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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130313, <사탕나무>

 

 

 

 

 

 

철사제 헌팅 트로피를 완성한지 약 3주가 지난 뒤.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마침내 선물 제작에 돌입하였다. 연대

 

서문의 숙소에서 도서관까지의 짧은 길에도 가지각색 사탕 선물의 가판대는 줄을 이어 있었지만, 선물이란 모름

 

지기 가격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야말로 헐벗은 인문학도의 참된 마음가짐.

 

 

 

이번 조형물의 기획의도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사탕이 조형물의 일부일 것. 둘, 사탕을 다 빼 먹고도 여전히

 

나름의 의미를 갖는 하나의 조형물일 것. 이외로 전체 인테리어와 조화되지 않으면 언제든 분리수거할 태세를

 

갖추고 계시는, 받는 분의 냉혹한 취향까지 존중할 것 정도가 추가로 고려되었다. (마지막 의도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재료는 헌팅 트로피 제작과정에서 그 단맛을 톡톡히 본 공예용 철사 4종과 평범한 철물점 철사 한 뭉치, 페레로

 

로쉐 초콜렛 세 개, 잘 휘는 공예용 철사가 지탱할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의 사탕 한 봉지.  

 

 

 

 

 

 

 

 

 

 

 

 

처음에 멍하니 떠올렸던 것은 공예철사로 만든 큰 막대사탕이었다. 사탕 부분은 엉성하게 얽어서 텅 빈 안이 훤

 

히 들여다 보이게 해 놓고, 그 안에다가 색색의 셀로판지를 구겨서 채워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막대사탕

 

모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동그랗게 철사들을 얽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고,

 

셀로판지를 어느 시점에 얼만큼 넣어야 할지, 그리고 의도대로 결과가 나와줄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

 

고 지켜야 하는 신념은 아니지만, '사탕이 작품의 일부일 것'이라는 최초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는 것도 마음에

 

렸다.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고심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은 '나무'. 열매가 사탕인 나무이면 좋지 않겠나. 열매를 따듯 하

 

나하나 사탕을 빼먹는 재미도 있을테고, 다 빼먹고 나도 나무 모양이 남아있을테니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어차피 스케치대로는 안 될 일이지만, 아무튼 연필을 들고 일단 슥슥 스케치를 했다.

 

 

 

 

 

 

 

 

 

 

 

 

헌팅 트로피를 만들었을 때 얻은 교훈. 철사만으로 부피를 표현하기란 시간에서나 돈에서나 무리 가득한 일이

 

다. 굴러다니는 나무젓가락을 몇 조각으로 쪼개어 몸통으로 삼고 철물점 철사로 고정시켰다. 접착제 등을 사용

 

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고 되는대로 감았기 때문에 이미 스케치의 나무 모양들과는 전혀 다른 분.  

 

 

 

 

 

 

 

 

 

 

 

사실 나무의 몸통은 단지 체력단련에 불과했다. 문제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할 가지와 잎사귀. 이렇게도 꼬아

 

보고 저렇게도 꼬아 보다가, 구멍이 되도록 많은 쪽이 마지막에 사탕을 끼워넣어 배치할 때 용이할 것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구멍이 많으려면 여러 개의 철사를 얽는 것보다는 하나의 철사를 많이 감는 쪽이 좋다. 클립을 갖

 

고 장난치던 것을 응용해 보았다.

 

 

 

 

 

 

 

 

 

 

 

 

처음에는 한 바퀴만 돌리다가, 철사를 길게 잘라 좀 더 감은 뒤 몇 바퀴로 겹쳐 보니 느낌이 훨씬 좋았다. (단순

 

히 금색이라 좋았는지도 모른다.)

 

 

 

 

 

 

 

 

 

 

 

 

색색으로 만든다. 공예철사를 휙휙 꼬다 보면 천하장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술자리 차력 쇼 같은 데 응용

 

할 수도 있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하나가 뚝딱. 이 정도만 해서 명함꽃이나 책갈피로 선물해도 좋

 

을 것 같다.

 

 

 

 

 

 

 

 

 

 

 

접착 방법을 따로 찾지 못한 탓에 이미 완성된 몸통에 가지들을 대 놓고 다시 철사로 빙빙 감을 예정. 그러려면

 

가지끼리 미리 얽혀 있는 쪽이 좀 더 편하게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색의 가지들을 서너 개 정도 미리 감아

 

다. 파란색과 녹색의 공예용 철사를 살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배색은 나쁘지 않은 듯.

 

 

 

 

 

 

 

 

 

 

 

 

이렇게 감는다. 떨어지지 않도록 칭칭 감아대는 탓에 나무는 이미 초현실주의 화풍.

 

 

 

 

 

 

 

 

 

 

 

 

공예용 철사는 부드럽기 때문에 손에 상처가 생길 일이 없다. 사진을 찍으려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지만 바쁘

 

다는 핑계 반, 게을렀다는 참회 반. 이렇게 결과물 뚝딱. 실물은 사진보다 훨씬훨씬 덜 조잡하다고 몸부림 치며

 

항변하고 싶지만 아이폰 4S의 카메라는 대체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무지 어디에 쓰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개발도상국 근성으로 버리지 않았던 소형 화분이 대활약. 몸통을 심고

 

사탕 열매를 하나하나 꽂아 넣는다. 구멍을 많이 만들어두었던 것이 예상외의 효능이 있었다. 사탕 손잡이를 구

 

멍 하나에만 슥 꽂아놓으면 덜렁거리거나 아래로 축 처질텐데, 구멍의 뒷쪽에 겹쳐져 있는 다른 구멍에 한 번 더

 

끼워넣으니 잘 고정된다. 만들던 중에는 사탕이 너무 많아서 내 작품이 가려지면 어쩌지 하고 사탕 몇 개를 먹어

 

버릴까 생각했었지만 끝나고 보니 많아서 천만다행. 가려주고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조형물에 활용할

 

없었던 페레로 로쉐 초콜렛은 원래 이렇게 장식할 의도였다는 것처럼 시침 뚝 떼고 그냥 놓아두었다.

 

 

 

받은 마음과 주어야 할 마음에 비하면 형편없는 결과물이고, 거창한 말 할 것이 아니라 사실 편의점의 화이트데

 

이 선물세트에 비해 봐도 형편없는 결과물이긴 하지만, 아주 긴 시간동안 이어질 '마음의 선물' 중 초기작이라는

 

의미 만이라도 어여삐 보아 주었으면. 사탕 많이 먹고 이빨도 잘 닦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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