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 장소는 을씨년스럽고 넓은 황야에 학교와 비슷한 건물이 여러
채 서 있는 곳이었다. 황야 밖으로 계속해서 달려 나가면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꿈 속에서는
오직 건물들만이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졌다.
한 건물에서 나가 다른 건물로 달리는 도중이라든지, 건물 내의 복도에서 꺾어질 때라든지 하는 순간마다 일행
중의 한 명씩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 한 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인지 모두 알 수 없
었지만, 아무튼 도망치지 않으면 나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주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될 것
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낮부터 시작해서 해가 다 지고 난 뒤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긴 시간 달렸지만 내내 공포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다가 마지막 건물의 마지막 층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와 다른 한 명만이 남
아 있었다. 마지막 층으로 뛰어 올라가면서는 복도의 반대편에 다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서 계속 도망갈 수 있
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복도 끝까지 가 보니 막다른 곳이었다. 돌아보니 어둑어둑한 복도 저 너머로 사라졌
던 일행들이 가만히 서 있었다. 모습은 비록 일행이었던 사람들이지만, 그 실체는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
던 어떤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는 멀고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희미했지만 그들이 온통 무채색으
로 변해버린 것이 똑똑히 보였다. 어떡하지, 하고 옆을 보니 그때까지 같이 달리고 있었는데도 그제서야 처음 얼
굴을 보게 된 다른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내 눈동
자를 깊이 쳐다보다가
"내 이름은 박창주야. 박창주."
라고 속삭이고는 복도 저 편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잠에서 깼다. 나는 살
면서 박창주라는 이름의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그 비슷한 이름을 들은 적조차 없다. 칠월 삼십일일 밤의 일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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