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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6

강단에서

 

 

 

3월의 마지막에 쓰는 감상으로는 조금 때늦지만, 새 학기가 시작됐다. 내가 들어가는 방과후수업 강의는 3월 중순이 넘어서나 시작을 한다. 한 반에 4강씩 들어가서 열 반을 다 돌고 나면 한 학기가 끝난다.

 

같은 강의록을 들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실에 서 있는데도, 한 해는 과연 지나 이제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구나 하고 첫 번째로 실감이 나는 것은 인사이다. 한 학기나 한 해가 끝나가서 모든 반에 못해도 한 번 씩은 들어간 뒤로는 복도를 걸어가며 인사를 받거나 수업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느라고 정신이 없다. 개중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던, 그래서 눈에 익은 얼굴들도 종종 있어 수시로 반가운 마음도 든다. 그러던 것이 몇 달 간의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면 출석부를 들고 사복을 입은 아저씨가 지나가니까 자기도 모르게 엉겁결에 인사하는 몇몇 말고는 도로 소 닭 보듯 하는 풍경이다.

 

지난주 금요일과 이번 주 월요일. 올 해 처음으로 들어간 두 반의 네 번째 수업이 끝났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들어가는 한 반과 화요일과 금요일에 들어가는 한 반이다. 고작 4강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반에서는 1학기의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고, 또 내 수업은 속도가 빨라서 학생들이 놓친 부분도 있을 것 같아 10분에서 20분 가량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가졌다. 수업내용도 좋고, 진학상담도 좋고, 연애의 고민도 좋다, 무엇이든 물어 보아라.

 

일기장에 몇 차례 쓴 적이 있는데, 내가 맡은 수업의 이름은 한국현대문학이지만 나는 강의 중에 정작 문학작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당대 한국사회의 현실과 작가 개인의 특성 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 뒤 이런 배경지식을 갖고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길 권하며 끝맺곤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강의시간이 좀 더 주어지면 90년대까지의 시간을 10년씩 잘라서 한국근현대사 개괄을 강의하고 그 시대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작품 두어 개 정도를 소개하는 것이 대강의 커리큘럼이다.

 

이 4, 50년 동안의 한국사회를 두어가지 단어로 규정하라면, 나는 '경제적 발전'과 '국가의 폭력'이라고 답하겠다. 많은 수의 문인들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당대의 시장과 후대의 평론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문학적 위상을 갖는 작품들은 대체로 위의 현상에 대한 문제적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첫 4강에서 설명하는, 1940년대의 제주 4.3사건을 고발하는 현기영의 <순이삼촌>, 1950년대의 전쟁과 혁명을 먹고 태어난 이창동의 <소지>나 최인훈의 <광장> 등이 그렇다. 게다가 이 시기는 1960년대 이후에 비해 경제적 발전의 색채는 훨씬 옅고 국가 폭력의 규모는 훨씬 광범위해서, 관련된 내용을 처음으로 듣는 학생들은 수업 중에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거나 아주 드물게는 우는 이도 있다.

 

올 해 처음 들어간 두 반은 무척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무심한 얼굴로 빠르게 강의하지만 실은 분위기를 무척 타는 강사여서, 마지막 4강 째 질문과 답변 시간에는 이 학생들이 무슨 질문을 하든 성실하게 답변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대체로 나오는 질문은, 연대 들어가면 어때요, 선생님은 연애 몇 번 해 보셨어요, 혹은 수업 시간에 가르쳐 주신 그런 것은 어디서 공부해요, 등의 것들이다. 몇 번이나 대답해서 이미 준비되어 있는 내용에다 그날그날 생각나는 것을 덧붙이다 보면 10, 20분 정도의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에는 조금 독특한 질문을 받았다.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한 남학생이 선생님, 다음 시간에는 몇 반에 들어 가세요, 라고 물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나는 네가 뭔 상관이야, 하고 대답했다. 친구들이 왁자지껄하게 웃는 와중에 그 학생은 다시 손을 들고, 몇 반과 몇 반에 강의를 하러 가시면 조심하세요, 라고 말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다른 학생 하나가 녹음기 틀어놓았는지 꼭 확인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대충 감을 잡은 나는 그 반에 일베가 있니, 라고 물었다. 많은 학생들이 네, 라고 소리쳤다.

 

퇴근하는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올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1999년과 빠른 2000년 출생들인데, 이들은 10대의 대부분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보냈다. 사회의 일반적인 우경화와 인터넷의 우익 커뮤니티 출현 등을 직접 경험하며 자란 세대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이 일간베스트 이용자임을 자랑스레 밝히고, 또 한편에서는 국가의 폭력을 주제로 삼아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하는 강사가 일베 학생으로부터 유무형의 피해를 입을까 걱정해 주는 모습 등은, 그들의 상식에서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제였던 이번 주 월요일, 두 번째 반의 마지막 4강이 끝났다. 첫 번째 반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졌다. 연대 축제는 어때요, 입학 때 술 많이 먹이나요, 등등의 질문이 나오다가, 종치기 1분 전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선생님은 이런 수업 하시면 무섭지 않으세요.

 

강단에서 말문을 잊을 정도로 당황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다시 살펴본 학생의 눈빛은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빛을 잃은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수업에서 전달하는 내용은, 내가 너희의 나이였을 때에는 알고 싶고 가르치고 싶어하는 것이 권장되는 '공부'였었다. 그 내용이 공교육의 공부의 대상이 된 것은, 고작 십 년에서 이십 년 전의 선배들이 젊음과 기회를 희생하며 가져다가 내 입에 넣어준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저 받아먹고 자랐다. 지금 이 정도는, 받아먹은 염치가 있다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쳐서 그 뒤의 이야기는 잇지 못했다. 학생들은 교실을 나가는 내 등 뒤로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나는 몇 마디의 말로 다른 세대의 환심을 샀다는 공명심 따위 보다는, 이 정도의 강의와 소신이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라는 데에서 내 세상과 그들의 세상 사이의 아찔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화가 나고 대체로 무섭고 우울했다. 눈이 빛을 잃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학생들로부터 경고를 받았던 그 반들에 들어가게 된다. 수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은 학생이 강의를 녹음해서 인터넷에 공개하고 이 블로그의 주소를 공개하고 내 '신상을 털'면, 의기에 찬 강의 내용에 어울리지 않게 허술하게 살아온 내 삶은 낱낱이 까발려질 것이다. 잠시간의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게 해준 지금의 환경도 삽시간에 날아갈 버릴 수 있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얼기설기나마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모두 사라진다. 과장된 생각임은 안다. 그러나 어딘가의 누구에게는 분명히 일어났었던 일들인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 앞에서 '쪼는' 것 중의 얼만큼이 현실 감각이고 얼만큼이 비겁함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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