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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허수의 결혼식, 강남역 삼성전자 별관, 11월 7일.





삼성전자 별관의 5층에는 하나의 결혼식장과 그에 딸린 신부 대기실 등의 방만 있어 매우 조용하였

고, 식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청첩장을 확인하여 하객만 통과시켜서, 근래 가 본

결혼식 중에는 가장 정갈한 예식이 되었다. 사회로서 따로이 여러 멘트들을 준비해 갔지만 예식장의

도우미가 식순에 맞추어 써진 사회사를 넘겨 주었고,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한 순서가 끝날 때마

다 옆에서 다음 말할 것들을 재촉해대는 통에 주어진 것만을 거의 그대로 읽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이었지만, 번잡스러운 일을 싫어하는 신부와 식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하객들에게는 그 속도

와 효율성에 있어 인상적인 결혼식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랑에게 신

부를 등에 태우고 팔굽혀 펴기를 하며 만세삼창을 한 뒤 일어나 야호, 하고 외치는 심상한 이벤트 뿐

이었다.


허 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대학동기 정재령 양이 부장님과 함께 영국 출장을 가 예

식에는 불참하기도 했고, 그 외의 대학교 사람들은 삶에 부단히 매진하는 20대를 보낸 신랑이 수줍

음에 차마 초대하지 못 하여서, 나는 사회를 보고도 혼자 피로연장으로 가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다행히 야근에 걸려 들어 못 오게 되었던 기훈 엉아가 잽싸게 일을 끝내고 수원에서 강남으로 달려

와준 덕에 밥은 같이 먹었지만, 식사가 끝난 뒤 형은 분당에서 소개팅이 있다며 다시 가 버렸다. 나

는 초저녁에 신촌으로 돌아와 정장을 다시 잘 걸어두고 연구실로 가 입력을 하였다. 놀기로 작심한

토요일 밤에, 공으로 보내느니 입력이라도 해야지 하고 먹은 마음은 몹시도 참담한 것이었다. 이젠

사회를 인상적으로 본 어드메의 아가씨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허 수에게 그 사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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