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언젠가는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보고 나서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까 두려워 밀고 밀어 놓았던 어떤 다
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퇴직한 아저씨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해 나
가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세 명의 자녀 중 막내딸이 그 과정과 장례식을 모두 영상으로 담고 살아오며 촬영했
던 홈 비디오 등을 합쳐 편집한 것이다.
'손녀들과 놀아주기'나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같은 것은 극 영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소재였던 탓에 나
는 오히려 좀 담담하게 봤다. 정말 울컥했던 장면은 두 개 정도였는데, 그 중 하나는 주인공이 임종을 앞두고 숨
이 쌕쌕거리는 와중에도 큰아들을 붙잡고 장례식에 불러야 할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시 복기하는 장면이었다. 혹
시나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큰 결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주인공은 그 명단을 몹시 꼼꼼하게 챙겼
다. 큰아들이 집의 컴퓨터를 뒤져봤는데 초대자 명단의 화일을 찾을 수 없다고 하자, 주인공은 혹시 그럴까봐 백
업 파일을 만들어 두었다고 말했다. 그런 대화가 오고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당장 숨이 넘어가서 정말 중요
한 마지막 몇 글자만을 말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삶이란 저렇게 죽기 몇 분 전의 마지막까지도 치열하고 분분
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슬픔을 느꼈다.
마음을 움직였던 다른 하나는 중간중간 교차편집으로 들어가 있는 옛 영상들이었다. 영화가 시작하며 최초로 등
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피고 온 몸이 깡마른, 전형적인 모습의 말기 암 환자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고작 몇 년 전의 은퇴식 영상만 보아도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기름기 두둑한 회사 임원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암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야근과 잦은 회식을 거듭하던 일본 고도 성장기의 샐러리맨
이었으며, 계속 올라가면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기쁨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새신랑이기도 하였고 넘치는 혈
기를 주체 못해 친구들과 과정된 포즈로 사진을 찍던 대학생이기도 하였다. 영화는 두 시간도 안 되는 상영 시간
동안 오육십 년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머리
가 빠졌다가 세었다가 하는데도, 특징적인 이목구비에서는 모두 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묵직했던 것 같다. 정말이구나. 사람이라는 것이 태어나서는 어리다가 젊었다가 늙었다가 죽는구나,
하고.
무척 여운이 남아 영화가 끝나고도 나는 캄캄한 방 안에서 가만히 스탭 롤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보고 난 후
의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맞았구나, 하면서. 맞아줘서 고맙다, 하면서.
한편으로 들었던 잡감은. 이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고 주인공 할아버지는 69세에 별세하셨다 하니, 얼추 계산
해 보면 40년대를 전후해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 때에 태어난 사람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물론 20대 때의 결
혼식까지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격한 발전 도상에 있던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동년배의 한국인이라면 일단 그 나이 때에의 영상을 촬영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
라 혹 그런 물적 기반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굳이 돈을 들여 그런 모습들을 찍어 두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경향은 내 부모님 세대까지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주인공 할아버지가 기록을 남기는 것을 각별히 좋아했을 수도 있지 않나. 혹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할아버지들
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우리 엄마아빠는 나 어릴 때 비디오 많이 찍어 줬다. 등등의 질문과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좋다. 괜찮다. 나는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국가의 국민들이 덜 발전한 국가의 국민들에 비해 기술, 문
화적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개인적인 경
우에 비추어, 훗날의 나와 내 지인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기술적, 문화적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는데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그런 잡감을 떠올렸던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이 블로그가 내게 그런 환경이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을 적었을 뿐인데 처음 시작할 때로
부터 시간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고 기사는 곧 천 팔백 개가 된다. 오늘의 일상이 언젠가의 추억이 되는 것
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몇십 몇백 차례나 겪어왔던 일이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흔적을 남겨두면 더 강한 향의 추억이 되지 않겠나.
이런 사고를 거쳐 도출된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주기를 두고 가까운 지인들의 흑백 사진을 찍고 싶다, 지인들
과의 인터뷰를 기록해 두고 싶다, 는 생각은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었다. 주기는 일 년이어도 좋고 삼 년이어도
좋다. 나는 이미 이 일을 십 년이 넘게 해 왔으니 다음 주기가 오기 전에 블로그를 그만 두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지금 그의 모습. 지금 그에게 소중한 것. 지금 그에게 두려운 것. 등을 남겨두면 주
기가 거듭될 수록 점점 더 소중한 기록이 되어가지 않을까. 물론 이도저도 지금 꼭 해야 할 일 다 하고 난 뒤에
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직전에 돌아보았을 때에 어느 쪽이 꼭 해야 할 일이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당장 시작해 보고자 하여도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질문의 포맷을 선정하는 것에는 정성을 들여야 할 터이니 오
늘은 그저 신발끈을 묶는 정도 만으로 일단 마무리 짓는다. 맨 위의 사진은 아마도 이 프로젝트가 시작하면 아주
초기의 대담객으로 등장하게 될 사촌형 윤도환 씨. 가장 최근에 만났던 인물이라 뜬금없이 초상권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