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별관의 5층에는 하나의 결혼식장과 그에 딸린 신부 대기실 등의 방만 있어 매우 조용하였
고, 식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청첩장을 확인하여 하객만 통과시켜서, 근래 가 본
결혼식 중에는 가장 정갈한 예식이 되었다. 사회로서 따로이 여러 멘트들을 준비해 갔지만 예식장의
도우미가 식순에 맞추어 써진 사회사를 넘겨 주었고,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한 순서가 끝날 때마
다 옆에서 다음 말할 것들을 재촉해대는 통에 주어진 것만을 거의 그대로 읽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이었지만, 번잡스러운 일을 싫어하는 신부와 식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하객들에게는 그 속도
와 효율성에 있어 인상적인 결혼식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랑에게 신
부를 등에 태우고 팔굽혀 펴기를 하며 만세삼창을 한 뒤 일어나 야호, 하고 외치는 심상한 이벤트 뿐
이었다.
허 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대학동기 정재령 양이 부장님과 함께 영국 출장을 가 예
식에는 불참하기도 했고, 그 외의 대학교 사람들은 삶에 부단히 매진하는 20대를 보낸 신랑이 수줍
음에 차마 초대하지 못 하여서, 나는 사회를 보고도 혼자 피로연장으로 가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다행히 야근에 걸려 들어 못 오게 되었던 기훈 엉아가 잽싸게 일을 끝내고 수원에서 강남으로 달려
와준 덕에 밥은 같이 먹었지만, 식사가 끝난 뒤 형은 분당에서 소개팅이 있다며 다시 가 버렸다. 나
는 초저녁에 신촌으로 돌아와 정장을 다시 잘 걸어두고 연구실로 가 입력을 하였다. 놀기로 작심한
토요일 밤에, 공으로 보내느니 입력이라도 해야지 하고 먹은 마음은 몹시도 참담한 것이었다. 이젠
사회를 인상적으로 본 어드메의 아가씨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허 수에게 그 사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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