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금성에서 왔다고 하는 옴넥 오넥(Omnec Onec) 여사의 증언록. 출판사의 이름은 무려 '은하문명'이다.
얼마 전 유년기에 관한 일기를 쓰며 유료전화로 금성 여인의 육성을 듣던 기억에 관해 거론했었는데, 그 글을
읽은 지인 중 한 명이 육성을 기록한 남자의 이름이 '조지 아담스키'였다는 사실을 문자로 보내 주었다. 외국 사
람의 이름인데도 '그 사람은 참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겠구나'라는 멍청한 생각을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정작 그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성질내던 차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요새는 그런 책들이 안 나오나 알
라딘을 좀 뒤져보니 웬걸, 올해 1월에 신간이 있었고 게다가 재학중인 학교의 도서관에도 들어와 있었다.
도서관에서 주로 찾는 곳은 100번 중간 대의 사회과학 책들, 700번 중간 대의 예술 책들, 950번 대의 역사책들
인데, 이따금 찾는 곳이 0번 대에 있는 역학/고대문명/미스테리 섹션이다. (그 섹션이 왜 맨 처음인 0번 대에 가
있을까는 언젠가 연대 도서관에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유태인 비밀정부나 피라미드 파워 등에 관한 내
지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곳인데,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발걸음을 향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도 안 읽고 내던졌기 때문에 뭐라고 평하기가 어렵다. 허경영 씨가 출연했던 방송을 한 번
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 화장실 유머책 정도로 여기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
다. 비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간 내가 지나치게 진지해진 것은 아닌가, 하고 오히려 반성을 했다. 허황된 이
야기면 허황된 이야기로 여기고 그냥 즐겁게 읽으면 될 것인데, 내던질 것까지야. 책은 옴넥 오넥 여사의 수기
와, 각종 화제에 대한 백과사전식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가혹하기로 이름난 금성의 환경에서 어떤 식으
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과학적이지는 않더라도 신선하거나 창의적이기만 했어도 나는
그럭저럭 끝까지 읽을 용의가 있었는데, 초장부터 금성인은 이미 에테르 상태로 진화했기 때문에 지구인의 눈
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늘어놓는 통에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여사의 말에 따르면 금성 뿐 아니라 화성
과 목성, 토성에도 지적 생명체들이 있으며 그들은 지구 역사에 끊임없이 관여해 오고 있다고 하니, 천문학도들
의 분발 바란다. 참고로, 황인종은 화성인의 후예라고 한다. 자신의 근본쯤은 알아두는 사람이 되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추천의 글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외계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조경철 박사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서울대 수학과의 모 교수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 교수는 굳이 꿈많은 아이들이 읽는 학생과
학에까지 나와서 외계인 믿을 시간에 과학을 공부하라는 재미없는 말을 늘어놓곤 했다. 시방은 위험한 시국임
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는 것인데, 나는 솔직히 김일성보다 그 교수가 10광년 쯤은 더 미웠다. 수학을 비롯한
이론 과학에 대한 내 증오감은 어쩌면 그 시절에 크게 빚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허경영 씨도 한참은 더 배
워야 할 것 같은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에 추천사를 써 준 분이, 공학박사이자 KIST의 책임연구원이었
다. 추천의 글에서는 근간의 외계 문명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소개하고, 책의 내용을 개괄하는 등 이 책 자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피력하지 않은 채 슥슥 잘 넘어가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지위의 사람이 이 책에 추천사를
써 줬다는 것이 좀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그 잘난 현대 과학도 수많은 미스테리 앞에
는 무릎 꿇을 수 밖에 없구나 하고 의기양양해졌을 테지만, 실제로는 KIST에 국정감사 한 번 들어가야 되는 거
아냐, 이거,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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