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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3

숙원

 

 

 

 

나는 육 년 간의 유배에서 풀려나 마침내 두발의 자유가 다시 주어졌던 이십 대의 초반에, 여러가지 전위적인 시

 

도들을 한 바 있었다.  

 

 

 

 

 

 

 

 

 

이것이 스물한 살인 2001년.

 

 

 

 

 

 

 

 

 

 

이것이 스물두 살인 2002년.

 

 

 

 

 

 

 

 

 

 

그리고 이것이 스물세 살인 2003년의 모습이다.

 

 

 

 

머리의 모양을 바꾸며 즐거워 하는 것은 끝이 없을 줄 알았는데, 3년 정도면 충분했던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중

 

고교 시절 머리를 기르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반항심에 불과했던 것인지, 이후로는 머리를 어떻게 해 보고 싶다

 

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이 다음 해인 2004년부터 2006까지 군대에 다녀온 뒤로는 더 그렇게 됐다. 그

 

뒤로는 기껏해야 귀찮아서 안 자른 탓에 길이가 조금 길어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른 탓에 모양이 조금 우습거

 

나 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것이 마지막 연극 연출에 바빠 머리를 자르지 못했던 스물일곱의 2007년.

 

 

 

 

 

 

 

 

 

 

이것이 궁핍한 생활 탓에 스스로 머리를 자르던 스물아홉의 2009년.

 

 

 

 

 

 

 

 

 

 

그리고 서른이 넘은 뒤로는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일이 거의 없었다. 관리도 편하고, 다소나마 어려 보이기도 하

 

고, 주변에서 깔끔하다는 평을 받거나 적어도 악평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의 두 사람은 위의 2002년 사진

 

에도 함께 있었친구들인데, 그들 또한 출근 정장에 맞춤한 단정 머리의 삼십대 아저씨들이 됐다.

 

 

 

 

결국 머리의 모양새한 바퀴 빙 돌아 중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은퇴 후 베토벤 머리를 해볼까 말까

 

하는 사소한 바람이 언뜻 있기는 하지만, 가족력이자 직업병인 탈모증이 언제 내게도 마수를 뻗쳐올지 알 수 없

 

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다. 말하자면, 여한이 남지 않았다.

 

 

 

 

운수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남들만큼만 산다 치면 아직 생의 반도 지나지 않은 때에 하나의 욕망

 

에서 자유롭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고 싶은 것은 어렸을 때 얼른얼

 

른 해 봐야 나중에 큰 일이 안 난다는 평소의 지론이 여기에도 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때 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십대부터 지금까지, 수 차례 시도하

 

였음에도 끝내 시원하게 마음을 풀어주지 않았던 것은 바로 수염이다.

 

 

 

 

나는 눈썹 아래에서부터 배꼽 위까지는 털이 잘 나지 않는다. 손등을 부숭부숭 덮은 원초적 모습이나 가슴팍에

 

긴 한 가닥만이 솟아있는 우스운 모습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긴 하지만, 그래도 수염이 잘 안 나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관우나 한홍구 선생님 같은 수염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외양이 좀 달라져서 신기한 기분이

 

드는 정도로만 자라주었더라도 이 쓸데없는 집착은 십여년 전 쯤 이미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작심하고 며칠 면도를 안 해 보면, 다른 곳에는 솜털 정도만이 생길까 말까 할 정도이고, 입술의 양 끝 언저리에

 

각각 세가닥 정도만이 빼꼼 나와 그대로 쑥쑥 자라난다. 고양이 수염이라고 생각하면 연상이 빠르겠지만, 실상

 

은 말 그대로의 이방 수염에 가깝다. 주변의 야유와 희롱을 감수하고라도 좀 더 기다려볼까 하는 용기는, 거울

 

속의 이방을 보면서는 차마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2006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그나마 좀 자유로웠던 두 달쯤의 인도여행에서, 나는 그때까지의 생애 중

 

가장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고 지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콧수염은 거기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의

 

격심한 조롱과 멸시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며칠만에 잘라내었고, 입술 아래와 턱의 수염만을 조심조심 길러 보

 

았는데,

 

 

 

 

 

 

 

 

 

 

결과는 이 모양. 이것이 여행 7주차의 사진이다. 한달 반이 넘게 길러도 저 모양이니, 콧수염을 일찍 자른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같이 길렀더라면 더욱 참혹한 지경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콧수염을 놀렸던 일본 친구 1. 

 

 

  

 

 

 

 

 

 

 

콧수염과 턱수염을 아울러 놀렸던 일본 친구 2.

 

 

 

 

특히 친구 2는 수염에 관한 나의 로망을 듣고 난 뒤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 자식, 안 되는 건 바라지

 

!'라고 요청하지 않은 충고를 건네 주었다. 나는 게스트 하우스의 옥상에서 매일밤 열리던 다국적 술잔치에서,

 

킹피셔 맥주를 감사와 보은의 마음으로 삼고 앱솔루트 보드카를 질시와 분노의 마음으로 삼아, 폭탄주를 먹어본

 

적 없다는 이 친구의 입에 함께 부어주곤 했다. 수염 많아 좋겠다 이 자식,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것도 어느덧

 

칠 년 전의 일이다.  

 

 

 

 

 

 

 

 

 

 

 

 

 

 

다시 찾아온 한파에 연구실에서 밤샐 엄두가 나지 않아, 며칠동안 꼼짝 않고 방안에서만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

 

이 미쳐 면도를 멈춰 보았다. 보름을 길러 봐도, 화장실의 거울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군고구마를 먹다가

 

검댕이 약간 묻은 정도로밖에 안 보이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찍어 예전의 모습과 비교해 보니 확실히 조금 더 많

 

이 자라게는 된 것 같다. 다만 명절이 코앞이라, 돈을 못 벌어도 장가를 늦게 가도 별다른 타박을 안 하시지만 지

 

저분한 꼴에는 질색팔색하시는 고향 집 부모님께 가기 위해 이번의 시도도 결국 여기까지. 그래도 사십대의 어

 

디쯤이라면 아마 이 오래된 숙원도 풀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매일같이 옛 글을 읽고 빨간 줄치고 관련 논문 찾아다 각주 달고 앉아 있는 것이 전부이다 보

 

니, 일기에 쓸 것이 없다. 간혹 소소한 사건이나 생각이 생겨나도 키보드 치기가 지겨워 일기장을 절간처럼 비워

 

던 차에, 논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책의 저자가 예순여섯이 되어 자신의 이빨이 언제 나고 언제 흔들리고 언

 

제 빠졌는지를 손꼽아보며 인생을 회상하는 글을 읽었다. 마침 근래 빈번하게 마음을 스치던 수염 생각이 떠올

 

라 옛 사진과 함께 엮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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