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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신기철, <국민은 적이 아니다> (헤르츠나인. 2014, 4.)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신기철 씨의 신작. 부제는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아직도 사회 전반에 선연한 상흔을 남기고 있는 6.25이지만 이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휴전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나는 6.25니까 6월 25일 하루동안 일어난 전쟁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학생도 보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강의 중 전쟁 초기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부의 행동이나 전쟁의 전황 등을 설명하면 난생 처음 듣는 내용에 경악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최근의 수 년간 진보적 역사학자들과 언론의 활약에 힘입어 전쟁의 비극 중에서도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차차 더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이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대통령소속 기관에서 주요 자료들을 직접 접하였던 저자가 '한국전쟁 중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구체적 주제를 정하여 집필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한강철교 폭파 사건, 노근리 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과 같이 그간 대중들에게 편린적으로 소개되었던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고 의혹으로 남아있던 질문들을 차례차례 해결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사건들 배후에 일정한 맥락이 존재하였음이 밝혀진다. 그 '맥락'에 저자가 보내는 일갈이 바로 책의 제목이다. 국민은 적이 아니다.

 

책의 본문은 총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말'의 16페이지부터 20페이지까지 그 충실한 요약이 실려있다. 여기에서는 요약의 전문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는 첫 문장만을 따다 인용하기로 한다.

 

 

- 제 1장은 이승만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쟁 초기부터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기까지를 규정하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 제 2장은 한강인도교 폭파와 한강철교 폭파 실패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국군의 전략과 민간 피난민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 제 3장은 김포지구전투사령관의 탈영 사건을 계기로 7월 3일 한강 방어선의 붕괴를 초래한 전쟁 초기 김포 지역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 제 4장은 7월 5일 스미스 부대의 오산전투 패배를 중심으로 미 지상군의 한국전쟁 전략을 살펴보았다.

 

- 제 5장은 소총과 탄약이 없어서 전투를 치르지 못했다는 국군이 자기 국민을 학살한 여력은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 제 6장은 충남 서해안 지역과 호남 지역에서 발생한 국민보도연맹사건의 특징을 통해 한국전쟁의 정치적 본질을 살펴보았다.

 

- 제 7장은 최근 각종 회고록에서 소개되고 있는 국방부 장관 음모설이 얼마 전까지 주장되던 전쟁유도설과 같은 근거를 하고 있음을 검토했다.

 

- 제 8장은 국군 17연대가 마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것처럼 주장하는 한국전쟁사의 서술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 제 9장은 인민군 후퇴 시기이자 국군 수복 직전에 벌어졌던 '적대세력사건'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 제 10장은 폭격 미군과 토벌 국군이 갖고 있던 피난민 정책을 살펴보았다.

 

- 제 11장은 1950년 10월 국군의 수복과 동시에 발생한 '부역혐의학살사건'과 재판에 의한 부역자 처리 과정을 검토했다.

 

- 제 12장은 헌법위원회가 대법원의 판단 없이 1심만으로 심판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선언한 사실을 살펴보았다.

 

 

간단한 요약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잘 드러난다. 국군과 미군, 즉 '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국지적-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전황에서 자국민의 보호가 우선 순위에 있기는커녕 매우 뒤쪽에 있거나 때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국가'의 말을 믿고 지시 사항을 그대로 이행하였던 국민들이 가장 먼저 소탕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책의 머릿말에서 2011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 한국전쟁의 초기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고 썼다. 해당 부처의 조사 결과는 앞뒤가 맞지 않았고 그 모순을 지적하는 발언은 사상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다른 곳에 원인을 돌리고 정작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들은 무사하거나 도리어 영전하였다. 이 머릿말은 2014년 2월에 쓰여졌고 책은 4월 20일에 출간됐다. 출간 4일 전, 우리는 작가가 지적한 '한국전쟁의 초기 과정' 같은 모습이 천안함 사건보다 더 선연하게 드러나는 참사를 겪었다. 세월호 사건이다.

 

그래서 그 뒤로 이루어진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머릿말에서 직접 언급한 천안함 사건보다 세월호 사건이 더 많이 언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댓글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대응은 극으로 나뉜다. 60년이 지나도록 반복되고 있는 '지도층'의 행태에 실망하는 목소리,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준 데에 대한 감사의 목소리 등이 있는가 하면 위태로운 시기에 국론을 어지럽힌다는 질타의 목소리도 있다.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지금, 나는 이 책과 세월호 참사를 얽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다. 단, 얼마 전 있었던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자 국회 과반수에 달했던 집권 여당 소속이면서 '도와주세요'라고 머리를 숙여가며 1인 선거운동을 했던 한 국회의원이, 선거가 끝나고 한 달 뒤 시작한 세월호 국정조사에서는 유가족을 향해 '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으라'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을 보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란 정말정말로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독후감을 쓰기로 마음먹은 오늘, 정말 거짓말처럼, 대호야, 이래서 역사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란다, 라고 가르쳐 주는 듯한 기사 한 편을 읽었다. 남편은 보도연맹 사건에 끌려가서 죽고, 아들은 월남전에서 몸을 버렸고, 그리고 당신은 밀양에서 경찰과 맞서다 인대가 끊어졌다는, 여든여섯 김말해 할머니의 인터뷰이다. 이 국가가 적으로 만들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다음에 주소를 덧붙여둔다.

 

 

http://www.hani.co.kr/arti/SERIES/503/645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