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이라고 불리우는 개조를 하지 않고도 아이폰에서 옛적의 도스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정식 어플이 있는데,
한동안 금지되어 있다가 근래에 다시 풀렸다는 뉴스를 읽었다.
대체로 뚜렷한 목적이나 엔딩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요새의 온라인 게임과 달리, 도스 시절의 '오프라인' 게임
은 정해진 스토리가 있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을 주곤 했다. 투박한 그래픽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
극해서, 게임에는 사실 있지도 않았던 총천연색의 장면이 십수 년이 지나도록 잔상처럼 남아있는 것도 많다.
휴대폰으로 그 게임들을 다시 해 볼 수 있게 된 세상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
는 한 작품이 문득 떠올라 이미지를 몇 장 검색해 보니, 주인공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치와 어느새 동갑이 되
어 있었다. 빚쟁이한테서 도망을 다니면서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아 '유쾌한 중년'이라고 기억하던 캐릭터였는
데, 막상 같은 나이에 이른 것을 알게 되고 보니 무례한 기억법에 사과해야 하게 생겼다.
키보드의 여러 키로 즐기던 것을 조그만 아이폰 화면을 눌러가며 플레이하자면 고충이 적지 않을 것 같고, 무엇
보다 읽고 싶은 책도 못 읽도록 시간도 없는 판이라 그저 추억만 하고 말 것이지마는, 그래도 덕분에 잠깐이나마
즐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은 공자의 말이다. 도의 자리에
게임 따위를 끼워넣으면 논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들은 길길이 성을 낼 것이지만, 나는 정말로 아침에 이런 게임
을 만들어 세상에 남길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