

보편적인 심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각보다는 후각에 얽힌 기억들을 훨씬 강렬한 형태로 갖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자개 장롱의 냄새라든지, 고교 시절 체육 시간 뒤 교실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라든지, 군대 자대의

 

화장실에서 나던 싸구려 나프탈렌 냄새라든지. 시각적 영상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데 도움을 주는 정도라

 

면, 냄새는 그 냄새를 맡던 바로 그 때로 나를 고스란히 옮겨다놓는 듯하다.

 

 

 

그렇다면 시각을 사진 영상으로 저장해 놓듯이, 후각적 정보를 자료로 남겨놓는 기계가 상용화되면 어떨까. 한

 

마디로, 냄새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해서 무슨 원소 몇 %, 무슨 원소 몇 % 하는 식으로 기록해 놓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이런 기능을 내장했다가는 원가가 얼마가 뛸지 모르니, 위의 그림처럼 악세사리 형태로 해서 사고싶

 

은 사람만 사도록 하면 수요가 꽤 있을 것도 같다.

 

 

 

집으로 돌아와 그 냄새를 다시 재생해 내는 것, 말하자면 '후각 프린터'를 사용해 그 정보를 다시 '출력'해 내는

 

것은 프린터의 잉크 격인 냄새의 구성 원소들을 집집마다 갖출 수 있는 먼 미래에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그 때까지 정확한 자료를 저장해놓는 것만 해도 어딘가. 아니면 언젠가 뇌에 전극을 연결하는 것이 상용화될 때

 

쯤엔 굳이 냄새 원소를 갖출 것도 없이 각각의 냄새 원소들이 자극하는 뇌의 부위를 한꺼번에 자극시키면 되지

 

않을까.

 

 

 

내가 아주 흠모하는, 네덜란드에 거주하시는 한 여사님께서, 얼마 전 암스테르담의 교외에 쑥이 보이길래 캐 봤

 

더니 향이 전혀 나지 않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이런 분들에게 고국의 쑥 향을 맡게 해 드리는 기계는

 

과연 얼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인가.

 

 

 

여기까지 글을 쓰고는, 나라면 무슨 향을 저장해 두고 싶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초등학교의 운동회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청군/백군 머리띠의 냄새, 소독 방역차의 연기 냄새, 곤로의 석유 냄새, 밀가루 떡볶이 냄새,

 

군대에서 먹던 마가린 밥 냄새... 끝도 없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만약 딱 하나만 저장할 수 있다면, 언젠가 태어

 

날 첫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냄새를 저장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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