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큰 목표는 이 그림. 지난번에 그렸던 <땅고 1>을 다시 그렸다. 이번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원화의 작가가 누구일지 궁금해서 공부를 좀 해봤다.
원화의 작가는 1967년생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곽 출신의 Fabian Perez라는 이이다. 그는 주로 남미를 배경으로 탱고를 추는 연인, 플라멩코 기타를 치는 남성, 중절모를 눌러쓰고 담배를 꼬나문 신사, 칵테일을 앞에 두고 서로를 유혹하는 남녀 등의 그림을 그려 유명해졌는데, 이는 유년기 시절 아버지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운영하던 몇 개의 불법 클럽에서 밤마다 보던 풍경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식 키울 때 조심해야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될 놈은 어디 갖다놓아도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전형적인 남미 미남이다. 자기도 자기가 잘 생긴 것을 아는 모양인지 그의 작품세계는 위에서 설명한 남미 클럽 풍경과 자화상으로 양분되어 있다. 위의 기타를 치는 남성 그림도 자화상이라는 설명이 있긴 한데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십대 후반에 어머니를, 이십대 초반에 아버지를 잃고는 큰 슬픔에 빠져 있다가 동양무술의 수련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미 미남에 클럽 분위기 빠삭하고 그림 잘 그리는 데다가 동양무술 수련까지. 인생 살면서 꼭 한 번쯤은 만나보면 좋을 오빠라 할 수 있겠다.
이십대 중반에 이르러 세계를 여행하며 그림을 연습하기로 마음먹고 수 년 동안 이탈리아의 파도바, 일본의 오키나와 등에 머무르며 매일같이 그림 연습을 했다 한다. 실력은 늘었겠지만 별 빛을 보지 못했는지 미국에 와서는 식당에서 식기를 치우거나 영화 스튜디오에서 짐 나르는 일 등을 했다. 와중 모델의 이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생 중이라도 외모는 어디 안 갔던 모양이다.
서른다섯이 되던 2001년에야 갤러리의 화상들에게 좋은 평을 받기 시작했는데, 시장에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해 그리는 족족 높은 값에 팔려나가고 주문이 폭주했다 한다. 성공은 계속되어,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9년에는 라틴 그래미 어워즈의 공식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고 2010년 동계 올림픽과 2012년 올림픽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현재는 베벌리 힐즈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축구 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동양 무술 가르치다가 영감을 얻기 위해 훌쩍 세계여행을 떠나는 삶을 살고 있다 한다. 정말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아무튼 그 매력에 반해 작가 이름조차 모르는 무식꾼인 나도 따라 그려봐야지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모사를 하고자 하면 아무래도 그냥 팔짱 끼고 감상할 때보다는 훨씬 더 자세하게 뜯어보게 되는데, 보면 볼수록 모델의 비율, 구도, 색의 배치 등에 감탄하게 되는 그림이다. 작가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이 그림은 배색과 크기 등을 달리하여 몇 장이나 그린 바가 있다.
뚝딱 완성. 그림 후기를 쓰다보면 다음부터는 그리는 중간과정 꼭 찍어야지 찍어야지 생각하는데도 막상 그릴 때에는 서툰 손으로 붓 몇 개씩 들고 여기저기 물감 묻혀가며 정신이 없는 통에 아예 찍을 생각조차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빨리 마르는 아크릴 물감의 특성까지 더해지면 그리는 것만 해도 혼이 빠질 정도여서, 붓을 닦는답시고 물감용 물통이 아니라 내가 마시는 물컵에 붓을 담근다든지 손에 붓 있는 줄 모르고 머리를 긁으려다 눈을 찌른다든지 하는 일이 수시로 있다.
참, 이쯤에서 참회의 고백 하나.
나는 전에 그린 그림에 <땅고 1>이라는 제목을 붙인 적이 있었는데, 작가 공부를 하며 추가로 춤에 대해 조금 검색을 해보니 여성이 강렬한 색의 드레스를 입고 힘차게 추는 것은 탱고가 아니라 플라멩코였다. 탱고는 쿠바의 멜로디와 아프리카의 리듬, 거기에 아르헨티나 민요가 섞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탄생한 춤으로 주로 두 명의 남녀가 최대한 신체를 밀착하여 추는 것이다.
플라멩코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강렬한 원색의 의상과 특유의 박수와 발구름 동작이 인상적이다. 레이스가 너풀너풀 달린 빨간 드레스의 여성이 얼굴의 한 쪽 옆으로 손을 들어 박수를 짝짝 치고 있거나 치마 밑단을 파도처럼 휘저어가며 화려한 발놀림을 선보이는 그것이 바로 플라멩코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플라멩코 그림에 탱고라는 제목이나 붙여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번 제목은 그대로 두고 이 그림부터 <플라멩코 1>이라고 붙이기로 했습니다. 볼때마다 겸손함을 되새기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세 번째 그림을 위한 반성회. 왼쪽이 첫 번째 그림, 오른쪽이 이번에 그린 두 번째 그림.
특히 배경 등에서 아무 생각 없었던 지난번 배색에 비해 검은색과 빨간색의 황금 콤비로 맞춘 이번 배색 쪽이 확실히 깔끔해 보인다. 아울러 모델의 신체 비율이 달라지면서 훨씬 우아한 느낌이 생겼다.
너무 뾰족해서 미스 아이언맨의 가슴 미사일처럼 보였던 가슴 부분은 조금 더 둥글게 다듬었다. 옅은 빨간색과 빨간색, 검은 빨간색만으로 질감을 주었는데 지난 번처럼 흰색으로 광택을 조금만 표현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팔의 명암 표현은 지난 번 것이 오히려 깔끔하고 능숙해 보인다. 뒷걸음질로 쥐 수십 마리는 잡았던 모양이다.
오른팔도 지난번 것이 더 능숙해 보인다. 마지막의 흰 선 광택 처리가 문제였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는 팔의 가장 외곽에 뚜렷한 흰 선을 칠했는데 지난번에는 그보다 약간 안쪽에 보일듯 말듯한 흰 선을 넣었다. 후자 쪽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나 혼자 멋대로 추리해보는 것이라 정답일지 아닐지는 모른다.
등 부분은 원화에서 긴 머리의 그림자를 표현하느라 검은색으로 되어있길래 그대로 검은색으로 칠한 것이다. 화면의 중앙부에 위치하는데 텅 빈 검은색이 좀 허해 보인다. 다음번에는 검은색-암갈색-갈색 등으로 조금 더 질감을 표현해봐야겠다.
지난번 엉덩이는 드레스 실밥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퍼지는 탱글탱글함이 잘 표현됐었다. 이번에는 실밥의 표현 없이 그냥 빨간색만 두텁게 칠했다가 아무 매력도 없어서 부랴부랴 검은 빨간색으로 명암을 좀 줬다. 볼륨감을 조금 더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다음은 머리. 가까이서 찍으면 별 차이가 없어 뵈는데, 멀찌감치서 보면 좀 더 적은 선으로 머릿결의 광택을 표현한 지난번 쪽이 더 나아 보인다. 귀나 귀걸이, 드레스 목줄의 세심한 윤곽은 이번이 나았다. 그릴 때엔 손 부들부들 떨어가며 잘 뵈지도 않을 걸 이렇게 작은 부분 칠하는데 뭐 이래 고생을 하나 싶었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정성들여 그린 쪽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나았다.
치마의 흰색과 푸른색은 드레스 밑단마다 달린 숄을 표현한 것인데 영 효과 없었다. 이건 확실한 대안이 없다면 다음 그림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이러나 저러나 또 하나 완성.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라면야 아무 생각 없이 도전했다가 후진 실력에 비하면 과분한 성과 나왔던 지난번 쪽이 더 컸지만, 그리는 과정에서의 만족도는 뭐가 뭔지 그래도 하나두개 정도는 확실히 알고 시도해 보았던 이번 쪽이 더 컸다.
세번째 '플라멩코' 그림으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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