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건널목에서, 덜덜 떨며 안내봉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얼마 전 읽었던 기사 중 일부가 떠올랐다.
학교 중에는 학부모들에게 급식과 교통정리를 의무로 시키는 곳이 있는데, 이것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거니
와, 심지어 학교에 부과되어 있는 의무사항인데도 학부모들을 무급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맞벌이인
어머니의 경우엔 눈치를 봐가며 휴가를 내서 참가하는데, 평소에 자주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일정 금액을
내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곳도 있다고 했다.
사진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긴 건널목이라, 신호등의 주기 차가 길었다. 빨간 불이 들어오길
기다려 어머니회세요, 하고 말을 붙여 보았다. 아주머니는 움찔하면서 쳐다 보더니 왜요, 라고 답했다. 아니, 학
교에서 이런 걸 어머니들한테 강제로 시키는 일이 있다고 하길래, 마침 뵙게 된 차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 눈빛으로 아니예요, 저희는 구청에서 나와요, 라고 말했다. 영 틀린 짐작
이었던 셈이다.
원래의 의도는 어그러졌지만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꽤 오래 계속되었다. 구청 분이시면 일용직이냐, 근무 시간
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추운 날에는 좀 일찍 끝내 주느냐 등을 묻자 춥고 심심했을 아주머니는 차츰 편한 얼
굴이 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 주었다. 따로 적어둘만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다음 신호
가 들어올 때까지 나와 아주머니는 꽤 재미있게 대화를 했다.
돌아서서 걷다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주 오랜만의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낯선 사람과의 대
화를 아주 좋아했었다. 버스를 한참 기다리는데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으면 뽑기라도 뽑아서 근처의 애들한테 나
눠 주고 말을 붙이기도 하고, 커피숍에서 상대방이 안 오면 사장님을 붙잡고 인테리어 특징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둘이서 한참을 같이 있게 되는 택시 기사님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의 경계심을 풀고 나면, 대체로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자신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에
게 말하는 것은 아주 좋아했다. 그 덕에 나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이 일기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시간에 재미가 있었다.
왜 그런 취미가 없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엔가, 타인을 지인으로 만들고 같이 노는 재미보다 나도
거기로 안 들어가고 상대방도 이리로 안 들어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이겠지 뭐. 이런 게 잘 맞는
사람이 있겠고 이렇게 해야 하는 직업이 있겠지만, 나는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은데. 이 마음의 원인과 해결책
은 잘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개똥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