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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

첫 녹음

 

 

 

전날 감기몸살의 여파가 있는 몸을 이끌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우쿨렐레도 쳐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한다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학부 졸업 뒤로 적은 경험이었다. 일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생 신각이와 함께 이렇게도 구상해 보고 저렇게도 구상하기를 몇 년에, 올 여름 오랫동안 격조했던 동생 원준이를 다시 만나 계획에 힘이 붙었던 것이다. 원준이는 신각이와 마찬가지로 연극부의 후배이자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생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상에는 제한이 별로 없었다. 각종의 아이디어들을 수합하는 과정에서 크게 영상 아이템과 음성 아이템으로 구분이 되었고, 그 중 현실적으로 시작이 용이한 음성 아이템의 파일럿을 먼저 떠보기로 한 것이다.

 

셋 중에 행동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신각이가 대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하는 녹음 관련 수업을 수강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립중앙도서관 내의 녹음 스튜디오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지고 왔다. 덕분에, 12월 5일 토요일에 모이게 된 것이다.

 

 

 

 

 

 

 

 

몸이 찌뿌둥한데 마음이 흔쾌한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페퍼톤즈의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와 손지연의 '춤추는 머슴'을 돌려돌려 들어가며 갔다.

 

스튜디오는 넓고 깨끗했다. 준비해간 대본과 연습장, 볼펜 등을 꺼내어 늘어놓는데 가볍게 흥분이 됐다.

 

 

 

 

 

 

 

 

장소 대여와 관련 수업 수강, 당일에 녹음 및 기기 조정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준 신각이. 편집이 남았으니 궂은 일이 끝난 것도 아니다.

 

 

 

 

 

 

 

 

광주 사는 지희도 잠시 서울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스튜디오에 놀러와 주었다. 원준이와 사이 좋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보기 좋아 냅다 찍어보았다. 또 다른 친동생 같은 동생 지희도 연극부의 후배이다. 사실은 뭘 하는 것보다 이렇게 모여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기쁜 일이긴 하다. 아니, 뭘 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큰 아이템들을 앞두고 일단은 스튜디오 녹음에 익숙해지기와 원준이와 호흡 맞추기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기 때문에, 파일럿 녹음의 주제로는 내 강의록 중의 일부인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택했다. 출강하는 고등학교에서 1960년대의 문학 중 대표주자로 자주 소개하는 작품인데, 시간이 모자라면 시대상과 작가 소개에만 그치고 정작 작품 해설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학생들이 들어줬으면 한다, 고 생각하고 녹음했다. 주제와 타게팅이 좁고 명확해야 연습하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녹음은 생각보다 원활하고 재미있었다. 첫 녹음이니까 그랬을 거야, 다음부터는 잘 할 수 있을거야 라며 서로 쓸쓸히 격려하는 결말까지도 예상했는데 적어도 뭐가 좋았는지 뭐가 고쳐야할 지점인지 다 같이 떠들면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한 편 뜨는 데에도 우리 셋의 많은 시간은 물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중간에 응원 와 준 지희와 저녁에 합류한 망원동 망나니, 작품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주어 프로그램에 색깔 넣어준 상봉동 맥주요정, 몇 종류나 되는 대본 포맷을 선뜻 건네어 준 새신부 최작가 등등.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는 무척 행복했던 하루였다. 조만간에 완성된 편집본을 올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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