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예비군

 

 

 

 

 

 

6년차의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 끝났다. 제대 후 8년까지는 예비군 소속이지만, 예비군 7년차와 8년차는 훈련을

 

받지 않기 때문에 6년차 훈련이 끝난 나는 이제 전쟁이 나지 않는 한 더이상 군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이번 훈련은 오후 한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시청각 교육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시에 훈련장을 나왔다. 지난 8월

 

, 본적지인 인천시 관교동의 예비군 동대에서는 동명이인, 그러니까 다른 최대호의 훈련 일정을 나에게 통지하

 

였고 덕분에 나는 인천까지 헛걸음을 한 일이 있었다. 일정을 쪼개어 올 여름의 폭염을 뚫고 갔다가 시간을 날리

 

게 된, 게다가 원래대로였다면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군복을 시원하게 집어던질 예정이었던 나는 입 밖

 

으로 말을 내진 않았지만 표정에 있는대로 독이 올랐고, 광경을 지켜보던 동대장은 타협책으로 다음 훈련을 다

 

른 예비군들보다 일찍 끝내주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한 시에 모여서 출석을 부르고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총기를 수령하고 나니 두 시가 됐다. 잠시 휴식한 뒤 교육을

 

시작하겠다고 말하고는 교육장을 나서는 동대장에게, 최대호입니다, 언제 끝내주시렵니까, 고 말하자 동대장은

 

잠깐동안 못 알아보는 듯한 표정과 설마 진짜로 다시 말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을 섞더니, 한 시간 교육만

 

듣고 가시죠, 라고 답했다. 예비군 6년차 마지막 훈련입니다, 이제 와 안보 교육 오십 분 더 받는다고 저한테 무

 

슨 의미가 있겠어요, 라고 말하자 그는 잠시간 짜증 섞인 표정을 짓더니 돌아가셔도 좋다고 말을 했다.

 

 

훈련장을 나와 동대 건물로 가 총기를 반납하고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거리로 나오자, 기묘한 느낌이 몸을 감쌌

 

다. 다른 예비군들은 앉아서 마지막 훈련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간. 날은 평화로운 가을 날이고

 

사람들은 어제 저녁이나 오늘 아침의 나와 같이 인천의 길거리를 일상적으로 걷고 있었다. 의무경찰을 나온 터

 

라 논산 훈련소 뒤로는 입어본 적도 없는 육군복을 입고 서 있자니, 내 군생활이란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고 생

 

각하다가, 제대하던 날이 떠올랐다.

 

 

 

 

자대였던 인천국제공항경찰대는 자연소멸 부대였다. 의무경찰을 점점 줄여서 뽑기로 결정하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부대부터 신병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는데, 내 자대가 대표 케이스로 걸렸던 것이다. 이미 있는 병

 

사는 놓아두고, 신병을 적게 배치하거나 아예 배치하지 않으면 그 부대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그 과정

 

의 행정 용어가 '자연소멸 부대'였다. 나는 내가 속한 자대에서 신병부터 군생활을 시작한 마지막 병사이다.

 

 

몇 명 남지 않은 병사를 위해 전기비와 난방비가 드는 막사를 운영할 수는 없었다. 제대를 두어 달 앞둔 때쯤 나

 

와 두 명의 후임은 공항에 있는 경찰대 내부의 쪽방으로 이사를 했다. 경찰대 한 가운데에 있고 특히 경비과와는

 

붙어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직원들이 들어와 낮잠을 자고 시비를 거는 그런 방이었다. 나는 근무시간과 취침시간

 

사이에는 늘 공항 어딘가를 배회하였다.

 

 

자연소멸 부대에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양보할 수 없었던 두 보직은 공항경찰대장의 운전병과 통신병이다. 그

 

역할을 맡은 후임 둘은 늘 바빴다. 통신실을 담당하던 애는, 내가 신병이던 때에는 세 명이 교대근무를 하던 통

 

신실을 혼자 맡아 공항경찰대의 무전통신을 24시간 책임졌다. 통신실의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거나, 쪽방으로

 

무전기를 들고와 귓전에 대고는 새우잠을 자다가 통신실을 찾는 소리만 들리면 바람같이 뛰어나가고는 했다.  

 

 

막내는 경찰대장 차, 일명 '1호차'의 운전병이었다. 1호차 운전병은 대장의 공식행사에 대동하는 관계로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길렀다. 대장을 목적지로 태워다 주고 나면 일정이 끝날 때까지 자유시간이라 영종대교를 넘어 인

 

천 집에 다녀오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잠도 쪽방에서보다는 대장의 관사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옷도 머리도

 

생활도 다른 아이를 같은 군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요 최 수경님', '아닌데요 최 수경님'같은 말

 

투를 쓰더라도 특별히 거슬리지 않았다. 거슬렸다 하더라도 대장 옆에 하루 종일 붙어있는 애를 때릴 수 있는 군

 

인은 없다.

 

 

내 자대에서는, 열흘 간의 말년 휴가를 잘 아껴 두었다가 제대 열하루 전에야 쓰기 시작해서 제대 하루 전에 복

 

귀를 해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에 제대 신고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마지막 밤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다음 날

 

이면 제대를 하는 이들은 저녁 무렵 열흘간 기른 머리와 함께 손에 통닭과 삼겹살을 가득 들고 복귀를 했고, 그

 

날만은 직원들도 과음을 눈감아주었다.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병사들은 사회의 분위기를 묻기에 바빴고, 그

 

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병사들은 큰마음먹고 반말을 하며 남은 감정을 털기도 하고, (나는 언제나 포함되어 있었

 

던) '막내들'은 고기를 구워나르고 술잔을 채우고 설거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대하는 이는 신병 때 겪었

 

던 마음고생과 구타, 함께 고생했던 병사들과 헤어지는 서운함, 앞으로 나갈 사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울지 않

 

는 이가 적었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악독하기로 소문났던 이가 제대하는 때라도 병사들은 같이 우는 일이 많았

 

다. 막사의 불은 밤새 켜져 있었고, 다른 날이라면 선 자리에서 얻어맞을 일들도 이 날은 대체로 관대히 넘어갔

 

다.

 

 

나는 2006년 10월 7일에 제대를 했다. 6일 저녁에 복귀를 해 보니 쪽방 문은 잠겨 있었다. 통신실로 가 보니 통

 

신병 후임은 추석 연휴 기간이라 직원들도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아 문을 잠궈두었다며 열쇠를 건네 주었다. 문

 

을 열고 들어가 앉아 있자니 할 일이 없었다. 열흘 전 말년 휴가를 나가며 내 짐을 모두 빼기도 했고, 군 생활 중

 

두어달을 보냈을 뿐인, 그것도 잠만 자러 들어갔을 뿐인 방에 곱씹을 추억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 아침까

 

지는 군인이지만 멋대로 돌아다닌다고 적발을 하거나 징계를 내릴 직원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새벽까지 공항을

 

배회했다. 잠이 올 때쯤 하여 돌아가 보니 쪽방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통신실로 닭 한 마리를 배달시키고 나는

 

잠을 잤다.

 

 

제대날 아침, 두어 시간 잤을 뿐인데 새벽 여섯 시쯤 잠에서 깼다. 옆에서는 통신병 후임과 막내가 새근새근 자

 

고 있었다. 신고는 여덟 시였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빠져나와 공항 직원들이 이용하는 샤워실을 찾아 긴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도중에야, 나는 막사가 없어지던 때 제대 후 예비군 훈련에 신을 군화를 챙겨두지 않았다는 사실

 

과, 아무도 나에게 제대 신고 양식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가을

 

아침의 찬바람이 불었다. 매일매일, 정말 싫다고 생각하며 근무지로 나갈 때 맞던 그 바람이라 꽤 긴 시간을 서

 

서 맞아 보았다.

 

 

후임들은 계속 자고 있었다. 잠든지 고작해야 서너 시간쯤 되었을 것이라 나는 수건과 세면도구를 내려놓고 다

 

시 밖으로 나와 텅 빈 경비과의 소파에 앉았다. 이삼십 분이 지난 일곱시 사십오 분 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

 

더니 경비과의 한 직원이 들어왔다. 제대 얼마 전에 있었던 인사 이동으로 인해 새로 온 낯선 이였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네가 최대호지?'하고 물었다. 내가 '네, 반장님' 하고 대답을 하자 그는 책상으로 성큼성큼

 

가 서랍을 열고는 그 안에서 전역증과 자대배치 때 맡겼던 내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한 손으로 건넸다. 2년만에

 

자유롭게 손에 쥐는 주민등록증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그는 '너 때문에 연휴 때 나왔어. 수당도 안 나온다

 

고'라고 말하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어, 반장님...'하고 말하자 그는 귀찮은 표정의 얼굴을 돌리며

 

'왜?'하고 물었다. '제대신고 안 합니까?'하고 묻자 그는 몸을 돌리고 걸어가며 '신고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얼마간 서 있다가 쪽방으로 들어가 입고 왔던 재킷을 걸치고 조용히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신고도 없었고, 그나마 신고를 어떻게 할 줄도 몰랐고, 아는 직원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여덟 시도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기실 내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생의 제일 거지 같았던 2년의

 

마지막이 고작 이 것이란 말인가, 하는 마음이 울컥하고 들어 나는 앞 좌석의 등받이를 후려치다가 기사에게 혼

 

이 났다.

 

 

 

 

 

그것이 육 년 전의 일이다. 다른 예비군들이 앉아서 마지막 훈련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기다리던 때에, 나는 주

 

민등록증을 내고 총기를 받았다가 총기를 반납하고 주민등록증을 받는 데 한 시간을 보낸 뒤 혼자 끝을 냈다. 혼

 

자서 제대하던 그 날의 일이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 날까지도 '남들 같지' 않았던 내 군생

 

활을 위로하기 위해 이 길고 정리되지 않은 글을 쓴다. 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았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