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의 상단에 표시된 대로, 위 도표는 유명 결혼정보회사에서 자체 평가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배우자감의
데이터를 정리해 놓은 결과이다. 남성 한 명, 여성 한 명을 뽑았다고 하니 이는 물론 특정 개인의 데이터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 특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은 이것이 다른 특성들에 비해 '권장할 만한', 혹
은 '선호되는' 특징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며, 또한 '이에 부합하는' 미혼남녀가 전국에 몇 명 존재한다는 것을 광
고하는 데에서는 그러한 시각이 사회 일반으로 통용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이 경우 '사회 일반'이라는 것이 해당 결혼정보회사 기준의 '사회 일반'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수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울러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의 일단이 정직
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걸 가지고 계속 돈을 버는 사람들이니만큼, 일
개 블로그 등에서 개인이 자신의 연애 경험 등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하는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남자의 7가지
법칙'이나 '청담동에서 인기있는 그의 6가지 비밀' 따위의 기사보다는 보다 검증된 자료라는 것이다. 돈을 못 벌
면 회사가 날아갈 판에, 흥미성 홍보 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든지, 해당 회사나 혹은 결혼 정보사업 전체의 이미
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돈도 안 되는) 미담 기준들울 소개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들
이 돈을 벌었다는 것은, 이들이 필사적으로 파악한 고객들의 수요와 성향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한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자료임을 확인하고 꼼꼼히 살펴보면, 도표를 한 차례 일람하는 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재미있는 지점들이 눈에 띈다.
먼저 직업과 연령을 살펴보자. 남자의 경우, 그는 연봉 2억 원의 박사 학위 소지 의사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했
으며 현재 소득이 2억이라면, 종합병원에 있든 개업의이든 그 과정에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을 감안해 볼 때 30
대 중반보다 어릴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낮게 잡아도 30대 중후반, 아마도 30대 후반일 텐데, 이 회사는
30대 후반이라는 생물학적 나이를 특별한 감점의 요인으로 잡지 않고 있다. 올해 집계된 전국 단위 남성 초혼 연
령의 평균이 32.4세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수입이나 지위가 확보되었을 때 나이는 유의미한 변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졸업 후 석사와 박사 학위의 과정을 수료하는 데에만 4년이 든다. 논문
준비와 심사 통과 과정은 개인별로, 그리고 학과별로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면 유학
경력이 있는지도 감안해야 할텐데, 이 경우 언어 습득과 현지 정착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리저
리 계산해봐도 30대 초중반 아래로 내려오기는 어렵다. 올해 전국 단위 여성 초혼 연령은 30.2세이다.
신장과 체중을 보자. '만점 남성'의 신체 수치는 180cm에 72kg이다. 2012년 국가 통계 포털 자료에 의하면, 30
대 중후반으로 가정할 경우 한국인 남성의 평균 수치는 약 172cm에 72kg 정도가 된다. '만점 남성'은 평균에 비
해 몸무게는 그대로, 키만 8cm 정도 더 큰 셈이다. 여기에는 아마 운동 등을 통한 자기 관리가 포함되어 있을 것
이다. '만점 여성'의 경우 166cm에 48kg인데, 30대 초중반으로 가정할 경우 같은 자료에서의 평균 수치는 160
cm, 56kg 정도이다. 여성의 경우 키는 평균보다 6cm 가량 커야 하고 몸무게는 8kg이나 적어야 하는 것으로 보
아 외모에 요구되는 평가 기준이 보다 엄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 재산을 보면, '만점 남성'은 10억에서 14억, '만점 여성'은 1억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하며 이자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계산을 해 보면, 한 해 2억을 버는 '만점 남성'은 5년에서
7년간 저축을 해야 하는데 비해 '만점 여성'의 경우에는 채 2년도 되지 않아 만점 기준에 가까운 금액을 모을 수
있다. 연봉이 매해 상승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2억을 받았을 리 없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실제 저축 기간의 격차
는 훨씬 더 클 것이다. 격차가 아주 크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 쪽에는 가혹한 기준이, 다른 한 쪽에
는 관대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점 여성'의 경우에는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거니와 현재 자산 또한
'만점 남성'의 1/10 이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여성의 경우 직업 선택과 자산 운용에 있
어 경제적 능력 외에 다른 덕목들이 요구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교수'라는 특정 직업을 통해 당장 생각할 수 있
는 것은 안정성과 사회적 명예 등이지만, 이는 단순한 연상의 차원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자.
양가 부모의 학력과 직업을 기재한 것은 이 도표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외국인들 가운데에는 배우자의 조
건을 평가하는 데 있어 왜 이런 기준이 들어가 있는지 의아해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외국인
들은 배우자의 조건을 수치화하고 그 정보를 파는 것 자체도 의아해할지 모른다.)
직업부터 살펴보면, '만점 남성'의 경우에는 부친이 사업, 모친은 약사이고, '만점 여성'의 경우 부친은 교수, 모
친은 교사이다. 결혼하는 당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성 쪽은 주로 돈을 버는 직업, 여성 쪽은 안정성과 사회적
명예가 있는 직업 쪽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학력의 경우, '만점 남성'쪽은 부친이 박사, 모친이 학사로 격차가 있는 반면, '만점 여성' 쪽은 부모 모두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여성의 부친이 석사 학위로 어떻게 교수가 되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세대에는 80
년대 대학 정원이 늘어나면서 석사만 받고도 바로 교수가 되는 일들이 있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남성의 부친
이 직업은 사업이면서 학위는 박사를 취득했다는 점이다. 특정 학과이며 본인이 근면성실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만 시대적 맥락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떠오른다.
부모와 관련된 지표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경제력, 그러니까 가진 돈이다. 개인사업과 약사를 한 집안, 교수
와 교사를 한 집안의 보유 금액이 동일하게 20억에서 50억이다. 전국에 200명 정도밖에 없는 만점 배우자라 하
니 사업을 한 아버지가 20억에서 50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수와 교사를 하
고 있는 부모님이 동일한 금액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번에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 경우도 부친이 교수 직
을 맡고 있는 과가 산학 연구가 활발한 특정 과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런 과라 해도 월급과
연구비만으로 저만한 금액을 모으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울러, 금액을 특정하지 않고 20억에서 50억
사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우리는 이것이 특정 인물의 개인 정보를 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만점 배우자'의 기
준을 제시하기 위한 가상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는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종교의 경우, '만점 남성'은 무교, '만점 여성'은 기독교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의아해했다. 비록 한정된 것
이기는 하지만, 내 경험과 상식에 의하면 배우자 간의 종교는 없을 거면 같이 없거나, 있다면 같은 종교인 쪽이
좋다. 한 쪽이 있고 한 쪽이 없다면 작든 크든 불화의 한 원인이 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며, 특
히 기독교인은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에서 같은 기독교일 것임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기준에 의하면 종교의 유무와 서로 다른 신앙을 갖는 것 등은 감점의 대상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내
가 편향된 기준을 갖고 있다거나, 혹은 이 회사의 정보가 상대적으로 기독교에 우호적이라거나 하는 등의 가설
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혈액형은 남성 쪽이 B형, 여성 쪽이 AB형인데, 단지 신상 정보라 적었을 뿐 이것이 감점이나 가점의 요인이 되었
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무척 실망할 것 같다.
둘 다 궁합을 안 보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음흉하게 생각해 보자면, 결혼정보회사로
서는 짝짓기를 시킬 때 궁합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고객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 의도적으로 이런 걸 안 보는
것이 좋은 배우자감이라는 인식을 흘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혐의를 둘 수도 있다.
음주와 흡연은 둘 다 하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으니 안 하는 쪽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
지만, 병원의든 개업의든 연봉 2억을 버는 의사가 음주를 안 할 수 있을까.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많은 현실적
고난이 있을 것이다.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을 전혀 숨기지 않은 지금까지에 비해, 취미와 이성상에 이르러서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같은 유치함이 엿보여 다소간 실소가 나온다. '만점 남성'의 취미는 무려 글쓰기와 야구이다. 지성과 체력을 겸
비해야 만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택한 사례로 보인다.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취미에서 헬스나 탁구, 골프 등을
고를 수도 있는데 굳이 야구를 택한 것은 사회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만점 여성'의
취미는 사진촬영과 요가로, 문화생활과 몸매 관리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성의 취미와 대비되
는 것은 둘 다 주로 혼자 하게 되는 활동이며 보다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어 등장하는 이성상이야말로, 계량화와 수치화될 수 없는, 따라서 주관적인, 그러니까 이 회사가 강조하고 싶
고, 또 한국사회의 일면이 반영된, 유의미한 언급일 것이다. '만점 남성'이 꿈꾸는 이성상, 그러니까 이런 남성을
만나고 싶은 여성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형제가 있고 부지런하며 학구적인 여성'이다. 여성의 형제를 통해 사
회적 관계망을 확장하거나 경제적 이득을 추구할 리는 없을 테니, '형제가 있을 것'이라는 조건은 형제가 있음으
로 해서 취득할 수 있는 인격적 덕목을 전제하는 것일 테다. 아울러 '부지런'한 생활 습관과 '학구적'으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해 말하자면 집안 일과 가족사를 살뜰히 챙기면서 전문 분야에 속하는 자기 일
또한 충실히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만점 여성'이 원하는 남성은 '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맞벌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남성'이다. 이 문장은 쉼
표가 쓰이지 않아서 무엇이 무엇을 수식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 직관적으로 해석되는 바는 '미국에서
의 해외 거주 경험이 5년 이상 있으며, 맞벌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남성이다. '맞벌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남
성'은 비교적 독해가 쉽다. 맞벌이를 한다는 것은 부인 또한 수입을 갖는다는 것이니, 이 때의 '지원'은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심정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는 것은 돈이 되었든 의미가 되었든 여성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일정한 소명 의식과 만족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읽어 보자면. 맞벌이를
지원해 주길 바란다는 주장에는 상대방이 맞벌이를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주택
구입과 출산 및 양육 등, 결혼과 함께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필수 비용이 있으므로, 충분한 돈이 없는 남성에게
맞벌이는 지원해 주거나 찬성해 줄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찬성해 줬으면 좋겠다, 라
는 데에는 상대방이 찬성하거나 반대할 만한 조건이 되는 사람, 즉 맞벌이를 찬성하지 않더라도 결혼 생활에 소
요되는 비용을 홀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일 것, 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읽어내기 영 어려운 것은 '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남성'이라는 조건이다.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것이 왜 중
요한지, 5년이라는 특정한 시간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또 여러 나라 중에 왜 하필 미국인지 등의 의문이 차례차
례로 떠오르는데, 하나하나에 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답을 유기적으로 묶는 일관된 인식은 찾기가 어렵다. 미
국어를 잘 하면 멋있겠다는 것일까? 한국에서 거주하되 국적은 미국이면 좋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풍부한 문화
경험을 요구하는 것일까? 회사의 메시지 전달 실패인지, 내가 미숙한 탓인지, 아무튼 이건 주위에 좀 더 물어봐
야 하겠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한 해 2억을 버는 의사인데 퇴근하면 책 읽고 글을 쓰고
주말에는 사회인 야구를 즐기며, 병원 회식이나 야구 시합 뒷풀이에서도 술은 마시지 않는, 그러나 인상이 좋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모두 좋아하는 형. 서른너댓 쯤 되었는데 직업은 교수, 힐 신으면 170이 훌쩍 넘는데 몸무게
는 48kg, 아로마 피워 놓은 연습실에서 퍼스널 트레이너에게 요가 수업을 받고 주말이면 삼청동이나 경리단길
을 찾아 사진 찍고 블로깅 하는 누나. 자기가 외계와 교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전국에 천 명은 넘을
터이니 위와 같은 희귀한 조건을 가진 사람도 200명 정도는 있을 법 하지만. 나는 결혼은 둘째 치고 그런 사람
들하고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것도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나하고 친해지고 싶어 할 이유
도 없긴 하지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