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나가는 고등학교는 교문부터 건물까지 꽤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 갑자기 볕이 좋았던
어느 날, 겹겹이 껴입고 나간 옷 탓에 난 땀을 한차례 식히려고 교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그간 백 번도 넘게 지
나다녔을 교문 앞 문구점의 뽑기룰 보았다. 뽑기라고 하면 쇠국자에 설탕과 소다를 섞어 구운 간식거리를 가리
키기도 하고, 큰 도화지에 엄지손 정도의 접힌 종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하나씩 떼어내 그 안에 적힌 상품을
수령하는 사행성 상품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나는 뽑기라면 역시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장난감 따위의 제
품이 담긴 캡슐이 나오는 이 기계가 떠오른다.
기본이 200원. 내가 어릴 때에도 보통 100원이었었는데, 액수로 쳐도 얼마 안 오른 것이고 배율로 쳐도 고작 두
배 정도 올랐구나. 참 안 오른다.
그냥 플라스틱으로 겉모양만 만들어 놓았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뒤로 당겼다가 놓으면 쌩 하고 달려가는 구동형
장난감이었다. 200원 치고는 장하네.
재미있어서 한 번 더 뽑아보았다가 단가의 비밀을 알게 됐다. 수익의 평균을 위해 말도 안 되는 물건도 섞여 있
었던 것이다.
80년대에서 직수입된 듯한 디자인과 퀄리티. 그 기세가 너무 엄청나서 나는 차라리 재미있었다. 머리 위의 고리
는 무슨 용도일까. 실을 꿰어 목에 걸라는 것일까, 아니면 긴 줄을 달아 개 산책시키듯 끌고 다니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