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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메디치. 2014, 2.)

 

 

 

 

화제의 책이어서인지 출간된지 넉 달이 지난 뒤에야 대출 순서가 돌아왔다. 기다리던 책이라 예약도착 문자가 오자마다 도서관을 찾아 대출을 하였다.

 

글쓰기 책이 유행이라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출판사들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트렌드인 것 같고, 이 책이 특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저자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책날개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인 강원국은 국민의 정부에서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참여정부에서는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한 바 있다. 대통령의 연설은 공적인 말하기 가운데에서도 고도로 함축적이며 전략적인 성질을 갖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 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해방 후 정치사에서 연설을 잘했던 것으로 손꼽히는 이들이었다. 그런 두 대통령의 대통령 연설문을 집필했던 저자, 그 저자가 직접 밝히는 대통령 연설문의 전략. 흥미가 동하는, 좋은 기획이었다.

 

책은 총 40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열 편 정도의 일종의 비화가 끼어들어간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 개의 꼭지는 4-10쪽 가량이고, 그 내용 중의 인상적인 워딩을 뽑아낸 한 줄짜리 제목과, 내용과 관련된 글쓰기 전략을 소개하는 부제가 달려있다.

 

총평부터 하자. 이 책은 어느날 갑자기 상사의 연설문을 쓰게 되어 막막한 회사원이나 우리 애도 이런 책을 읽히면 하다못해 비례대표 뱃지라도 하나 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학부모들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설명과 예제 식으로 이루어진 전형적 형태의 글쓰기 책이 아니라 두 명의 대통령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주로 소개하고 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글쓰기의 일반적 원칙 정도를 짧게 소개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으므로, 글쓰기와 관련해 어떠한 실질적 도움을 받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본문을 통해 가장 선연하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두 명의 대통령이 연설을 잘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감상, 그리고 두 대통령,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이다.

 

첫 번째 메시지는 주로 특정 장면의 묘사를 통해 전달된다. 저자가 쓴 연설문을 몇 차례고 수정하여 돌려보내는 깐깐한 모습, 수정에서 드러나는 자신만관된 글쓰기-말하기 원칙, 그리고 확정된 연설문을 수 차례 연습하는 성실함 등의 장면이 그 사례이다.

 

전반을 걸쳐 종종 등장하는 두번째 메시지, 즉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는 글쓰기와 큰 관련이 없어보이는 맥락에서까지도 나오는 경향이 있어 '글쓰기' 책으로서의 유기성을 해치기도 한다. 따라서 온전하게 글쓰기 교재를 읽고 싶었던 독자나 혹은 두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혹평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수 차례 고백한 것과 같이 나는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지만 정치인 노무현과 자연인 노무현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어 아무러나 즐겁게 읽었다. 또 전편에 걸쳐 구조적인 것은 아니지만 특정 부분에서는 대통령들의 발언을 빌려 연설문 글쓰기의 구체적 원칙들을 잘 정리해 둔 목록도 있어 좋은 참고가 되기도 했다. 남에게 선뜻 권하긴 어렵지만 나로서는 책장에 꽂아두고 이따금 즐겁게 꺼내읽을 책인 셈이다. 이왕에 편파적으로 흘러버린 독후감, 책을 읽다 웃음이 나왔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짧게 마무리지을까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직원들에게도 금주하기를 권했다. 특히 담배 냄새 나는 장관이나 수석들은 자기 관리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물론 직접 표현은 안 했지만, 킁킁 냄새를 맡는 시늉으로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그래서 흡연자가 대통령을 뵈러갈 때는 양치질은 물론 가글까지 하는 게 필수였다. 하물며 술 냄새야.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개방적이었다. 심지어 인수위원회 직전까지만 해도 당선자와 같이 담배 피우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임기 초,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람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통령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러면서 동석한 연하의 그 사람에게 그런다.

 

"이제는 같이 담배 피우는 것 안 됩니다. 내가 대통령이니까."

 

우스갯소리를 한 후, 그래도 미안한지 한 마디 덧붙인다.

 

"너무 야박하지? 한 대만 피우게."

(p13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