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근에 살지 않을 때조차, 밤의 모습이 아름다워 이따금 찾곤 하던 언덕 위 그 카페가 없어졌다. 입구에 샹
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통유리로는 항상 드문드문 손님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이던, 정원에는 따로
이 놓여진 벤치와 그 위로 포도 가지가 낭창낭창 드리워진 그림 같은 곳이었다. 언젠가 귀한 사람들과 함께 와
보리라 다짐하면서도 이 카페 말고는 올 일이 없는 곳이라 찾지 못했고, 나 혼자 있을 때에는 돈을 쓰지 않는 편
이라 수백 번의 귀가길에도 눈동냥만 했을 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십여 년 신촌 생활의 짝사랑이 무너지
는데는 이삼일이면 충분했다.
사진을 찍은 것은 팔월 중순의 일.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부지에는 커다란 구덩이와 그 위를 덮은 거대한 철골 구
조가 있다. 모양새로는 요사이 서문 지역의 하숙집과 골목들을 밀어내고 들어서기 시작한 '원룸텔' 중 하나일 것
같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원래의 주인이 더 컨셉 있는 찻집을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이길 바라지만, 돈으로 보
자면 찻집이 있어서는 안 되는 땅이긴 하다. 가 보는 건 둘째 치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었더라면 하고 때늦
은 후회를 한다. 거짓말처럼 불쑥 다가온 가을 덕에 조금 더 서운한 것은 오랜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