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고 온 비가 내려도 전자기기 가득한 방 안에 있으면 연신 땀이 난다. 학교 뒷산이 지척에 보이는 위치라 문만
열어두면 산바람이 내려온다. 산동네 사는 기쁨 만끽하면 좋겠지마는 가내에서는 대체로 정글소년 모구리처럼 벌거벗
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나는 오가는 다른 방 사람들에게 굳이 보일 모습은 아니라 생각해서 그저 창문만 열어
둔다. 바람보다 벌레가 더 많이 들어오는 꼴이라 마음의 위로만 될 뿐이다.
와중에 먼먼 나라로 떠난 지인에게 반가운 메일을 받았다. 평온한 안부와 함께 온 사진은 석별의 선물로 내가 건네었
던 대관람차. 오르골 기능이 있어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들을 수 있다고 하여 기꺼이 샀던 것인데 막상 택배로 받아보
니 레퀴엠 비슷한 클래식이 나왔다. 처연한 멜로디 탓에 먼 길 가는 이에게 주기에는 곤란했지만 출국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 일단 건넸던 것인데, 짐이 많다고 했던 그 이가 외국까지 직접 들고 가서 새 방의 어딘가에 놓고 사진을 찍
어 보내준 것이다. 지금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 이 방에, 내 가방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네는 손에 있었던 그 물건이
타국의 어딘가에서 내가 아끼는 이를 위해 적적한 멜로디나마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기뻤다. 대관람차 탄 아
이처럼, 높이높이 올라가서 재미있는 거 많이 보고 돌아오길 바란다. 아열대의 연희동에서 서른한 살 먹은 모구리가
불같은 응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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