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설국열차>.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제작비만 450억이 소요되었다는 소식 등이 이미 제작 단계부터 무성
한 화제에 오른 바 있었다.
영화는 동명의 그래픽 노벨을 극화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 동서 양 진영의 '기후 무기'를 이용한 분쟁 끝에 전
지구는 눈에 뒤덮인 '설국'이 되고 만다. 생존자들은 전세계로 이어져 있는 철도 위를 영원히 횡단하는 '설국 열
차'에 몸을 싣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열차는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 안은 식량칸, 조리칸, 거주칸 등 기능적으로 분리되기도 하고, 가난
한 이들이 득시글거리는 칸과 부유한 이들이 넉넉하게 사용하는 칸 등 계급적으로 분리되기도 한다.
만화는 서로 느슨하게 이어진 내용의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나리오 작가는 같지만 1부와 2, 3부는 만화가가
다르다. 국내에는 1부가 1권으로, 2부와 3부가 한 권으로 합쳐져 2권으로 발매된 바 있었다.
두 권의 만화책은 2004년에 나왔는데, 그 뒤로 썩 인기가 없었던지 아주 긴 시간동안 온라인 서점의 할인행사
품목으로 단골처럼 등장했었다. 나도 06, 07년 경에 반값을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화제작인 영화로 개봉
하게 된 지금에도 여전히 할인 중일까 싶어 심술궂은 마음에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두 권으로 나
뉘어 팔리던 구판은 절판되었고, 두툼한 한 권에 3부가 모두 합본되어 출간된 2009년 판이 20% 할인가격에 팔
리고 있었다. 옮긴이와 출판사가 동일하니 혹여라도 구판과 뭔가 달라진 것이 있을까 우려하시는 분이라면 걱정
놓으셔도 좋겠다.
영화 <설국열차>는 2013년 1월 1일 하루동안, '탑승권'을 신청하는 이벤트를 벌인 적이 있었다. 해당 기간 동안
온라인을 통해 신청한 신청자 전원에게 '탑승권'을 발부해 준다는 것이었는데, 탑승권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시사회 티켓에 적당히 이름을 붙인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응모한 적이 있었다. 석 달도 전의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설국열차'의 이름으로 우편물이 배송되어 왔다. 봉투를 뜯어보니, 흰 종이로 된 부클릿
이 하나 들어 있었다.
식민지 시기의 출판물이나 냉전 시대의 여권을 보는 듯한 디자인.
하단부에는 영화 <설국열차>의 엠블렘이 새겨져 있다.
내용물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탑승권', 엽서, 여권.
'탑승권'의 정체는 진짜로 탑승권이었다. 전면에는 네이버에 개설된 영화 카페에의 가입 설명법과 가입시 일반
승객이 아니라 '탑승객'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가 적혀져 있다. 잘 읽어보니, 탑승권이 곧 영화 티켓은
아니고, 탑승권을 소지한 이에게만 '최초 시사 및 쇼케이스 응모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 한다. 빛 좋은 개살구
구나, 하면서도 빠닥빠닥한 종이에 금장 엠블렘까지 찍혀져 있어 마냥 얄미워할 수만은 없다.
3종의 내용물 가운데 만족도에 있어 큰 차이로 처지는 '엽서'. 전면에는 영화 엠블렘이 그려져 있고 후면에는
'설국열차 운행도'와 '설국열차의 창조자 윌포드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영화관에서 발견했더라면 지나가며 훑
어보거나 아니면 한차례 읽고 원래 자리에 다시 돌려놓을 법한, 흔한 품질이다.
아무리 CJ라지만 도대체 홍보비가 얼마야?, 라고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여권'. 마감도 깔끔하고 접착 상태도 나
쁘지 않다. 외형과 구성은 최대한 실제 여권과 대단히 흡사하다.
표지를 포함해 총 28면. 앞뒤의 서너 장 정도는 소지자의 정보를 기입하게 되어 있는 공란이나 출입국 도장을 찍
는 공란 등 실제의 여권과 흡사하게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위 사진과 같이 출연 배우들을 소개하는 내
용이다.
쟁쟁한 외국 배우들 가운데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송강호 아저씨. 배역의 이름은 '남궁민수', 소속된 기차칸은
'감옥칸'이다.
스탭으로서는 혼자 이름을 올린 봉준호 감독. 섹션은 '감독칸'이며 특징은 '설국열차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본인의 아이디어일까? 잘 봐주면 귀엽고 나쁘게 보자면 다소 유치하다.
기사에 따르면 이 부클릿은 이벤트 당일에 응모한 총 2만 3천여 명에게 전부 발송되었다 한다. 부클릿 한 부의
제작 단가를 알 수 없어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직접 받아본 입장에서는 무언가에 '당첨'되었다는 기쁨과 고
급스런 기념품을 받아드는 만족감을 충실히 느낀, 좋은 홍보물이었다. 본래도 개봉하면 관람을 할 생각이었지
만, 이 홍보물을 받고 나니 '최초 시사 및 쇼케이스 응모 기회'에서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극장에 가 유료 관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투자들이 결국에는 제작비 인상의 한 요인이며 결국에는 전
체 관람료의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참신한 홍보라지만 여하튼 결국엔 브랜드 1위의 멀티플렉스를 끼고
있는 업체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