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4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진 만우절인 4월 1일의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조금 전 지진을 느꼈다. 창문이 으드드 흔들리길래 날씨도 봄이 다 되 었는데 왠 바람이 이리 세담, 하고 생각하던 중 침대와 몸이 함께 흔들렸다. 연희동 가스 폭발, 북한의 미사일 공 격, 지진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며 벌떡 일어나 스마트 폰을 켜 보았는데 실시간 검색 순위 란은 평소처럼 연예인 의 이름 따위로 채워진 평온한 세계였다. 공부와 출근을 위해 눈을 감았다가 기상 후 메일 확인을 하려 포털을 띄워 보니 대문 화면에 그 시각 지진이 일어났었다는 뉴스가 떠 있었다. 진원지인 태안 앞바다에서 5.1, 인천에 서는 3, 서울에서는 2 정도의 진도를 느꼈을 것이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깜짝 놀라 튀어 일어나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부엉이처럼 오도카니 서 있게 만들.. 더보기 삼월 말 봄밤 비 귀한 대접을, 받았구나. 쓰레기야. 뜬금없이 흐뭇해 보인 것은 봄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보기 못 본 척 지나가라 지구인 목숨은 살려주마. 더보기 구경길 이십 분만 일찍 나오면 출근길은 구경길. 지금까지 만난, 버스에서 휴대폰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멋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버스가 덜컹거 려도 심사숙고 끝에 한 수를 내려놓던 장기 두는 형. 기종을 알 수 없는 네모큼직한 휴대폰 화면이 진짜 장기판 처럼 보이기도 하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까지 더하여 서울버스 한 가운데에서 선당의 기운을. 신호에 걸려 서 있는 사이. 버스 옆으로 오토바이 탄 청년이 들어오더니, 담배갑에서 돛대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들고 있던 담배갑을 그대로 놓아버린다. 구겨서 버리거나 멀리 집어던지는 것도 아니고 마치 빈 담배갑은 원래 부터 그 자리에 속한 것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비가 와서 미끄러워진 도로인데 비닐도 벗기지 않은 담배갑을 그대로 도로에, 그것도 네 바퀴짜리 차.. 더보기 골목길 이제는 어디로 가니. 한참 쳐다봤다. 더보기 메탈웍스 <히메지 성> 지난 번 에펠 탑을 완성하면서 다음 작업으로 예고하였던 네덜란드 풍차와 일본의 히메지 성을 완성하였다. 풍 차는 과정을 찍지 않아 소개하지 못하고, 오늘은 히메지 성의 작업과 결과 사진들을 올리기로 한다. 이것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성 가운데 하나인 히메지 성. 네이버 어린이백과에 따르면 이 성이 처음 지어진 것 은 1333년이며 이후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증축하였다 한다. 현재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17 세기 초의 일이다.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이케다 테루마사는 히데요시 사후, 장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 에 가담하였다. 1600년, 테루마사는 전국 시대 말기의 손꼽히는 대전투 중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전공 을 인정 받아 히메지 성이 있는 히메지 번의 번주 직에 임명된다. 테.. 더보기 귀가길 늦은 밤 귀가버스. 버스 입구 앞 좌석에 앉아서 덜컹덜컹 집에 간다. 논현 정류장에서 버스는 서고 입구가 열렸 다. 멀쩡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간에 서서 탈 생각은 않고 기사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아빠! 기사 님이 쳐다보지 않자 남자는 다시 아빠! 소치 가요? 하고 외쳤다. 기사님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갔다 오는 길 이다, 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힘찬 목소리로, 네!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씩씩하게 다음 버스를 기다리 기 시작했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나는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지난 뒤에야 남자가 말한 것이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소치를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침 버스에 손님도 적고 한남대교에 차도 없고 해서, 아는 분이 세요? 하고 묻자 기사님은 피곤한 얼굴로 신길동 .. 더보기 꿈 꿈을 꾸었다. 음은 똑같고 박자만 다른 네 마디의 기타 멜로디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꿈 속의 세상에서는, 행 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멜로디를 평생동안 들어야 한다고 했다. 평생동안 듣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 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평생 들을지 아닐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멜로디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귀를 틀어막자 이번에는 머리 속까지 울려왔다. 지 겨울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자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잠시 후에는 길가의 소음이나 주변 사람 들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고 시끄러운 기타 소리만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 가, 하고 소름끼쳐 하다가 나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지.. 더보기 에펠 탑 선물로 받았다. 시리즈의 이름은 메탈어스라고도 하고 메탈웍스라고도 한다. 레고 아키텍쳐 시리즈와 마찬가지 로 각 나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을 표현한 제품이다. 개별 제품은 수십 종에 달하는데, 그 중 이 번에 선물로 받은 것은 세 개. 셋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에펠 탑에 먼저 도전해 보기로 한다. 종이 봉투 식으로 된 껍질을 벗겨내고 나니 한 장 짜리 설명도와 부품이 들어 있다. 조립식 프라모델처럼, 전 체 판에 얇게 붙어 있는 부품을 하나씩 떼어내어 조립하면 된다. 설명서에 따르면 부품을 떼어낼 때 펜치를 사 용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는데, 손으로 휘휘 돌려서 떼어내도 깔끔하게 떨어진다. 조립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부품이 만나는 지점을 보면, 한 쪽 부품에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더보기 눈두더쥐 해가 보고 싶어서. 녹을 것을 알면서도. 광복관 앞뜰. 더보기 얼려 먹기 한파의 즐거움. 창문 밖에 음식 얼려먹기 시간이 돌아왔다. 정확히는 창문 밖이 아니라 외창과 내창 사이의 공간 이다. 귤이나 두유, 초콜릿 따위를 두고 생각날 때 먹으면 시원해서 아주 좋다. 최근에는 약간 서늘한 정도이길 래 혹한이 몰아친다는 날을 기다려 외창은 열어두고 내창만 닫아 보았더니, 설 때 큰집에서 가지고 온 수정과가 셔벗처럼 서걱서걱 얼었다. 살얼음 위로 마침 어디서 받은 곶감 하나 얹어 먹는다. 더보기 귀성 길 제사 지내러 인천 가는 길. 새벽부터 출발해 감기는 눈에 번쩍 하고 들어온 이 전단지. 한국에서 셜록 홈즈 시리 즈를 만든다면 편을 패러디할 때 넣어 보고 싶은 장치. 더보기 관리자 아저씨도 명절이라 고향 가셨나. 2014년 음력 설 연대 운동장 앞. 더보기 空想 2014년 발매 예정, LEGO Cuusoo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인 21104 'NASA Mars Science Laboratory Curositry Rover"이다. 우리에게는 흔히 '큐리오시티'로 알려진 화성 무인 탐사선을 레고 모델화한 제품이다. 지난 2012년 화성에 안착한 큐리오시티는 화성에서의 일식 장면을 촬영하거나 표면의 물을 발견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이루 어 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식물로 보이는 물체의 사진을 전송하여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밀스런 레고 매니아이자 한때의 천문학 지망생도로서는 이 콜라보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굳이 일기에 따로 쓰는 정성을 보이는 것은 이것이 Cuusoo 시리즈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Cuusoo는 공상空想의 일본어 발음인 쿠소우くう.. 더보기 새해 인사 서울 생활 십 년에도 월세 인생인 나는 아직 인천 시민이지만. 아마도 2011년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 때 박원순 펀드에 가입했었기 때문에 그 정보가 남아 있어 문자가 온 모양이다. 격을 깨는 인삿말이 '원순씨' 다워서 웃음 이 나다가도, '직장, 진학, 혼인 문제'를 주책 없이 묻지 말아달라는 건 결국 중장년 층에게 하는 말인데 지방선 거 있는 해에 괜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어쩌시려고,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기사 내 고향 인천에는 시정을 두 번이 나 전설적으로 말아먹었던 전임 시장이 다시 출마한다고도 하고, 사석에서는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으 스대며 권력을 휘두르는 여당 실세가 나올 수도 있다 하니, 서울 걱정해 줄 때가 아니긴 하지마는. 더보기 사촌 동생 큰집에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러 갔는데 사촌동생이 왔다. 고등학생이라고 이삼 년 정도 빠졌는데 수능이 끝나고 나니 핑계가 없어진 모양이다. 사정을 물어보니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한다. 수능 전에도 성적과 희망 대 학 간에 차이가 있어 재수를 하네 마네 갈등이 있었던 모양인데, 다 떨어진 바에야 다시 공부하는 수만 남은 것 이니 어찌 보면 잘 된 셈이다. 일찍 장가를 가서 한두 살 터울의 아들을 둘씩 낳은 큰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작은아버지는 마흔이 다 되어 서 장가를 갔고 딸만 하나 두었다. 네 명의 사촌오빠 중 막내인 내 동생과도 열두어 살 차이가 나는 통에 사이는 대체로 서먹하지만, 그 중 셋째인 나와는 내가 재수를 할 때 서울의 작은아버지 댁에 잠시나마 얹혀 살았던 적이 있어서 살갑게 지낸.. 더보기 근황 내처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이면지의 여백에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혹은 이 일기장의 새 카테고리 기획안을 끄적여 보곤 한다. 말이 좋아 기획안이지 차근차근 체계를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때에 가장 즐거운 공상 을 하는 것에 불과하긴 하다. 그 중 요새 가장 자주 떠올리는 것은 인터뷰로 이루어진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 보 는 것이다. 가제는 '당신은 누구시길래'.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숫자의 질문을 정해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구 성된 인터뷰이다. 큰 목표를 먼저 잡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친한 지인들과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서부터 시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든지, 서른/마흔/쉰 이 되기 전에 꼭 하고야 말 일 이라든지. 유치한 질문이라도 직접 묻고 반응을 받아.. 더보기 저는 잘 지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의 한강 이남에서 제야의 밤도 보내보고. 꿈자리가 사나운 것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고 나랏님의 정책 따라 밥줄도 오명가명 하지마는. 그래도 살아서 뜨신 바닥에 엉덩이 지져가며 맛있는 거 먹고 있 으니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할 도리가 없다. 그런 고로 이 블로그에서는 참으로 드물디 드문 먹부림 사진 으로 새해 안부와 근황을 함께 전한다.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고구마를 사다가 쪄 먹는다. 추사랑처럼 변비에 걸리면 곤란하므로 김치와 함께 먹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튼 지옥행 급행열차의 1등석은 따 놓은 당상인 햄버거도 먹는다. 감자튀김과 베이컨, 치즈 가 패티이고 빵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닭튀김이 차고 앉았다. 먹고 있으면서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말로만 듣던 이마트..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