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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

취미 근황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광진구 중곡동으로 이사 오며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 문화센터의 프로그램 중 하나 이상을 꼭 들어보리라.

 

8월 말에 이사하자마자 광진구 문화센터 홈페이지를 찾아 검색을 해 보았다. 수영이나 피트니스 같은 체능 프로그램은 매 달마다 신청자를 받아 월 단위로 운영되는 반면, 캘러그래피나 양초 만들기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석 달 마다 분기 단위로 운영되고 있었다. 8월부터 11월까지의 일정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중간에 가입은 불가능했다. 마침 가르치는 학생들의 중요한 수업도 많이 겹쳐있고 하여, 십일 월 말부터 신청을 받는 새 코스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이러구러 지내다보니 11월 말이 금세도 왔고 나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다가 스트레칭과 우쿨렐레, 두 개의 강좌를 신청하였다.

 

스트레칭은 이사 후 부쩍 뻐근해진 목 때문에 신청한 것이었다.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스트레칭 방법을 배워두고 생각날 때마다 집에서 하면 좋을 것 같아 신청하였다.

 

우쿨렐레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첫 우쿨렐레를 산 것은 오륙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에 꺼내어 두어 시간 뚱땅거리는 것으로는 실력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기타 등의 다른 현악기 또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애당초 줄을 튕기는 것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랐던 일인데, 빠지기 어려운 약속과 업무가 이어져 석 달 동안의 총 12회 수업 중 첫 2회를 빠지고 말았다. 2회 씩이나 빠지고 나니 귀찮은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 하여 3회차의 저녁에도 고민고민을 하였지만 뭐라도 하나 배워는 오겠지 싶어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한겨울의 수요일 밤 여덟 시. 중곡동에는 단독 주택 주거지구가 넓게 퍼져있어 동네는 이미 캄캄한데 문화센터 안은 환하였고 또 즐거운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로비에서 출입증을 교부받고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엇샤엇샤 소리를 질러가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들을 보니 초급반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 강의실에는 앞 타임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글씨 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요가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모두 즐겁게 집중하고 있어서 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신청했던 자세 교정 및 스트레칭 요가 클래스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되었다. 폐강 문자를 받고는, 그렇다면 다른 요가 수업이라도 들어볼까 생각하며 다시 검색을 해 보았으나, 천을 죽죽 늘어뜨리고 그 위에서 그네를 타듯 하는 플라잉 요가나 요기 다니엘 정도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려운 이름의 요가 수업들만이 있어서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날 가서 보니 꼭 잘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아무튼 남는 것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체능 프로그램은 한 달 단위로 수강생을 받으니 다음 달엔 고민 좀 해봐야겠는 걸, 하며 내 강의실로 갔다.

 

 

 

 

 

 

 

 

다행히도 우쿨렐레 수업은 폐강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창문을 들여다보니, 내가 듣는 '우쿨렐레 B'의 앞반인 '우쿨렐레 A'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예닐곱 명 정도가 자신의 손과 우쿨렐레를 쳐다보며 각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일제히 우쿨렐레를 치고 있는 장면을 두 눈으로는 처음 본 나는 좀 흥분되고 한편으로 위축되고 하여서 별로 요의가 없었는데도 화장실을 찾아 억지로 소변을 보았다.

 

앞 반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강의실로 들어갔다. 스물대여섯 쯤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두 번이나 수업을 빠진 학생도 웃으면서 맞아 주었고 오십 분 수업 중에 나만 붙잡고 삼십 분 가량 수업을 해 주었다. 왜냐하면 우쿨렐레 B반의 학생은 용곡 초등학교 5학년의 여자친구와 나 둘이었기 때문이다. 신청자는 세 명으로 내 또래의 남자가 하나 더 있었다 하나 그는 3회차의 이 날까지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한다. 정말, 다음 시간부터는 빠지실 거면 전화를 주시라구요, 하고 말하는 선생님께 고개를 굽실거리며 사과를 했다. 말도 없이 빠진 것도 우쿨렐레를 잘 못 치는 것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명 밖에 없는 내 짝꿍은 사죄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자서 문득 화려한 연주곡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층 더 위축이 되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혼자 뚱땅뚱땅 친 가락이 있어 C와 F, G 등의 기본 코드는 잡을 줄 알았다. 선생님은 첫 날이니까 고고 리듬부터 마스터 하자고 말하였다. 고고 리듬은 4/4박자 정박에 맞춰 업-다운-업-다운만 성실하게 치면 되는 리듬이다. 집에서 먼저 커리큘럼을 보았을 때에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고고 리듬 같은 것으로 괜히 시간 보내지 말고 내가 못하는 걸 더 많이 가르쳐 달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야겠다, 나도 돈 냈으니까, 같은 생각을 했는데. 바위처럼 팔짱을 끼고 있는 선생님 앞에서 막상 치려니 손이 나무등걸처럼 굳어서 우쿨렐레에서 거문고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5학년 짝꿍을 봐주는 동안 나는 십 분 정도 구석에서 혼자 고고리듬을 연습했다. 강의실에 난방이 잘 되어서 몸도 따뜻했고 십 분 동안이나 계속 위아래위아래만 치고 있다보니 이제 좀 알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도 따뜻해질 무렵, 다시 내 자리 쪽으로 온 선생님은 중간에 비트 넣지 말고 정직하게 고고리듬만 치라고 혼을 내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이렇게 성실하게 무언가를 한 것은 제대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이람, 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자 선생님은 우쿨렐레를 함께 치며 자신의 고고리듬과 내 고고리듬을 비교해 주었다. 과연 나는 첫번째 음은 좀 길게, 두번째 음은 짧게 치면서 멋을 부리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것을 스스로도 느끼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5학년 짝꿍은 어느새 연주를 마치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첫번째 수업은 50분 내내 고고리듬만 쳤고 숙제로도 고고리듬만 받아왔다. 용기를 내어 짝꿍에게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먼저 나서니 강의실 밖의 소파에는 짝꿍의 엄마로 보이는 누나가 앉아있었다.

 

날은 춥고 오십 분씩이나 줄을 쳐댄 손은 얼얼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원했던 것을 배우는 일이 얼마만인가 생각하니 무척이나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십여 년 만에 다시 시작한 뜨개질을 마저 했다. 위 사진에 나온 것을 한 것은 아니다. 위의 것은 11월 중순에 하면서 처음 시작했던 목도리로, 지금은 주인 찾아 떠난 지도 오래 되었다. 

 

 

 

 

 

 

 

 

신촌에 살 때에는 출퇴근 시간이 짧아도 네 시간은 되었다. 이동만으로도 고되어 버스에 앉아 졸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은 원하는 팟캐스트를 몇 개 씩이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하는 곳에 가까운 중곡동으로 이사를 온 뒤로는 짧게는 십오 분 내에 출근할 수 있는 경우도 생겼다. 덕분에 느긋하니 팟캐스트만을 듣고 있는 시간이 줄고 말았다. 집에 일찍 들어오게 되면 책을 읽든지 컴퓨터를 하든지 하지 가만 누워 팟캐스트만 듣고 있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 삼아 듣는 것 말고도 이것은 꼭 들어야 할텐데 하는 프로그램이 쌓이고 쌓여 아이폰의 용량마저 위협할 판이었는데 뜨개질을 하면서 틀어놓으니 딱 좋았다. 라디오 들으면서 바늘을 놀리던 옛적 엄마의 모습도 생각나고.

 

 

 

 

 

 

 

 

이건 그래도 첫번째 목도리라 늘어나는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 중에서 석 장만 골라낸 것이지만

 

 

 

 

 

 

 

 

이 다음부터는 누군가한테 선물하기 직전에야, 에이 그래도 한 장 찍어둬야 기억에 남겠지 싶어 완성 샷 한 장 툭 찍고 말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이 목도리는 완성한 모양도 안 찍었다.

 

 

 

 

 

 

 

 

그 뒤로는 늘어난 실뭉치의 색과 굵기에 따라 위처럼 얇은 목도리도 떠보고 펜 넣는 필통도 떠보고 하며 즐겁게 지냈다. 잠시 시들해질 무렵, 추억이 서려있기도 해서 무척 아끼던 장갑을 잃어버려 지금은 장갑을 떠 보려고 노력 중이다. 목도리나 모자, 파우치 등에 비하면 훨씬 어려워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지만 맨손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면 손등이 아파서 못난이 모양이라도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하나 완성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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