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 갤러리 앞에서. 강병인 씨의 캘러그래피 전시전에 갔었다. 강병인 씨는 얼마전 일기에 올렸던 '봄비'라는 글씨를
원래 쓴 서예가이다. 이달 말까지 하고 있고,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관람료는 무료이니 관심과 시간 있는 이는 가보자.
봄가을 옷을 걸쳐 입고 나가면서도 추워지면 어쩌지 걱정하던 것이 고작 몇 주 전이었는데, 이 날은 가방에 넣어간 얇
은 점퍼를 꺼낼 일이 없었다. 황사가 극성이었다지만 햇살 좋은 삼청동을 가로지르는 것이 오랜만이라 그냥 마음껏 숨
쉬고 놀기로 했다.
약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는 '봄'과 '꽃'으로 주제를 정한 모양이었다. 꼭 보고 싶었던 비'와
'웃자'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즐거웠다. 사진을 엉망으로 찍은 탓에, 두 주제가 모두 들어간 작품의 사진 하나만을
골라 올린다.
'봄날은 그윽하다. 봄날은 향기롭다. 아 봄날은 오시었다. 내 여린 가슴을 뚫고 꽃으로 오시었다.'
가회갤러리 뜰. 사람이 없어 6인용 야외 테이블에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요사이 인생의 가까운 스승이신 조 선생
으로부터 여러 가르침을 받느라, 강병인 씨가 너댓 명에 불과한 관람객들을 데리고 직접 작품해설을 한다는데도 귀찮
다고 안 가고 수다만 떨었다. 지성인 되기엔 한참 글러먹은 근성.
갤러리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는데, 종업원은 귀찮은 내색도 하지 않고 안팎을 오가며 시럽을 가져다 주
네, 리필을 해 주네,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친절엔 무례로 답하는 것이 소인의 마음씀씀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세 시간 잘 놀았다.
한쪽 벽이 온통 강병인 씨의 작품. 이번 전시회 끝나면 다시 칠할 것인지 어떤지. 남의 사정인데 괜한 걱정 됐다. 벽면
에 진 것은 그림자이지만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다.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조 선생 덕분에 남들을 세우기만 하지 스스로는 좀처럼 렌즈 앞에 서지 않는 나도 덕분에 오랜
만에 내가 나오는 사진을 얻었다. 고맙긴 했지만 재능과 품성은 겸비하기 어려운 듯. 여남은 장 가운데 겨우 한 장 건
지고 그나마도 흑백 처리하여 끝에 슬쩍 붙인다. 조 선생, 마음만은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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