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대머리 여가수>를 관람하고 와 어제의 일기를 쓰고, 10년 전 내가 이 연극을 하던 때 연출이셨던 경호 형
에게 예전 생각이 난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메일에 세 장의 사진을 첨부해 답장을 주셨다. 공연 중에는 촬영을 자제해
주길 부탁했고, 사실 그 때엔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사진이 남아 있는
지 궁금하지만 아무튼 크게 기뻤다. 위 사진은 소방대장의 등장 장면으로, 벨이 울리면 사람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스미스 부인과 마틴 부인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절하는 마틴 씨의 내면 연
기가 빛난다.
본명은 셜록 홈즈인 하녀 메어리의 주제넘은 등장. 마틴 부부와 스미스 부부가 마뜩찮아하는 가운데 소방대장은 그의
'첫 불을 꺼 준' 여자를 다시 만나 환희에 휩싸인다. 대학로 연극에서처럼 서로 부비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소방대장과
메어리의 본격 포옹 씬이 한동안 국문 1반 구성원 간에 논란으로 남았던 장면. 그러고 보면 이 연극에는 대본에는 없
었던 접촉이 꽤 많았던 것도 같다. 이 자리를 빌어 연출님께 감사드린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단체 사진. 이 사진에는 막내였던 내 동기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나 있는데, 이제는 모두 삼십
대가 됐다. 얼마 전 아이 아빠가 된 허수 군의 음울했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래 전의 사진을 우연히 볼 때처럼,
혹 긴 시간이 지난 뒤 사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을까 두려워 굳이 모두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적는다.
왼쪽부터, 마틴 역의 김진섭, 소방대장 역의 최대호, 연출 경호 형, 조명 허수, 무대보 류왕수, 스미스 역의 안재철, 스
미스 부인 역의 소영 누나, 조연출 준걸 형, 메어리 역의 윤정 누나, 기획 태용이 형, 마틴 부인 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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