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주변은 비가 많이 온 날의 늦은 오후처럼 어슴프레하고 안개가 많았다. 계단은 세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날 만한
넓이에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발디딜 곳이 좁아 다음 발 놓을 곳을 보며 걸어야 했다. 시야의 위로는 온통 계단
이었고 뒤는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밑만 보는 눈길 옆으로 얼핏얼핏 숲이 비쳤다. 똑바로 쳐다보지 않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은 분명했다.
똑같은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척척 따라오더니 이내 나와 걸음을 맞추었다. 그
인지 그녀인지가 내 어깨를 툭툭 쳐 고개를 돌려 보니,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떼어 자신의 얼굴에 붙이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떼어 내 얼굴에 붙였다. 그리고는 속도를 내어
척척 올라가 버렸다. 발디딜 곳을 보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파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밑
을 보며 걸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가 다시 밑에서 올라왔고, 다시 어깨를 치고, 다시 누구인지 알아보
기도 전에 내 새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바꿔 붙인 뒤 올라가 버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수
많은 사람이 똑같이 그렇게 나를 지나서 갔다.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새 얼굴의 주위로 피를 뚝뚝 흘리며 걷다
가, 어느 새인가 이것이 꿈이고 내가 잠시 후면 깨어날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 마지막 사람이 올
라오더니, 내 어깨를 잡아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게 했다. 그것은 울고 있는 내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얼굴을 떼어 내 손에 쥐어주고 내 얼굴을 떼어 가지고 올라갔다. 얼굴없는 내가 손을 바라보니 내 얼
굴은 손바닥 위에서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깨어보니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목 안이 아팠다. 2월 12일
밤에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