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 내 일기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께 글을 받아 함께 싣고 싶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처음 구상을 했던 7,8년 전에는 받고자 하는 글의 내용에 대해 기껏해야 그들의 연
애담이라든지 나와의 추억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질의 것 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인생 경험이나 기획력
등, 아무튼 총체적 깜냥이 그 정도였던 탓이다. 결국 몇 차례의 설득이나 회유 등에 힘입어 몇 편의 글을 모셔다
실어 보았으나 당시의 홈페이지에서 컬트적 인기를 누리고 있던 미랑의 글만 어느 정도 반향이 있었을 뿐 나와
기고자의 소소한 추억으로 남고 유야무야 되고 말았었는데.
관리가 용의한 포털로 블로그를 옮기면서 지금쯤 한 번 실행해 볼까 어쩔까 하고 뭉기적거리고 있던 차에,
결정적인 동력원이 되어준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인 아티스트 졍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졍과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그녀가 요즘 집중해 그리고 있다는
종이컵 아트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팬시 제품에는 나름의 소비 경력과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고 자평하는
나로서도 상당 금액 이상을 지불하고라도 소유하고 싶은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았다. 본인은 대부분 실수와
그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들로 가득 채워진 그림들이라 처음의 의도가 관통된 것은 많지 않다고 겸양의 말을
하였지만 나는 친구로서가 아니라 관객이자 소비자로서 크게 감탄하였다. 와중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
던 계획을 떠올리고,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쯤, 그림을 촬영하여 올리고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등에 대해 글을 써 줄 수 있겠는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는데 졍은 그러마고 흔쾌
히 허락을 해 주었다.
새로이 정해진 방향도 크게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고작해야 자기 대학이나 연애 이야기 정도가 다였던 스물
에서 십 년이 지나, 이제 서른이 된 나와 내 친구들은 마이스터는 못 되지만 각자 자신의 삶에서 다른 이들이
쉽게 쟁취하지 못 할 어떤 가치, 혹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내 친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흥미
로운 것이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읽어도 마음이나 머리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이야기들.
블로그를 옮긴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주소를 직접 알려 주어 찾아오게 한 이는 손에 꼽는다. 한 동안은 소수
의 독자-창작자 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는 수준이겠지만, 자리를 잡고 나면 현재 열 명 정도 확보해 놓은 필
자의 수를 크게 확대하여 단 한 편의 글이라도 매일같이 업데이트 되는, 일종의 생활-문화 형 웹진을 구축하
고자 한다. 작게는 그들의 글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호응을 얻게 하는 기반으로, 크게는 기고자와
독자, 혹은 기고자와 기고자끼리의 소셜 네트워킹 까지를 아우르게 하는 공동체 공간으로 정립시키는 것이
최종의 목표이다.
항상 이상주의의 극을 달리는 내 컨셉들에, 가장 구조적인 실현을 가능케 하는 아키텍트 단몬과 신촌의 커피숍에서
첫 기획회의를 가졌다. 프로젝트 'D-zine'의 조용하고도 알찬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