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그래픽 노블. 출판사인 씨네북스에서 나온 다른 그래픽 노블 <우편신부>를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
어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교의 도서관에 새로 들어왔길래 신청해서 읽어봤다.
학교 중앙도서관의 '예술' 코너에는 이름난 그래픽 노블들이 대부분 꽂혀 있지만 손이 잘 안 간다. 만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공부해 본 경험은 많지 않으니 아마도 개인적인 편견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
무래도 어릴 때부터 접해왔던 '망가', 즉 일본식 만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픽 노블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망가'를 몇 가지의 특징으로 요약하는 것 또한 지난한 일이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번역된 양 장르
의 작품을 눈 앞에 가져다 주고 어느 것이 그래픽 노블인지, 어느 것이 망가인지를 물어보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거칠게 보자면, 일본 만화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흐름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이 덜 자세하게 그려지거나, 인물이 훨씬 캐릭터화 되어 있다거나, 움직이는 선 등의 표현이 활발히 사용되
고 있는 등의 '생략'과 '왜곡'들 또한 앞서의 목적 하에 기획된 장치가 아닐까 한다. 즉, '쉽게 빠져들고, 잘 읽힌
다'.
그에 비해 그래픽 노블은 (상대적으로) 세밀한 배경 묘사, 실물에 가까운 인체 데생, 한 컷 안에 여러 개 등장하
는 말풍선 등 한 호흡으로 독서를 읽어나가기에는 방해물이 많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컷으로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망가에 비해 훨씬 아름다운 '그림'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림 안에 담겨 있는 많은 정보
량들을 섭취하다 보면 전체 이야기의 큰 줄기를 놓치지 않기가 어렵다. 곧, '종종 끊기고, 잘 안 읽힌다'. 그림이
아름다워서 소장하고 있는 그래픽 노블들이 몇 권 있는데, 첫 번째의 독서에서 '그래서 무슨 이야기하는 거
야?'를 계속 묻지 않았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이 책은 심지어 실제로 일어났던 남미의 혁명에 관해 다루고 있다. 혁명이라니, 잘 정리된 논술문이라도 읽다가
몇 장 넘어가면 까먹을 판인데. 하지만 이 책은 철저히 주인공인 사제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혁명을 조망
하고 있다.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전투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이 책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저 혁명의 파랑에 내던져진 한 젊은이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난다. 덕분에, 그
래픽 노블에 대한 무지한 편견을 많이 씻어낼 수 있었다.
주인공인 '가브리엘'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가톨릭 신부이다. 그는 또한 부패한 독재 정권과 결탁한 사업가
의 아들이기도 하다. 새로이 부임한 한 마을에서, 딱딱한 성화밖에 그릴 줄 몰랐던 그는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
며 신앙과 예술에 있어 그 전까지 스스로 그어 놓았던 경계를 깨뜨리고 생생한 도약의 단계를 경험한다. 민중들
은 마을의 구성원이며 또한 반정부 게릴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인 자아 또한 갸날프게 성장하기 시
작한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 정부의 군사 세력이 마을에 들어와 게릴라들을 색출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
서 무고한 사람이 죽거나 살기 위해 서로를 밀고하는 등 마을은 붕괴되고 만다. 가브리엘도 거대한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밀고를 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참혹했다. 괴로워 하는 그의 앞에 소식을 듣고 아들을 데리러 온
아버지는 질책과 손찌검을 아끼지 않는다. 가브리엘은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차에서 밀림으로 뛰어내렸다.
여기까지가 1부이고, 이야기는 가브리엘이 게릴라의 일원이 되어 활약하는 2부,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인 에
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2부부터는 1부에 비해 훨씬 사건이 많고 심리의 묘사가 치밀해지며 일종의 반전도 기
다리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 요약은 이 정도로 한다.
다 읽고 나서 인상에 남는 것은 우선 빛과 색이다. 인물의 얼굴과 배경에 비춰지는 빛, 그리고 그 빛의 색은 단
지 사실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그 컷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단순히 컷이 비추는 배경이
바뀔 때 뿐만이 아니라 인물 심리의 전환이나 이야기가 전개, 반전되는 지점에서는 반드시 빛의 방향이나 색의
종류가 변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으로) 호흡이 단절되는 느낌이었던 그래픽 노블의 독서에 점도 높은 유기성을 준다. 즉, 말풍선이
너무 많아서 읽기 귀찮아 한 컷은 그림만 보고 넘어가더라도, 다음 컷이 비슷한 빛과 색을 갖고 있다면 이야기
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름답게 그려낸 남미의 평범한 마을과 그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생생
한 묘사를 보는 것은 과외의 소득이다. 정글과 게릴라들의 사실적인 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림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마음에 더 크게 공명되었던 것은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혁명은 성공하고 죽은 사람은 영웅이 됐다. 그러
나 산 사람들의 인생은 어땠을까.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에필로그에는 시대와 혁명에 휩쓸렸던 이들이 선택한
몇 가지 인생의 결과가 제시되어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도 그 몇 가지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혁명의 과정에서 저질러졌던 인간적 과오와 상처들, 거기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었다.
혁명에 의해 타도된 정권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 거악이었다. 작가가 계속해서 상처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민
중의 슬픔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혁명의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혁명이
일어나야 할 시대란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며칠 전 80년 광주에 관
한 글을 읽었기에 연상이 된, 개인적인 생각이다.
원제는 <MUCHACHO>. 스페인어로 '소년'이라고 한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는 한 소년이 이야기에 나
온 과정을 거쳐 성장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가 그저 '소년'에서 '상처를 입은
소년'으로 변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였다면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 그가, 불합리
한 시대 탓에 끝내 소년으로 남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작가의 본래 뜻에 가깝지 않을까. 혹은 독자에게
더 큰 감흥을 주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원제가 국내판 제목인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멋진 데생을 몇 개나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책 속에 나온 '소모사 정권', '산디니스타', '니카라과 혁명'을 검색
해보기도 하는 등 이 책은 벌써 내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할인하면 만 원 근처. 이건 은총에 가깝다. 구입을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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