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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유리창. 2014, 7.)

 

 

 

 

'파토' 원종우의 2014년 신작. 이 책은 전작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의 개정증보판이며 전작은 그가 필진으로 몸담고 있는 인터넷 언론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을 모은 작품이다.

 

한 줄 평부터. 단지 그 상상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아주 다양한 독자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학생과학>의 고대문명 기사나 만화 <세계의 미스터리 조사반>, 혹은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을 달뜬 얼굴로 읽은 적 있는 이라면. 유로파, 세레스, SATI, 나스카, 대홍수, 기자 피라미드군, 인면암 등의 단어들을 들며 숨이 가빠지는 이라면. 아직도 이 책을 안 읽고 무엇하고 있느냐고 등짝이라도 갈겨주고 싶다. 강의의 자료로 쓰기 위해서 등의 특정한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한 권의 책을 두세 번씩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중에도 나는 전작과 이 책을 합쳐 대여섯 번 정도를 읽었다. 전작을 다시 읽은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개정증보판이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구매 신청을 하여 또 읽었다.

 

이 책에서 글의 재료로 삼는 것들은 대체로 '미스터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미스터리라 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귀신과 같이 그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종류의 것들이 있을테고, 현상 자체는 물리적으로찰 및 측량이 가능하지만 그 작동 원리나 형성 과정이 미스테리인 종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재는 대부분 후자의 것들이다. 왜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세계 각지의 피라미드군이 약 1만년 전의 별자리 모을 따 건설된 것은 바로 지금 이 시간도 현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분명한 '현상'이다. 지구보다 작은 화성에 태계 최대의 화산이 있고 그 반대편의 지각에는 거대한 충돌의 흔적이 있는 것 또한 과학적 사실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일까지를 했는지는 호사가마다 말이 다르지만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있고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인들이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 또한 증빙 가능한 기록이 남아 있다.

 

잘 알려진 대부분의 '미스터리 탐구서'들은 위에서 호명되었던 소재들 중 하나를 주제로 잡고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추가로 수집하며 그 정체를 밝혀나가는 데 주안점을 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신의 지문>과 같은 소수의 작품들을 제하고는, 파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증거량과 설득력 때문에 애초의 건강한 호기심까지 도매금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영리하게 피해가는 전략을 취했다. 더이상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더 증명하지 않는다. 그 이상은 상상과 추정으로 넘기되, 상상과 추정의 한계는 개연성이 허락하는 최대 지점까지로 설정한다. 말하자면, 아주 재미있고 진짜 같은 '뻥'을 쳐보겠다는 것이다. 말하는 나도 뻥인 줄 알고 하는 것이니 당신도 '진지 빨지' 말아라.

 

그리고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전략. 하나의 소재에 관련된 뻥을 재미있게 즐기는 와중, 작가는 갑작스레 다른 소재를 들고 온다. 이를테면 화성과 달에 관련된 뻥을 치다가 갑작스레 피라미드에 관련된 뻥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뻥이 흥미진진해질 때쯤엔 모세와 성궤에 관한 뻥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 뻥들이 기막히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작가부터가 뻥이라고 했으니 뻥인 줄은 뻔히 알지만, 저쯤 연결되면 뭐가 있긴 있지 않을까, 라는 흥분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과학적 호기심'을 인정받아, 말하자면 한 편의 무협지나 공상과학소설에 가까운 이 책으로 작가는 유수한 학회와 공중파 방송프로그램, 그리고 공기관에서까지 강연을 하기에 이른다. 그 정도의 뻥이다.

 

뭐,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음모론 쯤 되겠지 하고 생각할 사람을 위해 아주 간단한 요약만 남기고 끝내겠다.

 

고대의 태양계에서는 화성과, 지금의 소행성대에 위치하고 있었던 행성 Z 사이의 알력이 있었다. 두 행성은 각기 상대방 행성의 인근에 전진 기지를 마련해 두었는데, 행성 Z의 전진기지는 지구의 위성인 달이었고 화성의 전진기지는 행성 Z의 위성인 이아페투스였다. 그러던 어느날 벌어진 대규모의 전쟁으로 행성 Z는 폭파되어 소행성대의 잔재로 남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아페투스는 태양계 바깥 쪽으로 튕겨져 나가다가 목성의 강력한 인력에 이끌려 목성의 위성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한편 화성은 행성이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태양계 최대의 화산이 생길만한 충격으로 생명이 없는 땅으로 변하게 된다. 지구 또한 이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전세계 문명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고대의 대홍수 신화는 이때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모행성이 사라졌어도 화성인과 행성 Z인은 소수로 살아남아 각기 지구의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대홍수 직후의 급작스런 문명 부흥은 이들의 도움에 힘입은 것이다. 특히 이집트 문명에서 호전적인 화성인들의 직계 전수를 받은 지도자가 등장하니 이가 곧 모세요, 그에 맞서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행성 Z인들의 대리인으로 간택된 이가 바로 OO이다. 지구에 좀 더 빨리 정착하여 힘을 넓혀갔던 화성적 세계관에 대항해, 행성 Z인들은 프리메이슨의 형태로 근대를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내가 쓴 책도 아닌데 특정 종교의 강렬한 반발을 받을까 두려워 OO으로 표기한 마지막 부분 말고는, 나는 이 책의 큰 얼개를 되도록 그대로 요약해두었다. 내용을 다 알았다고 콧방귀 내뿜으며 돌아서지 마시라. 이 허황한 얼개가 얼마나 개연성 있고 논리적인 뻥으로 살아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의 백미이다. 이렇게 즐거울거면 좀 속은들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